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부쩍 깊어졌습니다. 달보는 하늘을 쳐다보았습니다. 하얀 미영꽃(목화) 몇 송이가 떠가는 하늘을 바라보기에 시릴 만큼 파랬습니다. 앞산에는 며칠 사이 완전히 단풍이 물들었습니다.
아침나절 개울가를 거닐다가 물위에 떠가는 단풍잎들을 바라보며 달보는 그만 눈물을 떨구었습니다. 또 한해가 이렇게 스러지는구나 하고 생각하니 설움은 달보의 가슴을 더욱 얼얼하게 만들었습니다.
계사년 생인 달보는 우리 나이로 마흔을 갓 넘겼습니다. 수숫잎을 흔들고 온 바람이 달보의 머리카락을 펄럭였습니다. 그 머리카락의 빛이 거의 하늘 구름을 닮고 있었습니다.
“왜 우는 거니?”
바람 가운데에 하나가 말을 걸었으나 달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네 머리 빛깔이 참 보기 좋은데..., 꼭 단풍이 든 것 같아.”
바람은 계속 달보의 말문을 열고자 했으나 달보는 그냥 하늘을 바라볼 뿐이었습니다.
“누군 시간이 남아 이러는 줄 아남? 참 좋은 가을이구나 이렇게 한마디하면 어디가 덧나? 평생 옹기나 구우라지, 픽.”
바람은 필경 신경질이 나 그만 몇 마디를 내뱉고는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말았습니다. 달보는 고개를 몇 번 흔들었습니다. 그리고는 개울에 손과 얼굴을 담그고 후적후적 세수를 하였습니다. 얼굴을 씻는 달보의 귓전에 ‘평생 옹기나 구우라지. 픽’ 하던 바람의 목소리가 계속 울렸습니다. ‘그래, 네가 그렇게 말하지 않더라도 난 평생 옹기를 구우며 살 거야. 왜?’ 달보는 혼자 그렇게 중얼거렸습니다.
달보는 가마 쪽으로 걸음을 옮겼습니다. 사흘 전에 불을 땐 가마 속의 옹기들이 보고 싶어졌습니다. 가마문을 열자 잘 누른 누룽지 내음과 같은 한 줄기의 냄새가 가마 안에서 풍겨 나왔습니다. 그것은 아무나 맡을 수 있는 냄새가 아니었습니다. 달보는 이번에 구운 옹기들이 말하지 않더라도 누룽지 내음을 닮은 흙내음. 그것이 바로 옹기장 삼십 년 경력의 달보를 한없이 포근하게 만드는 꽃내음이었습니다. 달보는 옹기들을 차근차근 꺼내어 살펴보았습니다. 침착한 유약의 빛깔이 마음에 들었고 특히 이번에 새로 새긴 문양들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풋님이가 꽤 좋아하겠는걸.”
달보는 가마 안의 옹기들을 살펴보며 혼자서 중얼거렸습니다. 옹기에는 마치 바람이 흐르는 듯한 형상의 무늬들이 아주 자유로운 모습으로 새겨져 있었습니다.
“이럴 때나 나타나지 않고서는... 아깐 내가 좀 심했나?”
달보는 마지막 다섯 개째의 옹기를 들어 찬찬히 바라보더니 혼자 ‘풋’ 하고 웃었습니다. 거기에는 희안한 문양과 함께 ‘바보 풋님이, 댕기드린 풋님이’라는 글자가 새겨 있었습니다. 달보의 손가락으로 쓰여진 그 글씨들은 얼핏 서툴게 쓰여진 듯 보였으나 자세히 볼수록 소박한 맛이 있었습니다.
바로 그 때였습니다. 더벅머리로 길게 자란 달보의 머리카락들이 휙 하는 소리와 함께 이마 쪽으로 넘어갔습니다.
“풋님이 왔니?”
달보는 허공에 대고 그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근사한 가을 선물을 주겠다더니 고작 이거야.”
허공 속에서 목소리 하나가 울려 나왔습니다.
“이 댕기 드린 모습을 좀 봐라. 좀 근사하니?”
달보는 마음이 한결 편해진 듯 제법 껄껄거리는 웃음소리와 함께 말을 했습니다.
“댕기를 드린 건 그렇다치고, 바보 풋님이는 또 뭐야 바보 풋님이가?”
말이 끝남과 함께 달보는 “에취!” 하는 재채기를 세 번씩이나 해야 했습니다. 가마 안에 때아닌 소용돌이가 일어 흙먼지가 쏴 일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넌 내게 평생 옹기나 구우라고 하지 않았니? 그래서 옹기를 구운건데, 왜? 뭐가 잘못 됐니? 자, 봐라, 이 문양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잘 빗질된 머리카락에 드리운 이 댕기는 정말 곱구나. 남원땅 춘향이도 아마 이렇게 고운 댕기는 드려 보지 못했을 게다. 어때, 마음에 들지 않니? 그렇다면 할 수 없지. 내 제일 소중한 친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데야 내가 별수가 있니?”
