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장(慈藏)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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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의 등불을 이어온 이 땅의 스님들 - 편집실
1990년 04월 98호
자장 대덕(大德)은 본래 전한(辰韓)의 진골(眞骨) 소판(蘇判) 김무림(金茂林)의 아들이었다. 늦도록 무림에게는 뒤를 이을 아들이 없었으므로 천수천안관세음보살님께 나아가 간절히 빌면서 이렇게 축원했다.
“만약 아들을 낳게 하시오면 장차 불법의 동량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홀연히 그 어머니 품으로 별 하나가 떨어져서 들어오는 꿈을 꾸고 태기가 있어 아기를 낳으니 부처님과 같은 초파일에 태어났으므로 선종랑(善宗郞)이라 이름하였다.
스님은 정신과 뜻이 슬기로웠고 글재주와 도량이 커서 날로 인품이 훌륭해져 갔다. 두 부모를 일찍 여의자 이후 속세의 시끄러움을 물리치고 또한 처자마저 버리고 자신의 전원(田園)에다 원녕사(元寧寺)를 세우고 오로지 고행에만 열중하였다.
그 이후 스님에게 재상자리에 천거하였으나 한가지 도심으로 물리치고 나아가지 않자 왕의 명령에 불복한다 하여 목을 베려했을 때 그의 행동과 그 때 지은 게송은 너무나 유명해서 지금도 불퇴전의 신행을 이야기할 때에는 널려 회자(回炙)되고 있다.
각설하고 자장스님께서 한국불교사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치는 첫째 계율의 정비와 불교적 형식의 완결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변방의 나라에 태어난 것을 탄식하던 스님은 중국으로 가 부처님의 위대한 불적의 순례와 선진 불교문화를 마음껏 공부하는 일이었다.
스님은 서기 636년에 나라의 사신 자격으로 문인(門人) 실(實) 등 10여명과 중국불교의 성지 청량산, 즉 중국의 오대산으로 가서 공부하니 문수대성을 만나는 등 여러가지 신이한 일이 많았다.
정관 17년 서기 643년에 신라의 선덕왕이 표문을 올려 스님의 환국을 청하자 이에 당 태종은 많은 선물과 ‘함께 불경과 불상’등 많은 불교용품을 싣고 신라로 돌아왔다.
이후 자장스님은 대국통이 되어 승니의 규범을 정하고 보살계 등 계율을 정비하는 한편 모든 나라의 법규 또한 바로 세우고 보름마다 포살을 행하는 등 모든 국가의 기강을 확립함에 있어 불교의 계율을 그 근본으로 삼았다.
통도사를 세워 율종의 근본도량으로 삼고 정암사를 비롯한 신라의 변방에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셔서 보궁을 삼았는데 이는 부처님의 신력으로 나라의 태평을 기원하기 위함이었다.
스님의 이러한 불교의 행식적 완비는 그 뒤, 원효, 의상을 비롯한 여러 불교사상사들이 출현할 수 있는 반석과 기초를 닦은 알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