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간지주幢竿支柱
다음 게시물
승가의 얼과 멋 - 편집실
1993년 10월 140호
오랜 세월 풍우 속에 빛 바랜 것들은 우리의 영혼에 새로운 영감을 불러일으킨다. 새롭게 단장한 절보다 켜켜한 역사의 뒷길을 걸어온 듯한 쇠락한 절이 더 우리의 가슴을 풍요롭게 하는 것도 그러한 경우일 터이다.
흔히 그냥 지나치기 쉽지만, 절 집에 들어서면 일주문보다 먼저 우리를 맞이하는 것은 당간지주이다. 일주문의 위용에 눌려 존재의 소리조차 내지 못하는 당간지주의 신앙적 의미는 크다. 한쪽 기둥은 사라지고 외기 둥만 있는 것도 있고, 받침대 돌리 흩어져 비스듬히 기울어져 있는 것도 있다. 이제는 절 집의 풍토가 바뀌어 관리가 소홀하고 쓰임새도 없어 버려진 유물로 남아 있지만 옛날엔 절 집 영화의 상징물이기도 했다.
당간지주는 당(깃발)을 매다는 당간(장대)을 지탱하는 기단 석을 말한다. 우리 나라에서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은 통일신라시대로 여겨지며 고려 시대에는 대규모의 건조물이 시설되었다. 이것의 역할은 사찰이 신성한 영역이라는 표시를 하는 구실을 하였으며 파사 현정의 뜻을 가졌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당간지주는 선사 시대의 솟대와도 일맥상통한다. 특히 선종 사찰에서는 참선 수행 중에 깨달음을 얻는 납자가 나오면 이를 천하에 알리기 위해 당간에 깃발을 올리기도 했다.
당간지주는 돌로 만든 것이 보통이나 철제, 금동제, 목제인 것도 있다. 기본 형식은 두 기둥을 육십에서 백 센티미터쯤 간격으로 양쪽에 세우고 그 안쪽 면에 상대하여 간공杆孔을 마련하고 아래는 간대杆臺나 기단 부를 설치하였다.
지금은 돈과 권력이 신성시되고 법당의 연등들이 절 집을 장엄하고 깨달음의 깃발을 올리는 일은 거의 없다. 오랜 역사의 흐름 속에서 자기의 역할을 끝낸 당간지주는 이제 쓸쓸히 홀로 지나간 역사의 영화를 반추하며 묵묵히 일주문을 지나는 사람을 지켜보고 있을 뿐이다.
이제라도 당간에 힘차게 나부끼는 깃발이 올려져 깨달음의 큰 외침이 우리의 잠든 눈을 번쩍 뜨이게 할 수는 없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