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인지 감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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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비의 소리 - 법연
1993년 10월 140호
올 여름은 여름 날씨답지 않은 이상저온 탓인지 아침마다 마당 가득 떨어져 있는 푸른 감들을 한 소쿠리씩 쓸어버리면서 올 가을에는 변변한 홍시 하나 따먹을 수 없겠구나 싶었다. 그런데 생각과는 달리 가을 햇볕에 하루가 다르게 붉어지며 모양을 갖춰 익어 가고 있는 감들이 꽤 많다. 하지만 여느 해 가을에 비해 감이 초라한 형색을 감추지 못함을 본다.
어쨌든 여름의 태풍과 폭우 그리고 그 많았던 낙과들을 생각하며 가을 한낮의 햇볕에 울긋불긋 익어 가는 감들을 보고 있으려니, 마치 역경을 겪는 사람을 보는 듯하여 눈물겹기조차 하다.
언제부터인가 서울 해인지 편집실의 옹색한 대문 옆에 자리한 감나무와 가야산 벼랑 바위틈에 겨우 버티고 있는 소나무 한 그루를 함께 떠올리곤 한다. 그 두 그루 나무의 수종이나 기품으로는 전혀 딴판인지 모르나 그 나무가 처한 장소나 조건은 닮았지 싶어서이다.
그에 비해 해인지 편집실의 대문 옆 감나무는 사람이 손수 심었을 것이다. 그러나 감나무가 서 있는 장소가 협소할뿐더러 시내 가로수 처지가 그러하듯 나무 둘레만 빼꼼히 남기고 시멘트로 발라져 있다. 워낙 좁은 마당이고 언덕 배기인 지형으로 보아 앞집 마당으로 내려가는 축대의 안전을 위하여 마당을 시멘트로 발랐는지 모르겠다. 이런 곳에 심겨 있는 감나무를 쳐다보며 내가 저 감나무였다면 숨이 막혀 죽어도 몇 번은 죽었을 거라는 생각을 가끔씩 한다.
밑둥과 가지는 정정하여 사, 오월부터 연두색 이파리를 틔워 당소굴 같은 꽃도 떨어뜨리고 여름에는 더욱 무성하여 한낮 땡볕 속에 우렁찬 매미 울음소리도 보듬어 주기도 한다. 가을이면 담 넘어 앞집 쪽으로 뻗어 있는 가지만큼의 감은 세 사는 사람들이 많은 앞집 사람들의 차지가 되곤 한다. 우리 집 쪽으로는 감을 따기보다는 그냥 두고 보는 쪽을 원하는 터에 초겨울 첫눈이 내릴 즈음에는 두어 개의 검어진 감이 까치들의 밥이 되어 짓 쪼아지곤 한다. 두어 마리의 까치들이 날아와 그 짓을 할 때는 좁은 편집실 마당뿐 아니라 주변 동네가 떠나가도록 수선스럽다.
겨울밤에 마당에 서면 잎을 다 떨어버린 감나무 가지 사이로 희미하나마 별들을 볼 때가 있으며 뿌연 서울 하늘을 배경으로 앙상하게 뻗어 있는 감나무에서 추연함을 느끼기도 한다.
눈이 펄펄 날리는 한겨울 가야산 벼랑 바위틈에 있는 소나무에서는 이렇듯 그 어떤 기품과 의지를 읽을 수 있는 반면에서 울 해인지 편집실 감나무에서는 애절함과 간절함이 있다. 물론 산중처럼 많은 나무가 있는 것도 아니고 생활의 거의가 이곳 편집실 안이라 더욱 그 감나무에 관심이 쏠리는 것은 당연하다. 까닭에 볼품없는 감나무에 나의 처지가 겹쳐지기도 한다. 가끔은 그 감나무가 의인화되어 가슴을 아리게 하는 통곡인 때도 있으며 먼먼 곳으로 치달리고자 하는 나무 가지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