Ⅱ
데이터베이스가 만들어지면서 이용자들은 개인용 컴퓨터를 이용하여 원하는 부분을 신속 정확하게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어떤 단어나 글자의 뜻을 귀납적으로 밝히고 연구의 자료로 삼는다.
컴퓨터가 없던 시절에는 문헌 고증이잘 된 사전이나 류서類書 그리고 색인, 나아가서는 고증학자들의 연구 결과를 종합해서 문제를 풀어 가야 했다. 그러나 거기에는 아무래도 한계가 있다. 오늘날은 컴퓨터를 이용해서 폭넓게 용례를 모으고 더 정확하게 고증할 수 있다.
그러면「조주록」의 한 문단을 예로 들어 설명해 보기로 하자.
師示衆云, 衲僧家直須坐斷佛頭始得.
기존의 우리말 번역 서에서는 이 문장을 다음과 같이 번역한다.
스님께서 대중에게 말씀하셨다.
“납자라면 보신불과 화신불의 머리에 그대로 눌러앉아야 한다.”
앞의 번역에서 ‘坐斷’을 ‘눌러앉다’라고 번역한 것은 아마 일본 코마자와(駒澤)대학에서 편찬한「선학대사전」의 설명을 그대로 믿었기 때문인 듯하다. 그러나 이 사전의 설명은 잘못되었다.
‘坐斷’에서 ‘斷’은 강조를 나타내는 조어이다. 의미는 ‘坐’에 있다. 「경적찬힐經籍纂詰」에서는「석명釋名」에서 용례를 수집하여 ‘挫’ 곧 ‘꺽다’, ‘깨뜨리다’, ‘누르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그리고 당나라 시대에 쓰인 문헌에서는 ‘좌단坐斷’이 많이 쓰이는 것으로 보아 ‘坐’와 ‘挫’는 통용되었던 것 같다. 그러므로 ‘坐斷’은 ‘꺽다’, ‘깨뜨리다’, ‘누르다’는 뜻이 되는 셈이다.
한편「報化佛頭」의 ‘頭’는 ‘머리’라는 뜻의 명사가 아니라, 접미사로서 명사의 뒤에 쓰이거나 존경의 뜻을 품고 있는 호칭이다. 그러므로「報化佛頭」는 ‘보신이나 화신 부처님’쯤으로 번역할 수 있다. 그리고 ‘直須∼始得’은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뜻의 숙어이다.
앞에서 나온 ‘坐斷’, ‘頭’, ‘直須∼始得’의 용례는 컴퓨터의 데이터 베이스와 기존의 색인을 통해서 용례를 검색할 수 있다. 이 때 한글 코드로 입력된 전자 대장경은 아직 없기 때문에, 이용 가능한 전자 대장경은 대만의 Big-5와 일본의 JIS코드에 따라 입력한 데이터들이다. 물론 한글 음으로는 출력이 안 된다.
이렇게 해서 앞 문장을 제대로 번역하면, 선을 수행하는 이라면 보신 부처님이나 화신 부처님을 깨부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뜻이다. 곧 보신과 화신 부처의 경지에 그냥 눌러앉아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이다. 그것을 깨부수고 극복해야 하다. ‘눌러앉다’로 번역한다면 정반대의 뜻이 되고 만다.
‘불립문자不立文字’인데 뭘 좁쌀영감처럼 글자를 따지냐고 나무랄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무라기에 앞서 문장은 문장으로서 정확하게 읽어야 한다. 그래야만 선서를 정확하게 읽을 수 있다.
Ⅲ
조주趙州(778∼897)스님 하면 으레 ‘개에게 불성이 없다’는 화두가 떠오른다. 여기에는 송대 사람들의 책임이 크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는 조주선을 이해하는 데에 큰 방해물이다. 이것은 ‘유有’보다는 ‘무無’를 강조하고, 긍정적인 표현보다는 부정적인 표현에 가치를 두는 편견이 낳은 잘못이다. 이런 편견 때문에 개의 불성에 대한 다음과 같은 대화가 엄연히 있는데도 무시하는 수가 많다.
한 스님이 물었다.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
조주스님이 대답했다.
“집집마다 문 앞은 장안으로 통한다.”
모든 길은 다 서울 가는 길로 이어지듯이 모든 중생은 불성이 있다는 것이다. 조주스님의 이런 대화가 근거가 되어 뒷날「종용록」제 18칙에 개에게 불성이 있다는 대답과 없다는 대답이 나란히 소개된다.
어떤 스님이 조주스님에게 물었다.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
“있다.”
“불성이 있는데 왜 짐승으로 태어났습니까?”
“개가 알면서도 일부러 범했기 때문이다.”
또 어떤 스님이 물었다.
“개에게 불성이 있습니까?”
“없다.”
“일체 중생이 모두 불성이 있는데 어찌하여 개에게는 없습니까?:
“개에게 업식이 있기 때문이다.”
