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 삼국은 자고로 漢字文化圈에 속해 왔다. 삼국의 문화는 제각기 강한 독자성을 지니고 있으면서 또한 상호침투적 연관 관계에 있다고 보는데, 그 매체가 漢字인 것이다. 이 삼국의 식자들은 漢字 하나로 모든 게 통했다. 의사소통에서 문화적 교류에 이르기까지. 그러나 漢字의 읽는 방식은 저마다 다르게 진전되었으며, 같은 漢字라도 韓語化한 한자는 한국의 문자로, 日語化한한자는 일본의 문자로 보아야 마땅하다. 마치 같은 로마文字라도 영어화한 문자는 영국의 문자가, 불어화한 문자는 불란서의 문자가 된 것이나 같다. 그런데 일찍이 영국인이나 불란서인이 로마文字는 자국의 것이 아니니 되돌려 보내고 새롭게 자국의 고유한 문자를 발명해 쓰자는 운동을 일으키고 있다는 말, 들어본 적이 없다. 아마 그런 생각을 하는 자가 있었다면, 머리가 돈 사람으로나 취급받게 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한국인이 한지는 우리 것이 아니니까 폐지하기로 했다고 하면, 말도 안 되는 바보짓이라고 비웃음 받기 십상일 줄 안다.
한․중․일 삼국은 지금까지 그래왔듯 앞으로도 긴밀한 유대를 지니리라. 아니 그 유대는 더욱 강화될 추세에 있다. 그런 판국에서 유독 한국만이 한자 폐지를 감행한다는 건, 시대에 역행하는 문화적 쇄국주의라 할 것이요, 국제적 고아신세를 자초하는 꼴밖엔 안 되리라.
서울은 조선왕조 오백년의 수도지만, 건물로서 남아 있는 것이라곤 남대문, 동대문과 몇 개의 고궁을 헤아릴 정도다. 그나마 남았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서울역 쪽에서 남대문을 바라보면, 우선 그 육중하고도 잘 균형 잡힌, 장려한 건축미에 반하게 된다. 과연 저만하면 국보 1호로 삼을 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다음으로 내가 빼놓지 않고 살피게 되는 것이, 남대문의 원명인 崇禮門 석 자다. 다른 문의 편액(扁額)은 글씨가 가로로 쓰여 있는 것이 상례인데, 이것만은 세로로 쓰여져 있는 것도 시선을 끌지만, 그보다도 그 필적―양녕대군이 썼다고 함―의 아름다움, 거기에, 순간, 번쩍 정신이 드는 것 같은 氣韻을 깨닫는다. 남대문뿐 아니라 동대문을 지날 때도, 또 덕수궁, 창경궁, 창덕궁 동 고궁 앞을 지날 때도 내가 부지중 살피게 되는 것이 정문에 걸려 있는 편액의 필적이다. 大漢門, 郭化門, 弘化門, 興仁之門, 모두 명필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한자의 매력을 새삼 확인하게 된다고 해도 좋다. 만약 한글 전용이라고 해서 그러한 편액의 필적까지 한글로 바꾼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조상을 욕보이고 자신의 얼굴에 먹칠을 하는 야만의 짓이라고 규탄을 받으리라.
그런데 물론 사정은 다르지만, 그와 유사한 경우가 발생했다. 하나는 파고다 공원의 정문으로 새로 건축한 문의 편액이 ‘삼일문’으로 쓰여 있음이요, 다른 하나는 ‘광화문’의 경우이다. 둘 다 공교롭게 고 박정희 대통령의 필적인데, 여기서는 특히 후자의 경우를 언급해 보려 한다.
