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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남불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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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대방 한담 - 지묵 1989년 09월 91호
1. 애비를 알아보다.
일제시대의 이야기다. 춘성스님이 하루는 기차를 타고 어딘가로 가는 중이었다. 스님은 점잖게 의자에 앉아 담배를 피워 물었다.
앞자리에는 나이 사십줄에 접어든 목사가 아까부터 춘성스님에게 수작을 걸어올 양 노려보고 있었다.
목사가 입을 열었다.
“여보시오. 보아하니 중 같은데 담배를 뽀금뽀금 피워대는 폼이 제법인 걸.”
“그래애? 담배 맛이 꽤 좋은데 넌 담배 맛이나 아는가?”
춘성스님은 주위의 호기심 어린 눈초리에 아랑곳없이 대꾸하기 시작하였다.
목사는 시빗거리가 생긴 것이 꽤나 반가운지 쾌재를 부르며 스님에게 대들었다.
“담배 맛을 알기는 뭘 알아? 중들어야 계집 맛, 고거 맛이나 알지.”
“허어, 그래애? 잘도 아는구나. 중 노릇은 그 맛으로 하는 게야. 너희 목사는 한 계집 보고 무슨 재미로 사나?”
이 말에 목사는 분심이 나서 다시 욕을 쏟아내었다.
“그러고 보니, 절에 생남불공(生男佛供)하려 간 아녀자는 중들이 다 따먹는다면서?”
“허어, 그래애? 잘도 아는구나. 한 계집 보고 사는 목사보다 그래서 재미가 있지.”
“에잇, 몹쓸 중들. 그래, 네가 생남불공하러 온 아녀자를 농간하였다 이거지?”
“내, 그런 이야기를 하나 해주마,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이니 잘 들어봐라.”
춘성스님은 담배를 새로 하나 붙여 물며 짐짓 거짓으로 아주 태연하게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하였다.

금강산 마하연에 머물던 시절이라 했다. 그리고 사십년 전의 어느날, 곱디고운 한 아녀자가 생남불공을 드리러 왔다는 것이었다. 하늘을 보아야 별을 본다고, 여인네 홀로 무슨 재주로 생남을 기대할 것인가. 하는 수 없어, 춘성스님이 관계를 맺어주는 방편을 썼다. 칠일 동안 생남불공을 지극지성으로 올리고 떠난 그 아녀자는 지금 기억에 떠오르지 않는다. 아마 떡두꺼비 같은 아들을 낳아 잘 지내겠지 할 뿐이다.

이야기가 이쯤에 오자, 목사가 큰소리를 내어 웃으면서 말하였다. “보래이. 너 같은 중은 천벌을 받아도 싸다”하고는 손가락질을 하였다.
춘성스님이 웃으면서 말하였다.
“허어, 그래애. 네가 중들 생남불공 일을 어떻게 알았느냐? 네 어미가 어려서 가르쳐 주어서 알았겠지. 나는 말이야. 사십년 전의 일이라서 까맣게 잊고 지내 왔더니만, 이제 아들 하나를 찾았군 그래.”
“뭐, 뭐라고? 아들을 찾았다고?”
목사가 심각한 얼굴로 물었다.
“그렇다. 네 어미가 노상 네게 들려준 말이 절간의 생남불공 이야기가 아니더냐? 그래서 네가 잘 알고 있는 게야. 이제야, 자식이 이 애비를 알아보는구나. 이래도 내 말을 못 알아들어?”
목사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안절부절 하다가, 말없이 자리를 떴다.

2. 돼지새끼 값이 얼마인데
극락전의 노장 스님에게 안면있는 노보살이 며느리의 생남불공을 모시기 위해서 왔다. 이번 칠석날에 삼성각에 기도를 올려서 꼭 손주를 보게 해달라는 부탁이었다.
노보살은 꽤 여유있는 살림살이를 하는 편이나, 인색하기가 말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기도입재는 칠월초하룻날이었다.
삼대 독자의 후손이 끊어질 위기라고 걱정은 태산같이 하면서, 노보살은 불공비로 일만오천원을 봉투에 담아 내놓았다. 노장 스님이 말하였다.
“요즘 장에 다녀보시오?”
노보살이 대답하였다.
“예, 장날이면 다닙니다.”
노스님이 다시 물었다.
“돼지새끼 한 마리 값이 얼마이던가요?”
“예, 한 삼만원쯤 합니다.”
“거 보시오. 돼지새끼도 삼만원은 하잖소?”
“예? 돼지새끼 값이 삼만원 하는 것이 무슨 상관이 있나요?
노장스님이 웃으면서 말하였다.
“사람새끼 값이 돼지새끼 값보다 못해서야!”
노보살은 그 말에 쓴웃음을 지으며 삼만원을 채워서 불공비로 내 놓았다.

3. 음, 찰밥을 했어?
생남불공을 올리는 중이었다.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정근이 계속되는 동안에 사시마지 공양이 올라왔다.
행자님이 탁자 위에 마지를 올려놓고 그 뚜껑을 열 때였다.
기도법사가 말하였다.
“음, 찰밥을 했어?”
마지 뚜껑이 열린 사이로 찰밥이 든 것을 보고 기도법사가 말을 꺼내자, 행자님은 대답을 아니할 수 없었다.
“예, 스님.”
“음, 잘했다.”
기도법사는 말을 이어나갔다. 행자님은 기도중에는 말을 시켜도 안되고 말을해서도 안 되는 줄은 알지만 기도법사가 말을 시키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었다. 사다라니(四多羅尼)를 요령으로 올리면서 또 다시 기도법사가 말을 하였다.
“희소식이다, 희소식이야!”
행자님이 의아해서 절을 하려다 말고 기도법사 얼굴을 찬찬히 바라보았다.
“……?”
기도법사는 요령소리도 그치지 않은 채 말하는 것이었다.
“최은희, 신상옥 내외가 탈출하였다!”
이 말에 행자님이 당황해 하자
“북한에서 탈출했다!”하고 설명을 늘어놓았다. 아마 그날 아침에 라디오 뉴스에서 들은 이야기가 기도중에 생각난 모양이었다.

마음이 한가해야 수죽운산 주인이고
고요한 마음이라야 풍화설월 즐긴다.
閑爲水竹雲山主
靜得風花雪月權

산중에 몸을 담고 있다고는 하나, 생각이 딴 곳에 가 있으면 그는 이미 산중 사람이 아니다. 생남불공 염불을 떠나 단순히 타성에 젖어서 노래가락 하듯 불전에 나서는 일은 그 이치와
같다. 직업인으로서 생남불공의 기도를 한다면 어찌 돼지새끼 값에 비길 만한 불공비마저도 받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