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동국대 사태를 생각하며
이전 게시물
다음 게시물
시론 - 주영
1989년 11월 93호
우리나라 국민들의 교육열이 세계 어느 나라보다 높다고 하는 말을 들어온 지 오래다. 그 이유에 대하여는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여러 관점들이 있어 왔다. 그러나 이 나라의 교육 문제와 관련하여 우선 생각되는 것은, 해방 이후 역대 독재정권들이 자신들의 정권 유지와 체제 수호에 이 나라의 교육을 악용하여 왔다는 사실이다. 독재정권과 그들 하수인인 교육자들의 독선적이고 권위주의적인 교육정책은 자주적이고 창의적인 민족정신을 억압하고 왜곡시켰을 뿐만 아니라 가히, 세계적이라는 국민들의 교육에 대한 노력과 열의에 값하는, 참다운 교육적 내용과 형식 또한 성취할 수 없도록 하였다.
교육이란 마치 사람에게 있어서 몸속에 혈액을 공급하는 일과 같은 것이다. 좋은 음식을 섭취하면 몸 속에 양질의 혈액이 공급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교육의 방향과 내용이 올바를 때, 그들이 이루고 사는 사회가 건강하고 아름다운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갖가지 문제들은 지난날 잘못된 교육의 필연적인 결과라 할 수밖에 없다.
지난 봄부터 온 나라를 들끓게 만들었던 전교조운동은, 운동과정에서 다소간의 시행착오는 있었다고 하나, 교육 일선에서 우리의 잘못된 교육 현실을 깊이 체험한 선생님들이 미래교육에 대한 보살적 애정과 용기로 떨쳐 일어난 것으로 보인다. 당국의 온갖 책략과 탄압으로 지금 선생님들은 많은 고난과 시련을 겪고 있다고 하지만, 그러나 뜻있는 국민들과 더불어 참교육운동은 장차 이 나라의 교육을 굳건하게 지켜나갈 것이므로 믿는다.
불행하게도 교육 문제가 사회적으로 그 어느 때보다 첨예한 이런 시기에 동국대사태가 일어났다. 그리하여 세간의 어떤 이념보다 수숭(殊勝)한 부처님의 가르침을, 교육을 통해 실현하리라 믿었던 많은 불자들의 자존심과 긍지에 깊은 상처를 입히고 말았다. 대학이란 곳이 다양한 학문과 사상을 가르치고 연구하는 교육기관으로서 그 운영이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가끔 특정 대학들의 문제가 매스콤에 보도되곤 하지만, 그 대학과 각별한 인연이 없는 사람들은 크게 관심을 갖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이번 동국대의 경우는 다르다. 이 학교가 조계종에서 운영하는 유일한 종립대학이라는 사실조차 모르는 많은 사람들까지도, 우선 스님총장과 이사장이 사회에서 커다란 악덕의 하나로 여기는 부정입학과 관련하여 구속되었다는 사실에 아연해한다. 사정이 어찌되었건, 아무리 세상이 막 되어가고 있다지만 OO까지 그럴 수 있는가 하는 것이 이번 동대사태를 보는 일반적인 생각이다.
어느 신문에서는 전체 사학재단의 어려움을 예로 들면서, 동대의 처지를 위로하고 형평을 잃은 당국의 처사를 지적하는 기사를 실었다. 그러나 문교부가 총장면직의 지시를 내린 어느 지방대학에서는 그 학교 학생들과 지역인들이 모두 나서서 되레 문교부를 성토하며 그 총장을 지키기 위한 결의까지 하고 있는 것과 비교해 보면, 그야말로 또 다른 의미의 성(聖)과 속(俗)의 차이를 실감하게 된다.
희한하게도 이번 사건으로 해서 ‘동국대가 조계종 종립대학이다’ 하는 선전은 확실하게 된 셈이다. 스님 총장과 스님 이사장이 구속까지 되었으니 말이다. 절집 안에서 그 스님은 그런 분이 아니라고, 그 스님을 존경하는 많은 후배, 제자들이 있다고, 그 스님은 자기 월급을 모아서 학교 운영에 보탰다고 아무리 강변한들 세간 사람들에게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동국대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종단에 관리능력이 없다고 하여 관선 이사까지 들어앉힌 적이 있고, 학교 이사장이나 이사를 선출하는 종회에는 으레 온갖 추문이 꼬리를 물었다. 입신출세에 뜻을 두지 않은 출혈승(出穴僧)들이 지혜를 모은다면 어찌 대학 운영 하나 못하겠는가. 몇십 개의 학원재단과 여러 대학을 가진 교단도 있다. 정확히 학교 현실이 어렵다면 종단 차원에서 논의하고 대책을 세웠어야 마땅한 것이다. 결국 동대사태는 종단의 모순되고 부조리한 구조와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
이번 사태에서 보여준 집행부나 일부 중진들의 태도는 종단과 대중을 이끌어가는 그들의 방법이나 자세가 얼마나 무정견하고 무책임한가를 여실하게 드러내었다. 승가에는 한산중의 대중이 움직이는 것도 산과 같이 무겁게 해야 한다는 법이 전통적으로 존중되어 왔다. 그런데 이번 사태로 인해 전국에서 1,500여 대중이 모였다는 것은 좀체 납득하기 힘들다. 동대사태가 결코 작은 일이라고 해서가 아니다. 아무리 종단의 대사(大事)라도 대중이 운집해서 할 일과 그렇지 않은 일이 있으며, 또 대중이 모인다고 하더라도 그 전에 반드시 선행되어야 할 일이 있다. 명분이 서지 않는 일, 작은 일에까지도 쉽게 대중을 움직인다면 승가의 권위와 위신이 실추되고, 정작 대중의 힘이 필요할 때는 무력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세간에서는 몇 사람의 젊은 학생들이 모여도 언필칭 나라와 민족을 위한 통일이나 민주화를 외친다. 하물며 이익중생(利益衆生)의 이념을 가지고 민족의 역사와 더불어 온 불교가 자기들을 핍박하고 무시한다는 이유 하나로 규탄대회를 열고 시위를 한다면 세간사람들로부터 어떠한 비난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기에 마땅히 집행부나 중진들은 먼저 적절하고 합리적인 대책을 마련하여 대응하고, 필요한 경우 본-말사나 각 단체의 대중을 결집해 내는 것이 일의 순서다. 특히 집행부는 주지를 임명하고 분담금을 집행하는 큰일(?)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종단과 승가의 권위와 위신을 수호함양할 때 그 본래의 책임을 다한다고 할 수 있
다.
