또다시 안거(安居)에 들어가는 한국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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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비의 소리 - 현응
1989년 11월 93호
음력 시월 보름이 되면 전국의 선원은 일제히 안거결제(安居結制)에 들어간다. 여름 삼개월 동안의 안거와 겨울 삼개월 동안의 안거수행은 한국불교의 독특한 수행 풍토이다. 이 기간에는 참선수행만을 오롯이 하는 선객(禪客), 수좌(首座)는 물론이고 그밖에 종무행정을 보던 스님이나 교화 일선에서 활동하던 스님들도 희망에 따라 자기점검과 선정력(禪定力)의 확충을 위해 모든 반연을 쉬고 삼개월 동안의 참선정진에 들어가는 것이다. 이 기간중에는 “길거리에서 맞아 죽어도 할 말이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출입이 통제되며, 엄격한 대중 규율 속에서 정진에 힘쓴다. 안거는 인도의 우기(雨期)에서 비롯된 제도다. 유행(遊行)하면서 탁발 행각하는 것이 출가승단 본래의 수행생활이었으나 비가 많이 오는 여름 삼개월 동안은 한 곳에 운집하여 정착함으로써 독특한 수행생활을 했던 것이다. 그러니까 유행하는 것이 본래 승단의 모습이었고 안거생활은 자연환경 탓으로 시작된 특별 수행기간이라 하겠다. 그러던 것이 불교가 사계절이 뚜렷한 동북아시아권으로 들어오면서 여름과 겨울의 두 차례 안거가 제도화되고, 유행보다는 안거가 수행의 기본 가풍이 되기에 이르렀다.
이는 중국불교에서 선종(輝宗)이 새로운 불교 해석과 수행의 주도적 역할을 하는 것과 맥을 같이 하는 것이며, 당나라 시대부터 정착된 선원제도와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그래서 당송 이후부터는 ‘안거’라 하면 주로 참선을 위한 수행기간을 뜻하게 되었다.
그밖에 안거가 승단의 수행과 생활의 중심을 이루게 된 것은, 인도와는 달리 중국은 겨울이라는 기후조건 때문에 유행생활이 어려워 사암을 지어 주거생활을 주로 하지 않을 수 없는 점, 계율과 교리의 능동적 해석에 꽤 직접 경작하고 취사하는 생활을 하게 된 점, 그에 따라 사원뿐만 아니라 전답이나 금품을 소유할 수도 있게 된 점들과 연관된다. 탁발과 시주로 생활하던 무소유의 유행불교가 자급자족적 경제조건을 갖춘 안거불교로 바뀌게 된 것이다. 이에 따라 불교는 비단 생활에서뿐만 아니라 교리, 계율, 수행의 모든 부분에서 엄청난 변화를 겪게 되었던 것이다.
한국불교는 이러한 중국불교의 안거제도에 깊은 영향을 받았다. 5교 9산과 선-교 양종시대를 거쳐 오늘날 통합종단이 된 조계종의 경우에도 이러한 전통은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조계종은 그 명칭에서도 드러나 있듯이 선종으로 대변되며(‘조계’는 당나라 때의 선종의 거장 혜능스님의 호이다) 종헌에는 “직지인심 견성성불”이라는 선의 강령이 종지로 채택되고 있다.
한국불교는 가히 ‘백장청규’에 의거한 선원의 안거제도가 유일하게 존속하는 곳이며 독특한 수행이념과 방법론으로서의 ‘달마선’이 현재까지 존중받는 곳이다. 이에 따라 참선수행과 안거제도는 한국불교를 지탱하고 규정짓는 강력한 모태역할을 하고 있다.
이런 즈음 ‘대승불교승가회’에서 실시한 전국 승려의 의식조차 결과는 한국불교가 해결해야 할 중요한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그 설문조사의 결과는 “선(輝)이 한국불교에서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응답이 응답자의 85.3%로 나타나 여전히 선이 한국불교의 중심축을 이루고 있음을 확인하고 있으며, 반면 한국불교에서 가장 부족하다고 여기는 부분에서 계율 준수의 문제가 29.1%, 대사회 활동이 30.5%로 가장 높은 응답을 내어 한국의 선수행이 낳은 문제점을 부각하고 있다.
한국불교가 ‘계율 문제’, ‘사회활동’의 부분이 미진하다는 것은 한국불교가 ‘윤리성’과 ‘사회성(또는 역사성)’의 부분을 가장 필요로 한다는 뜻이다.
이번 겨울에도 대중들은 이것 저것 다 떨치고 또다시 안거정진에 들어갈 것이다. 그러나 선(禪)이 과연 한국불교에서 요구되고 있는 ‘사회성’과 ‘윤리성’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문제를 선원에 가지고 가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이번의 동안거는 이러한 문제와 그에 대한 노력을 증폭하고 심화하는 진지한 기간이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