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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으로 들어가는 스님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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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림을 위한 사색 - 현기 1989년 09월 91호
이른 아침 잠을 깨어 문을 열어젖히면 마당 가득 매미울음에 고여 있습니다. 그 소리 시끄러워 다시 문을 닫으면 나는 평안한 고요입니다. 시끄러움과 고요함이 문 하나 사이를 두고 대치하고 있듯 내 빈 아침의 평안과 괴로움도 문 하나로 가름지워집니다. 그러나 나는 언제까지나 평안한 방안에만 머무를 수 없는 일, 이 고요는 잠시 스치우는 순간일 뿐입니다. 그리고 이 고요는 문만 열면 바깥 경계에 허물어질 고요이니 달리 의미가 있을 수도 없습니다. 하여 나는 이것마저도 버리고 싶어 마당으로 나가 온몸을 열어 놓습니다. 그리하여 잠시 매미 소리 가까이 다가가니 어느새 나도 매미소리가 됩니다. 매미울음 바다에 내 평안과 괴로움의 두 가지 경계가 소멸되어 떠내려 감을 봅니다. 스님, 저의 시끄러움과 고요함의 이 두 가지가 분별망상(分別妄相)에 의하여 일어났다면 분별망상을 여의는 수행이 나타난 경계를 떠나 고요 속에만 있는 것은 아닐 터, 어찌하여 우리의 산문은 고요 속에 굳게 닫혀만 있는지요. 세상이 시끄럽다고 하여, 승단이나 승려들의 모습이 부끄럽다하여, 산으로 산으로 향하는 스님들을 봅니다만 도(道)가 산중에만 있을 리는 만무할진대, 그것은 또 하나의 방문을 걸어닫음이 아니겠습니까? 한암(健岩) 스님의 시에도 이러한 구절이 있습니다. 어느 곳이 바쁜 곳이며 어떤 곳이 한가로운 곳이던가 (何處是忙何處間 ) 사람들은 언제나 이 두 가지에 머무르네 (浮生常在兩分間 ) 만약 바쁜 속에서 한가로운 뜻 알면 (若知忙裡眞消息) 달리 한가로움 찾아 산중에 머물 필요 없으리 (不必求閒樓碧山) 이와 같이 한처(閒處)와 망처(忙處)가 달리 있음이 아닐 것인데, 왜 우리는 수행을 빌미로 산으로만 가려 하는지요. 나는 불교의 깨달음이란 경계를 회피하는 것이나 초월하는 것이 아니라 경계를 타파하는 길이라 배웠습니디. 그런 의미에서 수행은 번뇌를 끊는 것이 아니요 비움이 아니라 번뇌가 보리종자(菩提種子)가 되게 하는 길일 것입니다〔煩腦卽菩提〕. 번뇌가 지혜종자가 되게 하는 길은 곧 나타난 경계의 타파에 있음이며 그 경계의 타파는 개인적인 형식에 있는 것이 아니라, 주관인 나와 나타난 경계(사회, 객관적)의 “사무침”에 있을 것입니다(매미울음 소리를 피하는 것이 아니요 혹은 방안에서 방밖의 매미소리를 의식적으로 혹은 격별하여 아름답게 들으려는 태도가 아니라 매미울음 소리가 들리는 곳에서 일체와 되는 것. 이럴 때만이 방안이든 방 밖이든 소리의 경계가 타파된다는 뜻). 그런 까닭에 한암스님의 시구처럼 역사의 현장을 떠나 달리 수행의 길을 찾음도 헛된 몸짓이요, 세간법(俗 : 忙)과 출세간법(眞 : 閒)을 가늠함도 또한 불법(佛法)이 아니거늘 어찌하여 요즈음의 절집 풍토가 수행이라는 명명 아래 역사의 현장을 모두 다 멀리 하려고만 하는지요. 중생을 여의고 본질을 캐내고자 함은, 수행하고자 함은, 온갖 거짓입니다. 중생을 여의지 않는다는 것은 바로 모든 중생들의 신음소리를 들을 줄 알 때만이 가능합니다. 중생들의 신음소리를 듣는 귀(耳)를 얻음은 항상 중생들의 곁에 있어야 합니다. 또한 깨달음도 중생들을 여의지 않은 깨달음이었을 때, 방편지혜(方便智慧)를 얻을 수 있습니다. 보살의 방편은 시기와 상황과 사람에 따라 적중(的中)한 길을 일러줍니다. 그런 연고로 오늘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오늘의 시기와 상황, 오늘의 인간과 조건을 파악치 못하고는 방편의 가르침을 내릴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번뇌가 지혜종자가 되는 길은 우리의 수행이 중생에 대한 끊임없는 책임과 헌신일 때 가능하며 그때의 번뇌는 중생을 향한 열뇌입니다. 중생의 *고(苦)는 다양합니다. 그리고 시대마다 중생의 모습이 다르듯 고는 다르게 나타납니다. 왜냐하면 고는 조건으로 말미암아 나타나기 때문입니다〔상응부경에 무상(無常 : 변화)하기 때문에 고(苦)요 苦는 연생(錄生)이다고 말하고 있다〕. 따라서 중생의 고를 해결하고자 하는 것은 그 시대 상황이 만들어낸 개인과 사회의 연기(緣起)적 조건을 변화시켜 주는 데 있으며, 그것이 나와 중생의 삶의 경계를 허무는 길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공(空), 무아(無我), 중도(中道), 식(識)이니 하는 것은 존재들의 법칙성을 밝히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 전제되는 부분은 모든 삶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지요. 그러나 저는 불교가 발달하여 오면서 그 철학적 깊이와 내용은 더욱 풍부하여졌는데 반해 그 행동력은 역사적으로 구체적이지 못하였는가에 대하여 의아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평생을 중생의 삶 가운데에서 보내셨습니다. 