곧 개의 불성에 대해 조주는 “유”라고 대답한 적도 있고, “무”라고 대답한 적이 있다. 그런데도 “무”에만 주목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먼저「주역」이나「노자」의 영향으로 ‘유’보다 ‘무’를 훌륭한 것으로 여기는 편견을 생각할 수 있다.
이런 편견 속에서 ‘무’를 형이상학적으로 초월화 혹은 절대화시킨다. 그리하여 이 ‘무’는 유무를 떠난 ‘절대적인 무’라고 한다. 그러나 절대나 초월이라는 관념이 고개를 드는 순간 조주선과는 멀어진다. 조주스님이 일평생 부수려고 했던 것이 바로 이 절대라는 관념이다.
Ⅳ
그러면 조주선의 핵심은 무엇인가? 그것은 남방의 설봉교단에 대한 비판에서 잘 드러난다. 곧 판에 박은 듯한 생각을 쳐부수려는 것이다. 그것은 깨달음일 수도 있고 불법佛法일 수도 있다.
‘북쪽의 조주, 남쪽의 설봉’이라는「운문광록」의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조주스님 당시, 그러니까 8세기 후반에서 9세기초에 걸쳐 중국 선은 크게 둘로 나뉜다. 이들은 서로를 의식해 가면서 개성 있는 선풍을 이끌어 간다. 조주스님이 남방을 비판한 것을 보자.
어떤 스님이 설봉스님 처소에 왔다. 조주스님이 말했다. “어르신네, 여기에 머물지 마십시오. 제가 있는 여기는 그저 잠깐 쉬어 가는 곳일 뿐입니다. 불법은 모두 남방에 있습니다.” 그러나 상대방은 노행자가 5조 홍인에게 한 말을 흉내 내어 “불법에 어찌 남북이 있겠습니까?” 하였다. 그러자 조주스님은 “그대가 아무리 운거 설봉에서 왔더라도 외골수일 뿐이다.” 그대는 선문답의 모범 답안을 외워서 그것만을 고집하는 교조주의자라는 꾸지람이다.
그런데도 상대는 말귀를 알아 듣지 못하고 판에 박힌 질문을 한다.
“불법의 저쪽 편은 어떻습니까?”
“오줌 싸는 소리 하지 마라.”
“깨치고 난 뒤에는 어떻습니까?”
“아이구 똥까지 싸는군.”
남방에 있는 선승들의 ‘깨달음’을 묻고 ‘불법’을 들먹이는 등 선 냄새를 풀풀 풍기는 판에 박힌 말을 비판하는 것이다. 그런 것 따위에 얽매어 자신의 본디 생명을 잃는 것을 경계하는 말이다. “남쪽에서 오는 사람에게는 짐을 내려 주겠다.”라든가, “남방에서 많은 선승들이 목숨을 잃고 있다”는 조주즈님의 말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깨달음’이나 ‘불법’도 결국 자신의 생명을 찍어누르는 무거운 짐이라는 것이다. 조주스님은 아주 노골적으로 말한다. “부처라고 할 때의 ‘부’ 자도 나는 듣기 싫다.” 자기 자신은 내팽개쳐 두고 밖으로 향하는 사람들이 질문하는 것을 보자. 그에 대한 조주스님의 대답 또한 만만하지 않다.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도道입니까?“
“담 너머에 있다.”
“그것을 묻는 게 아닙니다.”
“무슨 도를 물었느냐?”
“큰 도(大道)말입니다.”
“큰길은 장안으로 통한다.”
도가 무슨 특별한 것인 양 잔뜩 기대를 걸고 큰스님에게 묻는 이 객승의 모습은 가히 짐작이 간다. 오늘날도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니 말이다.
그러나 그 물음은 선 냄새가 너무도 풀풀 풍긴다. 걸핏하면 ‘도’, ‘깨달음’, ‘열반’, ‘불법’들을 들먹인다. 자취를 떨어버리지 못하는 한 부처님이 그토록 조심하라 하시던 판에 박힌 틀에 빠지고 만다. 그래서는 선禪이 되기는커녕 불교도 되지 못한다.
Ⅴ
한글로 번역된 조주스님의 어록은「조주록」(백련선서간행, 장경각, 1991)이 있고, 일본어로 번역된「조주록」(秋月龍珉, 築摩書房, 1972)을 다시 번역한「조주록」(공연무득, 경서원, 1989)이 있다.
현재 우리가 보는「조주록」의 원형은「고존숙어요」혹은「고존숙어록」에 실린「조주진제선사어록趙州眞際禪師語錄」이다.
그 밖에 스님의 행적을 전하는 책으로는「송고승전」(j제 11권),「조당집」(제 18권),「경덕전등록」(제 10권, 권 28권),「오등회원」(제 4권)들이 있다. 이 가운데「조당집」과「경덕전등록」은 월운스님의 번역이 동국역경원에서 나왔고,「오등회원」은 백련선서간행회에서 번역중이다.
신규탁 선생님은 연세대학교를 졸업하고 봉선사에서 월운스님에게 경전을 수업하였다. 지금은 동경대학교에서 박사 과정에서 당나라 사상사를 공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