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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깊은 청산靑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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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마의 방 - 최인호 1993년 10월 140호
불교인들과 만나서 얘기를 나눌 때면 으레 다음과 같은 화제로 돌아가게 되곤 한다.
곧 불교가 다른 종교에 비해서 포교 활동이나 사회 활동에 무심해서 날로 교세가 떨어지고 있다는 걱정의 소리를 듣게 되는 것이다. 많은 불교인들은 그것 때문에 근심하곤 한다.
절에 찾아가기 힘든 산중에만 있으니 점점 퇴보될 수밖에 없어서 절도 적극적으로 도시 생활 안으로 파고들어야 만하며, 불교인들도 다른 종교들처럼 병원을 세우고 학교를 세우고 양로원을 세우고 복지 시설을 세워 좀더 적극적으로 사회 활동을 함으로써 포교 활동에 많이 참여하여야 한다는 것이 불교인들의 한결같은 주장이었다.
물론 불교에서 마지막 구도의 길은 입전수수入廛垂手라 하여서 산중을 내려와 직접 저자거리로 들어가서 술 파는 할머니를 교화하여 성불케 하고 거리의 행인들을 위해 다리를 놓고 길을 닦는 보시를 하는 것임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이 한결같은 불교인들의 주장을 들을 때면 나는 언제나 이들과는 반대 입장에 서곤 한다.
이처럼 복잡하고 물질 만능의 혼탁한 사바세계를 정화하기 위해서 불교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산을 내려와 저자거리에 어울려 살면서 중생들을 위해 적극적으로 법회를 하고 법문을 하고 불사를 벌여 절을 지으며 포교 활동을 벌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깊은 산중으로 들어가 청산에 숨어 버리는 일이라고 나는 주장하는 것이다.
물론 한 집 건너마다 다방이요, 두 집 건너 술집이요, 세 집 건너 교회 십자가가 있는 것에 비하면 깊은 산중에만 숨어 있는 절의 존재는 어찌 보면 시대에 뒤떨어져 가는, 재개발 지구에서 철거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가건물과 같이 초라한 느낌마저 불러일으켜 위기감마저 느끼게 될지 모른다. 그래서 이러한 시대에 산 속에 머물면서 목탁이나 두드리고 선이라 하여서 공자왈 맹자왈을 외우던 옛 서당의 학동들처럼 케케묵은 한자어나 들먹이며 견성이니 성불이니 하는 것보다는 팔을 걷고 나서서 사바세계의 불쌍한 중생들을 위해 병원도 짓고 찬불가도 부르면서 불교에 대해 좀더 쉽게, 좀더 널리 알려 주는 활동이야말로 현대 불교의 나아갈 길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불교인들도 차츰 많아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러할 때 과연 불교인들이 해야 할 과제는 무엇인가.
아빌 라의 테레사는 1515년 스페인의 아빌 라에서 태어나 1581년 서거한 카톨릭 사상 가장 유명한 성녀 가운데에 한 사람이다. 그녀는 스물 한 살의 나이로 수녀원에 입회함으로써 구도자가 되었는데 그녀가 수녀원에 들어갔을 때는 수도원이라기보다는 귀족들의 사교장이었으며 아직 시집 못 간 처녀들이 알맞은 짝을 찾을 때까지 기다리던 일종의 대기소와 같은 곳이었다. 그녀는 이러한 완화된 수녀원을 초기의 사막 수도자처럼 엄격하고 가난하며 고독한 수도원으로 개혁할 것을 결심하여 봉쇄, 고독, 잠식을 개혁 수도원의 삼대 목표로 내세우고 이를 과감하게 개혁해 나갔던 것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개혁하는 수녀원의 이름을 ‘맨발의 수도원’이라 불렀다. 그녀는 수도자의 발에서 신발마저 벗김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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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써 무서운 청빈 정신을 실천해 나가기 시작하였는데, 그 무렵 많은 성직자들과 존경을 받던 귀족들은 도대체 이처럼 어리석기 짝이 없는 수도원 개혁이 무슨 소용이 있냐고 그녀를 질타하였다. 이 혼란한 시대에 수도원이 스스로 외부와의 문을 단절하고 평생을 수도원에 갇혀서 밤낮 기도만 하는 관상생활이 이 사회에 어떤 이익을 줄 수 있는가 하는 것이 기득권을 가졌던 모든 종교 집단의 질문이었다. 이에 그녀는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전쟁터에서는 적과 싸우는 병사만이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전쟁터에서는 비록 칼과 총을 들고 있지는 않지만 깃발을 들고 있는 기수도 필요한 법입니다. 기수는 비록 싸우지는 않지만 깃발을 들고 있으므로 모든 병사들에게 앞으로 나아가는 희망과 승리를 약속하는 상징적인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기수는 오히려 병사들보다 부상을 입거나 상처를 입어도 쓰러질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쓰러지면 깃발도 함께 쓰러지기 때문입니다. 또한 기수는 적(악마)으로부터 표적이 되기 쉽습니다. 적들은 기수를 쓰러뜨림으로써 그를 따르는 병사들의 사기를 떨어뜨리기 위해 집중적으로 기수를 공격하게 마련입니다. 우리들 수도자들은 전쟁터의 기수와 같은 것입니다.”
테레사 수녀의 말은 오늘날의 모든 수도자들에게도 적용될 것이다. 구도자들은 처음부터 영예로운 전사의 길을 포기한 사람들 아닌가. 적을 이기고 승리함으로써 개선 장군이 되면 몸에는 훈장과 승리의 갑옷을 입는 그 세속의 영광을 스스로 포기한 사람들이 아닌가. 수도자들은 예나 지금이나 아무런 보상도 없고 오직 적으로부터 표적이 되는, 그러면서도 가장 앞서서 나아갈 수밖에 없는 깃발을 세워 든 기수의 길을 스스로 선택한 사람들이 아닌가.
이러할 때 나는 불교인들이 좀더 깊은 청산으로 들어가는 것이 결과적으로 불교의 교세를 더욱 확장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남의 교화시키기보다는 스스로를 더 많이 교화시키는 불교인이 점점 늘어가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남을 성불시키기보다는 스스로를 성불시키고 도시의 한복판에 불사를 하여서 법당을 세우기보다는 자신의 마음속에 더 청정한 법당을 세우는 일이야말로 오늘을 사는 불교인들이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할 구도의 길이 아닐 것인가.
깊은 산 속에서 피어 있는 매화라 할지라도 그 향기는 산기슭에서도 맡을 수 있으며 매화의 향기는 숨길 수가 없는 것이다. 오히려 그 향기를 숨기려고 할수록 매화의 향기는 온 산에 흘러 넘칠 것이다.
일찍이 경허선사가 승려로서의 마지막 시절 애제자인 한암漢巖과 함께 범어사를 떠나서 해인사로 가는 길 도중에 다음과 같은 노래를 짓는다.