광화문은 본래 경복궁 정문이다. 그걸 日帝가 심술 사납게도 몽땅 헐어내고, 그 자리 즉 경복궁 앞에다 여봐란 듯이 조선총독부(朝鮮總督府) 건물을 세웠다. 영원히 이땅에 일본의 지배권을 뿌리박겠다는 듯이, 그 건물 형태도 일본 日字란 걸 간과하지 말 일이다. 그것이 해방 후엔 중앙청으로 둔갑하였다가, 오늘날엔 다시 박물관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어쨌거나 이 나라 대통령들이 그 건물을 좋아했을 리는 없다. 그래서 박정희 대통령 시절, 그 건물 앞에다 광화문을 복원하고, 편액을 새로 단다는 것이, 아뿔사, 한글로 ‘광화문’ 해버렸다. 나는 그 ‘광화문’ 필적을 볼 때마다 기분이 언짢다. 그렇지 않아도 日帝의 牙城이던, 침략의 복마전(伏魔殿)인 구총독부 건물의 건재로 착찹한 심사인데 설상가상격의 울적을 겪지 않을 수 없다. ‘광화문’의 필적은 다시 본래의 ‘光化門’으로 바뀌어야 할 것이다. 생각해 보라. 빛이 화해서 된 문이라니! 세상에 그처럼 멋지고, 황홀하고, 뜻있는 말이 어디에 있겠는가. 하지만 한글로는 유감스럽게도 그러한 뜻이 드러날 수가 없다. 지금 이 나라는 단군 이래 미증유의 국력 신장기를 겪고 있다. 선진국 대열에 들어설 날도 머지 않은 이때, ‘세계의 빛은 이미 한국의 수도인 서울, 光化門에서 뿜고 있었구나!’ 하는 걸 우리 내국인뿐 아니라 외국인들까지 실감할 수 있도록, ‘광화문’의 필적은 다시 ‘光化門’으로 환원돼야 할 것이다.
白頭山, 妙香山, 金剛山, 雪嶽山, 道峯山, 太白山과 같은 산 이름이나 法住寺, 海印寺, 華嚴寺, 佛國寺, 月精寺, 禪雲寺와 같은 절 이름은 또 얼마나 멋있는가. 明洞, 押鷗亭洞, 安岩洞, 三仙洞, 明倫洞 등의 동 이름도 그러하다. 그러나 그것들이 한글로 표기되면, 뜻은 달아나고 소리만 남게 된다. 너무 단순하게 편편해져서 건져지는 것이 아무것도 없게 된다. 아무래도 좀 답답하다는 느낌이 든다. 익숙해지면 전혀 신경을 안 쓰게 되겠지만, 그러나 이때 사람의 두뇌는 어떻게 되는 걸까? 우리의 意識은 분명히 한 次元 낮아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리라. ‘방학동’이란 동명에 접했을 때, 나는 갈피를 못잡았다. 여름방학의 放學일 리도 없고••• 궁리 끝에, 집작은 갔었지만, ‘放鶴洞’이란 뜻임을 확인하자 미소가 떠올랐다. 학을 놓아주는 동리의 주민들은, 그러면, 어김없이 神仙들이겠구먼.
일전에 어느 전시장에 갔었는데, 그림의 제목이 그냥 정이라고만 표시되어 있었다. 正, 淨, 靜, 情, 이중의 어느 하나 일 터이지만, 왜 이런 답답한 일을 저지를까? 한글 전용으론 同音異議語의 분간이 어려운 게 이만저만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가령 ‘신기’ 할 때, 그것은 다음 어느 것이 맞겠는가? 新奇, 神技, 神器, 神機.
우리가 흔히 쓰는 漢子成句로 아주 기막힌 표현이 많은데, 그걸 그냥 한글로만 표기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魂은 빼버리고 껍질만 남기는 꼴이 아닌가? 예컨대 기상천외(奇想天外), 신출귀몰(神出鬼沒), 천의무봉(天衣無縫), 산자수명(山紫水明), 지성감천(至誠感天), 전광석화(電光石火)••• 이런 표현을 한번 음미해 볼 일이다. 漢字는 表意文字인 만큼, 글자 하나하나에 세계가 들어 있다. 사물의 構造와 魂이 들어 있다. ‘笑’에는 웃는 얼굴이 들어 있고, ‘水’에는 흐르는 물이 들어 있다. ‘詩’란 言語의 寺院임을 알 수 있다.