달보는 갑자기 옹기를 들어 공중에서 내려치는 시늉을 했습니다.
“잠깐!”
허공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울렸습니다.
“웬 사내가 그리 마음이 좁아? 한번 해 본 소린데 뭘, 이 댕긴 정말 근사한데, 단풍잎을 양쪽으로 드리워 놓았어. 역시 달보는 달보야, 내가 칠량에 산 이래로 이렇게 자유자재로 문양을 새겨 넣을 수 있는 옹기장인 보지 못했어. 언젠간 네 뜻을 꼭 이룰 수 있을 거야.”
“고마워.”
달보는 허공을 향하여 세 번씩이나 고맙다는 말을 되풀이하였습니다. 달보가 말한 풋님이란 다름 아닌 바람이었지요. 달보가 개울가에 내려갔을 적에 말을 걸다가 아무 대꾸가 없자 평생 옹기나 구우라고 이야기한 바람이 바로 풋님이었습니다.
전라도 땅 하고도 강진군 칠량면의 옹기마을. 옛부터 고려청자로 이름이 났던 이 마을의 전통도 이제 그 맥이 다 끊겨 가는 참이었습니다. 달보는 이 전통 옹기마을의 마지막 옹기쟁이였지요.
달보가 풋님이를 처음 만난 것은 지금부터 삼십 년 전, 달보의 나이 열 한살 때였습니다. 그 때 달보는 처음 물레질을 배웠습니다. 옹기의 형을 빚어내는 것이지요. 근로기준법 같은 것이 있을 리 만무한 그 때 달보는 한나절에 스무 개의 옹기를 빚어야만 했습니다. 달보의 아버지이자 스승 격인 드들아범이 자리에 눕게 된 지가 이미 한 해가 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한참 물레질을 하고 있노라면 이마며 등이며 할 것 없이 땀이 송송 배었습니다. 그 때 어디선가 바람 한 줄기가 불어오면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었습니다.
“넌 몇 살이나 먹었니? 내 보기엔 아직 천자문 뗄 나이도 멀었는데.”
어느 날 불어 온 바람은 아예 달보에게 이렇게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달보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는데, 어느 날인가는 처음 말문을 열어 “넌 정말 풋풋한 바람이구나. 앞으로 네 이름을 풋님이라고 할게” 하고 말하여 불어온 바람을 기쁘게 하였습니다.
달보가 나이 스물에 근동에서 제일 알아주는 옹기쟁이가 된 것도 따지고 보면 이 풋님이 덕이 컸습니다. 나이도 몇 살인지 제대로 알 수 없는 풋님이는 괘 오래 전부터 이 옹기마을에 살면서 그 동안 자신이 보아 왔던 옹기 형이며 문양을 달보에게 이야기해 주어 달보의 스승 역할을 독특히 한 것입니다. 물론, 얼마 안 있어 사람들이 도통 옹기그릇들을 쓰지 않게 됨에 따라 달보의 이 기술도 점점 쓸모가 없는 것으로 변하고 말았지만 말입니다.
달보는 너무 억울했습니다. 자신이 그토록 심혈을 기울여 만든 옹기그릇들이 팔려 나가지 못한 채 가마 한쪽 귀퉁이에 앉은뱅이처럼 쌓여 있는 모습은 그렇다 치고 자신이 지닌 기술들이 영영 쓰이지 못한다고 생각할 때 마음이 보통 아픈 것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은 옹기가 천대를 받게 되자 드들아범의 딸인 드들이의 천대도 눈에 부쩍 띄었습니다. 달보야 드들아범의 수양아들인 셈이었고 한편으로는 예약된 사위이기도 했습니다. 칠량 사람들 가운데에 달보가 드들이를 아내로 맞으리라는 것을 의심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기술도 기술이려니와 달보의 인물이 워낙 출중해 사실 그만한 사윗감 찾기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장터의 술막 같은 데서 사람들이 “드들아범 사위 하난 딱부러졌지. 복도 많아” 하는 말을 주고받는 것은 너무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드들아범이 세상을 떠나자 그만 드들이 또한 밤봇짐을 싸 어디론가 떠나고 말았습니다.
“인물 좋고 허우대 좋으면 뭐해? 요즘 세상엔 돈이 있어야제.”
사실인지 어쩐지 잘 모르지만 마량에서 함께 배를 탄 마을 사람에게 드들이가 남긴 마지막 말이 바로 이것이었다고 합니다. 드들이가 떠나고 나서 달보는 꼬박 한 달 동안을 아무것도 먹지 않고 꽁꽁 앓으며 누웠습니다. 죽지 않는 것이 오히려 신기할 정도였으나 사실 달보 입장에서는 너무 억울해 도저히 그냥 죽을 수만은 없는 노릇이기도 했습니다.
