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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현(惠現)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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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의 등불을 이어온 이 땅의 스님들 - 편집실 1989년 11월 93호
혜현스님은 백제사람이다. 일찍이 어려서 출가하여 힘써 뜻을 모아 묘법연화경(妙法蓮花經)을 공부하였으며 매일 법화경을 송경하는 것을 일과로 삼았으므로 여러가지 영험한 감응(感應)이 실로 많았다. 또한 삼론종(三論宗)에도 정통하였으므로 참으로 신명(神明)의 경지에 달(達)하였다.
처음에는 수덕사(修德좋)에 살았는데 스님의 수행과 덕행이 근처에 소문이 나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법화경의 설법을 청해 듣기를 원하였으므로 언제나 스님의 방문 밖에는 신발로 가득했다. 차차 번거롭고 시끄러워졌으므로 마침내 스님은 강남의 달라산(達拏山)에 가서 숨어 살았다. 그 산은 매우 험준하여 사람의 내왕이 힘들어 찾아가기가 어려웠다.
스님은 고요히 앉아 세상을 잊고 산속에서 생을 마쳤는데 동학(同學)들이 그 시체를 운구하여 석실(石室) 속에 모셨다. 그랬는데 어느날 호랑이가 그 유해를 먹어치우고 해골과 혀만 남겼는데 그 후 추위와 더위가 세번이나 지나가도록 혀가 상하지 않고 오히려 더욱 붉고 부드러운 것은 참으로 기이한 일이었다. 그 후 차차 그 혀의 색깔이 변하더니 자주빛이 되고 돌과 같이 단단하게 되어졌다. 그래서 스님네와 신도들이 이를 사리처럼 공경하여 석탑에 간직하였던 것이다.
스님은 살았을 때에도 법화경을 많이 원고 염송한 공덕으로 많은 영험과 이적(異蹟)을 남겼듯이 마치 영원한 변재(辯才)라도 증명하듯이 이러한 영험을 죽어서도 남겼던 것이다.
스님은 일찍이 중국에 유학간 일도 없거니와 물러나 오히려 고요히 일생을 마쳤는데 이름이 중국에까지 알려지고 전기(傳記)까지 쓰여 당나라에서도 그 명성이 높았던 것으로 보아 살아계실 때 더 많은 이야기가 있었을 것으로 유추할 따름이다.
이에 일연스님은 이렇게 스님의 행적을 기리는 노래를 읊었다.

주미(塵尾)로 설법함도 한바탕 수고로울 뿐
지난날 독경소리 구름 속에 잠들었네.
세간의 청사(좁史)에 길이 이름을 날려
죽어서도 꽃다운 혀 연꽃 같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