다음엔 괄호 안에 漢字를 넣어 이해를 돕는 일, 거기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현행하는 모든 사전류, 국어사전이건 백과사전이건 또는 그밖의 각종 학술사전을 펴볼 때, 괄호 안의 漢字들이 얼마나 많은가! 만약 괄호 안의 漢字를 모조리 빼버린다면, 어떠한 혼란이 야기되겠는가? 한글만으로도 내용을 능히 파악할 수 있노라고 장담할 사람은 아무도 없으리라. 그렇다면 다음의 가공할 사실들이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겠는가? 1) 漢字 없이는 사전의 편찬이 불가능하다. 2) 사전 없이는 학문 연구가 불가능하다. 3) 漢字를 모르는 한글世代는 사전을 펴봐도 수박 겉 핥기에 그치게 된다. 그들에게는 괄호 안의 漢字가 전혀 도움이 안 되기 때문이다.
한글世代의 실상에 대해서 우리는 깊이 반성하고, 책임을 통감해야 되리라 본다. 그들은 딱하게도 부모의 성함, 본관, 본적, 현주소는 물론 자기의 이름조차 한글로 밖엔 표기를 못한다. 족보도 그들에겐 無用之物이다. 즉 우리의 역사적, 전통적 문화와는 단절이다. 대학을 졸업한 지식인이라면서, 신문에 나오는 제한된 한자나마 해독을 못한다. 머리가 이만저만 退化해 있지 않다. 한글만으로는 의미의 파악력이 약화되기 때문이다. 의미를 파악하는 정확도도 흐려지고, 속도도 느려진다. 聯想, 推理, 比較, 分析, 想像力에 있어, 많은 제한을 받게 됨으로써 사고의 기능이 단순화되고 둔화될 밖에 없다. 설사 머리가 기민하게 움직인다 하더라도, 그것은 매우 제한된 범위내의, 그것도 반복된 훈련에 의한 결과에 불과하다. 그들과 대화를 나누어 보면 사고의 방식이 직선적이며 단순해서, 黑白論理的이란 것을 알게 된다. 한마디로 지나치게 경직되어 있다. 게다가 정서도 메말라 있어, 매사에 격렬성(激烈性)―나는 굳이 급진적(急進的)이라는 말은 안 쓰겠다―을 띠게 마련이다.
근본적으로 중고등학교 때의 교육이 잘못된 탓임에 틀림없다. 특히 한글 전용이 잘못이다. 국민학교 때부터 漢字를 가르치자. 중고등학교를 나올 때까지 二千字에서 三千字는 가르치자. 한글과 漢字는 둘 다 우리나라 文字인 것이다. 한글만이 우리의 것이라 우기는 어리석음, 그 小兒病的이고, 近視眼的인 치졸(稚拙)함을 청산하자.
漢字는 세계 최고의 表意文字, 한글은 세계 최고의 表音文字, 그 두 문자를 자유롭게 혼용하면 상호보완적 상승작용으로 우리의 글은 天上天下 無比의, 훌륭한 글로 대접을 받으리라. 길이 세계에 광명을 뿜으리라.
끝으로 한마디, 한글世代에게. 지금이라도 늦은 건 아니니, 漢字를 배우라. 사람은 배울수록, 머리는 쓸수록, 깊어지고 좋아진다. 안 그러면 어떻게 이웃나라 中․日의 젊은이들과 어깨를 맞대면서 知的인 경쟁을 감당할 수 있겠는가?
한글과 漢字의 영원한 혼용으로 길이 이 땅에 세계에 관절하는 文化를 꽃피우자. 우리의 후손에게 後患이 없도록 이제 우리는 민족적 영단을 내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