이번 동국대 총장의 구속사태에 따른 절집의 항의는 전에 없이 거세었고, 결국 검찰의 불구속기소 결정으로 사태는 일단락된 듯하다. 그러나 대학총장이라도 사회적 신분을 지녔으며 승가 대중으로부터 존경받는 한 중진스님을 검찰이 그토록 쉽게 구속할 수 있었던 까닭은 무엇인가. 그것은 현 정권의 군사독재적 속성과 국민과 역사의 편에 서기보다는 정권의 시녀 노릇하기에 급급한 사법부의 타락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승가 자신에게 있다.
벌써 수 개월도 더 전에 호남의 지역인 들로부터 존경받던 지선스님을 검찰은 집시법위반이라는 혐의를 씌워 구속시켰다. 웅대한 백제불교의 역사적 전통을 가졌으면서도 웬지 교세가 침체된 호남에서, 그 곳 사람들이 경험한 엄청난 아픔과 한을 불교의 가슴으로 나누어 안고 앞장서 주던 유일한 스님이었다. 비록 다른 견해가 있다고 한들, 세간으로부터 존경받는 종도(宗徒)의 행을 무턱대고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절집은 수수방관하여 왔다. 한 승도의 존재가 귀하지 않을 때 결코 승가 자신마저도 지켜질 수 없다는 것을, 승가는 이번 동국대 총장의 구속사태에서 보아야 한다.
이른바 6공화국이라는 정권이 나와서 당초국민들과의 약속을 지키기는커녕 수많은 민주인사를 좌경용공으로 매도하고 구속하는 소위 공안정국이 계속되고, 통일정책, 수입 개방정책 둥의 독재정치로 인해 국민들의 불안함과 실의가 극심하다. 그런데 언제나 함구로 일관해 온 불교가 동대사태로 인해 돌연 민족, 민주, 양심수 석방운운 한다. 그러나 그러한 표현들은 결코 즉흥적 선언이나 상황 논리적 형식으로 쓰여질 말이 아니다. 그 말은 이 민족 최대의 과제요 염원인 통일과, 이 땅에 사는 모든 사람들의 삶의 형식과 질에 관계되어 있다. 그 말 뒤에는 자기 몸을 불태우는 노동자의 절규와, 숨을 끊어버릴 듯한 최류탄 앞에 몸을 던지는 젊은이들과, 개인적 미래를 꿈꾸지 않는 지식인들과, 그리고 많은 국민들의 짓눌린 가슴들이 있는 것이다.
9.7 해인사 승려대회에서 한국불교 최초로 시국문제와 관련한 성명이 나왔다고 하여 많은 국민들로부터 환영을 받았다. 그러나 결과는 어떠하였던가. 정작 민중 호국불교론까지 떠들었던 사람은 국민의 지탄을 받는 권력자들을 찾아다니며 그들올 위해 기도하는 모습으로 일관했다. 대사회적 활동을 하는 스님이나 몇몇 단체가 있기는 하였으나 그나마도 많은 대중들의 질시와 외면으로 인하여 끝없이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과연 뜻있는 국민들이 이러한 불교계의 일관성 없고 허구적인 태도를 보지 못하고 있을까. 끝으로 이번 사태에 해인사가 산문을 막고 대응한 태도는 그 무엇보다도 유감스러운 일이었다. 해인사는 불교의 상징인 팔만장경을 모시고, 민족의 역사와 더불어 온 이 나라의 가장 성스러운 불교성지이고, 모든 불자의 귀의처다. 한때 해인사 공원화를 반대하고 해인성지를 주장하여 정부와 맞서 싸웠던 까닭도 바로 그런 근거에서였다. 지금도 가야 산문을 지나면, 그 때 세워진 ‘해인성지(海印聖地)’ 라고 쓴 비석을 보고 숙연한 마음이 된다. 그런데 자랑스럽지도 못한 명분을 내세워 돌연 대중이 산문을 막고 나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해인사는 이미 한 문중의 해인사가 아니며, 그 철에 사는 대중만의 해인사도 아니다. 거듭 말해서, 그 곳은 모든 승가 대중이 수행정진하는 청정요람이고 한국불교의 마지막 보루다. 적어도 해인사는 부처님의 정법(正法)에 근거하지 않는 세간적 편향심에 의한 도구가 되어서는 안된다.
동국대 사태의 열풍은 일단 지나간 듯하다. 그러나 지금이라도 불교가 조고각하(照顧脚下)의 염(念)으로 냉정하게 자기 모습을 돌아보지 않는다면 제2의 동국대 사태, 아니 제3, 제4의 법안을 면치 못한 것이다. 스스로 존귀한 곳에 서 있지 못한 승가를 세간도 존중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