안다는 것 얕은 소견 이름만 높아가고
세상은 위태롭고 어지럽기만 하구나
모를 일이여 어느 곳에 가히 몸을 감출 것인가
어촌이나 술자리 그 어느 곳에 처소가 없을까마는
이름을 감출수록 이름이 더욱 새로워질까
다만 그를 두려워 하노라

경허의 시는 하나의 구경究竟이다.
진실로 그가 덕이 있다면 이름을 감추려 할수록 그 이름은 더욱 새로워질 것이다. 잊혀짐을 두려워해서 이름을 내보인다 해서 잊혀지지 않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경허의 시처럼 도에 들수록 잊혀지려 해도 잊혀지지 않는다. 숨기면 숨길수록 숨겨지지 않는다. 버리면 버릴수록 버려지지 않는다.
아빌라의 테레사와 더불어 남자 개혁 수도원의 창립자였던 뛰어난 영성가 ‘십자가의 성 요한’은 다음과 같이 노래하였다.

모든 것을 얻기에 이르려면
아무 것도 얻으려 하지 마라
모든 것이 되기에 이르려면
모든 것이 되려고 하지 마라
모든 것을 알기에 이르려면
아무 것도 알려고 하지 마라
맛보지 못한 것에 이르려면
맛없는 그 곳을 거쳐서 가라
모르는 그 곳에 이르려면
모르는 그 곳을 거쳐서 가라
가지지 못한 곳에 이르려면
가지지 않은 곳을 거쳐서 가라
그대 있지 않은 곳에 이르려면
그대 있지 않은 곳을 거쳐서 가라
아직 다다르지 않는 곳에 다다르려면
도중 아무 곳에도 발을 멈추지 마라

나는 오늘을 사는 우리 불교인들이 더 깊은 청산으로 들어가기를 바란다. 나는 우리의 불교인들이 더 가난한 맨발의 수도자이기를 바라며 나는 우리의 불교인들이 빈손의 수도자이기를 바란다. 더 서슬이 푸른 수도자가 되어서 매일매일 뾰족이 깍은 연필의 촉처럼 정신의 촉이 날카로워지기를 바란다. 가장 뾰족이 깎은 연필만이 가장 가는 선을 그을 수 있으며 가장 날카롭게 칼날을 간 취모검이야말로 먼지라도 끊을 수 있을 것이 아니겠는가.

최인호 선생님은 서울에서 태어났다. 단편「벽구멍으로」가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입선 문단에 나왔다. 대표작으로「바보들의 행진」「도시의 사냥꾼」「지구인」등 다수가 있으며「깊고 푸른 밤」으로 이상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최근작으로「잃어버린 왕국」「길 없는 길」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