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대지의 여신은 가이아(Gaia)는 천문신(天文神) 우라노스의 어머니이고 아내이기도 했다. 지리학이나 지원학(地源學)에서는 어원으로 삼았다.
“어머니인 대지”라는 개념으로 그리스인들은 먼 옛날 “가이아’라고 불렀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역사상 널리 찾아볼 수가 있다.
지금도 여러 종교에서는 설교의 기반으로 믿음으로 간주되고 있다.
자연환경에 관한 사실의 집적(集積)과 생태학의 진전에 수반하여 최근에 생명권은 토양이나 해양이나 공중을 자연 생식지로 삶는 모든 생물들의 단순한 집합체 이상의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이 행해지게 되었다.
예부터 믿음과 현대의 지식은, 우주비행사들이 자기 눈으로 또 우리들이 매스미디어를 통해서 우주의 깊은 암흑에 떠 있는 눈부실 정도의 아름다운 지구를 보았을 때의 경이 속에서 융합했다고 주장하는 이도 있다.
그러나 그 감각이 아무리 강한 것이라 하더라도 그것만으로 어머니인 지구가 살아 있다고 하는 증거가 되지는 않는다.
종교적 믿음과 마찬가지로 그것은 과학적으로 검증 불가능한 것으로 그 이상의 이론적 고찰이 될 수 없을는지도 모른다.
우주 공간에로의 여행은 지구를 보는 새로운 관점을 제공했다는 것 이상을 의미하기도 했다.
또한 외기공간으로부터 지구의 대기나 표면에 대한 정보가 되돌아와서 혹성의 생물과 무기물간의 여러가지 상호작용에 관한 새로운 통찰을 가져다 주었던 것이다.
여기에서 하나의 가설 모델이 나타났다. 곧 지구의 생물, 대기, 해양, 그리고 지표는 단일한 유기체로 간주해도 좋은 복잡한 시스템을 이루고 있으며, 우리는 우리들의 혹성을 생명에 어울리는 장소로서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지 않을까 하는 가설인 “가이아가설”이 나타났다.
러브록( T. E. Lovelock )의 저서 「지구생명권. 가이아의 과학」에 따르면 이것은 지구 대기 그리고 해양의 물리학 조건이 옛날에도, 그리고 현재에도 생명 자체의 현존에 의해서 적극적으로 생명에 알맞는 쾌적한 것으로 유지되고 있다는 가설이 그것이다.
이 가설은 생명의 진화와 혹성조건의 변천이 전혀 별개로 진행하여 그 속에서 생명이 혹성의 제조건에 적응해 왔다고 하는 종래의 가설과는 좋은 대조를 이루는 것이다.
지금까지 가이아는 하나의 가설에 머물러 있지만 그 실재는 여하간에 다른 유익한 가설과 마찬가지로 이미 이론적 가치는 충분히 발휘되고 있다. 그 추구 자체가 유익한 의문이나 해답을 몇개씩 낳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만일 대기의 역할 중 하나가 생명권에 원료를 운반해 들이거나 운반해 나가는 것이라고 한다면 모든 생물학적 시스템에 필수적인 화합물의 존재를 상정하는 편이 낫다.
그런 의미에서 그들 화합물이 풍부한 해양으로부터 운반되어 공중을 경유해서 다시 그것들이 부족한 상태인 지표에 보낸다는 발견은 가치 있는 것이다.
만족할 줄 모르는 과학자의 호기심을 생각한다면 이러한 흥미깊은 화합물이 대기중에 존재한다는 것은 가이아가설의 도움을 빌지않더라도 언젠가 발견되어 그 중요성이 논의되었을 것이다.
만일 가이아가 존재한다고 한다면 그것과 이 복잡한 시스템 가운데서도 가장 우세한 동물인 인간과의 관계, 그리고 양자 사이에서 역전되어 가고 있다고 생각되는 힘의 밸런스가 중대한 문제로 대두된 것만은 명백한다.
따라서 가이아 가설이란 자연은 진압되어야 하고 정복되어야 할 미개의 힘으로 보는 비관적인 견해에 대한 대안으로 보는 견해가 있으면 동시에 우리들의 혹성을 조종사도 목적도 없이 영원히 태양의 내궤도(內軌道)를 도는 미친 우주로 보는 것과 같은 정도의 서글픈 지구상(地球像)에 대한 대안으로 보고 있기도 하다.
불교에서는 이 세기경(世紀經) 염부제주품(閻浮提州品)에 보면, 어느 때인가 부처님은 사위(舍衛)국의 기수급고독(祗樹給孤獨)동산의 구리(俱利)굴에 계시면서 많은 비구들이 강당에 모여서 서로 이야기 하기를 이것은 미증유한 일입니다, 지금 이 천지는 어찌하여 무너지고 어찌하여 이루어지는가, 중생이 사는 국토는 어떤 것인가에 대해서 주고 받았다.
그때에 부처님은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무릇 집을 나온 사람은 두가지 법을 행해야 한다. 첫째는 현성의 침묵이요 그는 법어(法語)를 강론하는 것이다. 너희들은 강당에 모여 있으면서 이와같은 현성의 침묵과 법어를 강론해야 한다. 한 일월(日月)이 4천하를 두루 다니면서 광명을 비추는데 이와같은 천 세계가 있다.
천 세계 가운데는 천의 일월천의 수미산왕(須彌山王) 4천 천하4천 대천하 4천 바닷물 4천 큰바다. 4천용. 4천 큰용. 4천 금시조(金 鳥) 4천의 큰 금시조 4천 악도(惡道) 4천 큰 악도. 4천의 왕 4천의 대왕 7천의 큰나무 8천의 큰지옥 십천의 큰산 천의 염라(閻羅)왕 천의 도솔(兜率) 하늘 천의 화자재천(化自在天) 천의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 천의 범천(楚天)이 있다. 이것을 소천세계(小天世界)라 한다.
1의 소천세계와 같이 거기에 소천의 천세계가 있다. 이것이 중천(中千)세계라 한다. 일의 중천세계와 같이 거기에 중천의 천세계가 있다. 이것을 3천의 대천세계라 한다. 이와같이 세계가 겹겹이 둘려 생겼다, 무너졌다 하고 중생의 사는 곳을 일 불찰(佛刹)이라 이름한다.
불교에서는 중생의 업에 의해서 세계가 성립되고 소멸된다고 보고 있다. 이 업의 사상을 잘 이해함으로써 불교의 세계관도 잘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