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구름 인간세상에 내려와도
떠다니는 티끌색에 물들지 않고
태양은 아득히 불타고 있는데
만가지 자태는 기막힌 정취로다
아아, 살찌고 경망스런 사람들아
하늘에 드리운 날개를 보았는가
남으로 가려함에 기회를 만나야 하니
한번 날면 여섯달이 되어야 쉬리라.
천지에 아롱지는 기운을 어찌 알리요
무심히 내 가고픈 곳으로 가리라.
하늘은 어찌 한결같이 고요할까
말았다 폈다 함에 흔적이 없네.
白雲人間來 不染飛埃色
遙 太陽輝 萬態情可極
磋磋輕肥子 見擬垂天翼
圖南誠有機 去當六月息
寧知縕縕采 無心任吾適
天宇一何寥 舒卷非留跡
선사는 노년을 영안정사(永安程種舍)에서 보내다가 입적하였다. 다비를 하니 6근 중에 타지 않은 것이 셋이나 되었고 정골(頂骨)에서는 콩같이 생긴 맑고 투명한 홍백색 사리가 나왔다.
아아, 선사를 보고 주고 뺏는데 공평하지 못하고 말씀이 도에 부합되지 않았다고 하면 어떻게 이와같은 경지에 이를 수 있었겠는가.
종남산(終南山) 도선(道宣 : 596∼667)율사는 처음 제(齊) 나라에 태어나 승호(僧護)라 하였으며 월주(越州) 염현(剡懸)에서 미륵불상을 조각하며 살았다. 두번째는 양(梁)나라에 태어나 승우(僧祐)라 하였고 뒤에는 수(隋)나라서 태어나 도선(道善)이라 하였다. 율사의 할아버지는 호주(湖州)사람이며 아버지는 진(陳)나라 이부상서(吏部尙書)였는데 임금을 따라 장안으로 갔다가 서울에서 태어났다. 어머니가 달이 품안으로 들어오는 꿈을 꾸고 임신하였는데 인도승이 나타나“당신이 잉태한 아기는 양나라 승우율사이니 출가시켜서 불교를 널리 펴도록 하시요” 하였다.
율사는 머리깍고 나서는 고행을 참고 마음을 다져 먹으며 불법만을 구했다. 한번은 보물함을 머리에 이고 탑을 돌면서 도를 닦았는데, 함 속에 사리가 내리게 해달라고 발원했더니 7일만에 과연 감응을 얻었다. 이때부터 더욱 뜻을 고르게 하여 하루 한끼 먹고 곧게 앉아 잠자지 않고 선정에 드는 것을 즐겼다.
정관 4(貞觀4 : 633)년 청궁사(淸宮寺)에서 반주삼매(般舟三味)를 닦는데 천룡이 내려와 시봉하는 감응을 얻었고 물이 모자란다 하여 흰 샘이 솟기도 하였다. 안거일에 성심으로 발원기도하기를 “만일 하안거에 좌선한 공덕이 있다면 상서로운 정조를 내리소서.”하였더니 뒷뜰에 과연 지초(芝草)가 났다.
율사가 과로로 병이 나자 천왕이 보심약(補心藥)을 내려주면서 말하였다.
“지금은 상법(像法)시대 말이라 나쁜 비구들이 절만 거창하게 짓고 선혜(禪慧)는 닦지 않으며 경전도 독송하지 않습니다. 비록 지혜로운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천에 하나 둘 뿐이다.”
그 후 서명사(西明寺)에 있을 때 깊은 밤에 도를 닦다가 법당 앞 계단을 헛디뎠는데 어떤 성인이 발을 부축하였다. 누구냐고 물으니 북천왕의 아들인데 칙명을 받고 모시게 되었다고 하였다.
“저의 수행에 태자를 번거롭게 할 것이었습니다. 태자는 위력이 자재하시니 천축국에 지을만한 불사가 있거든 그것이나 힘써 주시요”
“제게 길이 세치, 넓이 한치되는 부처님의 치아가 있는데 오랫동안 보물로 간직해왔습니다. 이제 이것을 스님께 은밀히 드릴 터이니 잘 간직하소서.”
율사는 받아서 낮에는 땅굴 속에 두었다가 밤에는 받들고 도를 닦았는데 암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다만 제자 강율사(綱律師)가 가만히 율사의 뒤를 따랐다가 보고는 세상에 알리려 하자 율사가 말하기를 “신근이 천박한 이는 나를 요망하다 할 것이니 너와 나 단둘이만 알도록 하자.” 하였다.
율사는 천신과 자주 왕래하였는데 신령스런 자취나 성스러운 일에 대해 듣기를 즐겼다. 그리고 묻고 답하는대로 기록하여 그것으로 「감통전기(感通傳記)」라는 책을 만들었다.
건봉 2년(乾封3 : 667) 봄 2월에 천신이 나타나 고하였다. “율사는 과보가 이제 다하려 하니 아마 미륵궁에 날 것입니다.” 그리고는 향 한봉지를 남겨두면서 “이것은 천상극림향(天上棘林香)인데 제석천왕이 사루는 향입니다.”라고 하였다.
그해 시월 초사훌, 하늘에서 하늘 음악이 울리며 꽃과 향기가 가득히 내려 율사를 청해 맞이하니 서거하셨다.
여산(盧山) 혜원(慧遠)법사는 가씨(賈氏) 집안에서 태어났다. 일찌기 도안(道安)법사에게 법을 배우다가 「반야경」강설하는 것을 듣고 깨달은바가 있었다.
법사는 대윤(大尹)인 장비(張秘)와 친한데 하루는 그에게 말하였다.
“역경계는 깨기 쉬워도 순경계는 깨기 어렵다. 내 마음에 거슬리는 일은 오직 ‘참을 인자(忍)’ 한 자면 잠시도 안되어 지나가지만 만약 내 마음에 맞는 일을 만나면 마치 자석이 쇠를 만난 듯 부지불식간에 하나로 합쳐진다. 무정물도 그러한데 경계에 빼져 있는 사람이야 말할것도 없는 일이다.”
그후 여산을 돌아다니다가 그곳 산수가 아름다워 마침내 그곳에 자리를 잡았는데 자가(刺史) 환이(桓伊)가 동림사(東林寺)를 지어 그곳에 살게 하였다. 이로부터 거의 30년간 그림자가 산 밖을 나가지 않고 오직 정토를 생각하여 부지런히 염불만 하였다.
처음 십여년 동안은 마음을 맑혀 집중해서 관(觀)을 닦아 아미타불 성상(聖像)을 세번이다 보았으나 법사는 무거운 성격이라 입밖에 내지 않았다. 그후 20년 만에 반야대(般若臺)에서 선정에 들었는데 아미타불의 몸이 허공에 가득찬 것을 보았고, 또 아미타불이 일러주시는 말씀을 들었는데 “내가 본원력(本願力)으로 여기에 와서 그대를 편안케 하노니 그대는 7일 뒤에 나의 나리에 날 것이다.”라고 하셨다.
법사는 비로소 문도들에게 말하였다.
“내가 이곳에 살면서부터 다행히 세번이나 성상을 보았는데 지금 또다시 나타나셨으니 나는 반드시 왕생할 것이다. 그대들도 각자가 노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