이 때 그를 자리에서 일으킨 것도 바로 풋님이었습니다.
“달보야, 어서 일어나, 얼른 옹기를 구워야제, 넌 내가 지금까지 본 그 어떤 옹기쟁이보다 훌륭한 옹기쟁이야.”
물론, 달보가 풋님이의 이런 말에 금새 용기를 얻고 자리에서 일어난 것은 아닙니다.
“넌, 왜 시시콜콜 나를 따라다니며 귀찮게 하는 거지? 이젠 옹기장이 따윈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아. 군말 말고 어서 들이나 산으로 가봐.”
“사람들이 옹기를 원치 않는 건 분명한 일이야. 그건 옹기장이에게도 원인이 있어.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다른데 있는데 옹기쟁이는 언제나 같은 걸 만들거든. 일어나서 얼른 물레를 올려. 그리고 사람들이 원하는 옹기를 새롭게 만들어 봐. 넌, 분명 만들 수 있어.”
풋님이의 이 말은 확실히 옳은 것으로 달보에게 들렸습니다. 특히 사람들이 원하는 옹기를 새롭게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은 달보에게 힘을 불어넣어 주는 말이었습니다.
“백자나 청자를 생각해 봐. 이것들은 지금도 사람들이 다 좋아하지. 그런데도 그 제작 방법이 끊겼어. 억울하기로 치면 이쪽이 더 억울하지. 정작 사람들이 좋아하는데도 이제 그 만드는 방법조차 잃어버리고 말았으니 말이야.”
풋님이는 조금은 격앙된 목소리로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날 이후 달보는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리고는 온통 사람들이 좋아할 수 있는 새로운 옹기에 대한 생각에 빠져 들었던 것입니다.
무지개를 옹기항아리에 집어넣고 싶다는 달보의 옹골찬 꿈은 이렇게 해서 태어났습니다. 앓아누운 달보가 일어난 지 꼬박 일 년 뒤의 일이었습니다. 그 일 년 동안 달보는 온통 새로운 옹기에 대한 신념으로 들떠서 곁에 있는 누군가가 보았다면 영낙 없는 미친 사람으로 보았을 정도였습니다.
그 날도 요즈음과 같은 가을날이었습니다. 달보는 개울가 잠자리까지 날려온 단풍 속을 거닐고 있었습니다. 투명한 햇살이 단풍잎을 빠져나와 개울물 위에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정말 아름다운 빛이구나. 도대체 이런 빛이 있다는 사실을 왜 여태까지 알지 못했지? 어디선가 꼭 본 것만 같아 그래. 내가 어디서 보았지? 이런 빛을...”
달보는 햇살이 쏟아지는 단풍 속을 거닐며 혼자 그렇게 중얼거렸습니다.
달보의 의문은 곧장 풀렸습니다. 바로 그날 낮에 비가 한바탕 쏟아져 내렸습니다. 동네 어른들이 쏟아지는 비를 보며 “단풍 빛깔 세울라고 참 좋은 비 오는구나“ 하고 말하는 것을 달보는 들었습니다. 한창 단풍이 들 적에 한 두차례 비가 오면 습기를 머금은 단풍잎들의 빛깔이 훨씬 윤택해지는 것이었습니다.
신비한 일은 바로 그 뒤에 일어났습니다. 단풍잎 새를 뚫고 들어온 햇살들이 개울의 물 위에 닿기 직전 아름다운 빛깔들이 잔치를 벌여 놓은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무지개였습니다. “아!”하는 탄성과 함께 한동안 물 위를 바라보던 달보는 어떤 이상한 기운에 들떠서 고개를 들다가 그만 더 큰 마음의 탄성을 울리고 말았습니다.
앞산, 단풍이 짙게 물든 앞산 능선 위에 커다란 무지개가 걸려 있었습니다. 달보는 하늘과 땅을 번갈아 바라보았습니다. 하늘과 땅 모두 무지개가 피어나고 있었습니다. 하늘에는 커다란 무지개, 땅 위에는 작은 무지개가 빛을 뿌리고 있었습니다.
“바로 이거야. 내가 왜 여태 이걸 깨닫지 못했지?”
달보는 자신의 몸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떨려옴을 느꼈습니다.
“백자, 청자보다 더 아름다운 옹기를 만들 수 있어!”
가마를 향하여 달려가는 달보의 뒤를 풋님이가 함께 달리고 있었습니다.
계속
곽재구 님은 고아주에서 태어나 전남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1981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사평역에서」가 당선되면서 문단에 등단했다. 시집으로「전장포 아리랑」「한국의 연인들」등 다수가 있고, 최근에는 참새 한 마리의 삶에도 아름다움과 꿈이 있다는「아기 참새 짜꾸」라는 동화집을 간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