그것은 곧 중생의 문제를 해결(사회적인 苦이든, 개인적인 苦이든)하고자하였기 때문이었겠지요. 그런데 론사(論師)들, 특히나 대승론자들에게 있어서는 이러한 모습이 왜 보이질 않는 것인지요. 그것은 바로 불교론사들이 불교의 이론적 탐구에만, 즉 중생의 문제를 논리로만 다가서려 함에 있었던 것은 아닐런지요. 제가 이런 이야기를 하면 어떤 분은 서구적인 역사주의(유물론적)에 매몰되어 있다고 말하겠지요. 그러나 저는 그러한 관점을 갖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원융 무애한불교의 진리가 왜 불교의 울타리 안에만 머물러 있었느냐 하는 점입니다. 불교가 사물을 실재나 대상화시키지 말아야 함을 늘상 말하면서도 왜 불교는 사회를 대상화시키고 실재화시키고 있느냐는 것입니까. 불교의 참뜻이 연기적 삶에 있다면 오늘의 사회∙민족의 문제는 바로 불교가 싸안아야 될 일입니다. 여기서 불교의 생명력이 자양될 것입니다. 현상을 떠난 본질의 문제나 불교의 법칙성 문제는 회론이라는 뜻입니다. 흔히 어떤 스님은 현실에 집착하지 말고 삼세(三世)에 두루한 마음을 깨달으라고 합니다. 그러나 마음〔心〕이 고정된 하나의 실체를 뜻하는 것이 아닌 줄 압니다. 삼세(과거∙현재∙미래)가 따로이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현발하는 것이란 과연 또 무엇이겠습니까. 살아가는 현재 속에 과거와 미래가 항존(桓存)하겠지요. 다시 말씀드리면 살아 있는 현실의 모습이 과거의 역사요 현재 진행되고 있는 모든 움직임이 미래의 표상이 아니겠습니까. 현재를 떠나 과거가 달리 있음이 아니며 미래도 역시 단절되어 존재하지 않습니다. 과거, 현재, 미래는 고정된 실체도 아니니 언제나 우리의 변화하는 것, 진행되고 있는 상태로 받아들여야할 것이며, 그 속에 삼세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음을 인득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현재 일어나고 있는 어떤 사건(예를 들어 통일문제, 교원노조 등)을 해결하고자 하는 것도, 결국 오늘 이 시점의 문제가 아니라 삼세의 문제로 받아들여져야 할 것입니까. 이제 우리는 석가모니 부처님이 중생들에게 훌륭한 방편의 말씀을 나누었듯이 우리 시대의 깨달음은 우리 시대의 방편문을 열어야 할 절박함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이것은 방편이 곧 여래의 실어(實語 : 방편이 진리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스님, 학교를 졸업하고 유학을 준비하시다가 대중처소(선방, 강원)로 들어가시려고 결정하셨다 하니 참으로 반가움이 앞섭니다. 스님이 유학을 포기하시기까지에는 남달리 번민이 크셨으리라 가히 짐작이 갑니다. 옛날 스님들께서는 중물이 들었는가 안 들었는가를 곧잘 “장판때”에 비유하셨지요 .장판은 때에 절어 윤기가 나야만 이 장판의 제 모양을 낼 수 있지요. 때에 절은 장판만이 어떤 충격에도 잘 견디어 냅니다. 큰스님께서 말씀하신 “장판때”는 대중 속에서 얼마나 자기를 비워내고 묻혀 살았는가 혹은 승가가풍이 얼마나 몸에 배었는가를 가늠하는 상징적인 비유이지요. 곧 승가공동체 정신이 몸에 배어 있는가를 가늠하는 기준입니다. 절집의 풍토가 누구든 일년 중 한 철(한 계절)만이라도 대중생활을 할 것을 권유함은 대중생활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보여줍니다. 스님, 솔직히 표현하자면 tm님은 학교 다니시느라 아직 절집의 장판때 한번 못 묻혔지요. 저는 서울 생활에 조금 묻은 장판때마저도 다 빠져나가 버렸구요. 그러면서 불교 운운함은 낯 간지러운 소리입니다. 그러나 스님, 대중생활로 들어가는 tm님에게 한 가지 부탁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예전의 장판때는 “대중생활”, “r공동체생활”이라는 철저한 무언의 가풍과 청규가 면면히 이어져 내려왔지만 이즈음의 장판때는 오히려 자유주의자로 만들 우려가 있으니 경계하고 경계할 일입니다. 스님의 대중생활이 청정가풍을 되살려는 계기가 되어졌으면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청규와 계율을 철저히 잘 지켜야 할 것입니다. 제가 말씀드리는 계(戒)는 계율주의나 교조주의에 입각한 계가 아니라. 이 땅의 민중에 의지한 계율을 말합니다. 예를 들면, 오늘의 시대에선 술 한 잔보다도 하는 일 없이 자가용을 몰고 다님은 더욱 큰 파계행위이겠지요(승려가 자가용을 타는 것은 옛 때에 말을 타는 것과 같다. 자가용 타는 그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왜 자가용을 타는가하는 이유가 충분해야 한다는 뜻이다. 유흥이나 개인 편의를 위해서 타는 일은 이 시대의 민중의 아픔을 배반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민중의 고난과 아픔의 거울에 비춰 볼 때의 계(戒)야말로 가장 올바르다 할 수 있습니다. 청정승가정신이나 그 가풍도 이 땅의 모습을 반연할 때 더욱 굳건하게 일어설 수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걸식하심은 밥을 비는 데 뜻이 있음이 아니라 중생들의 삶의 모습을 살펴보기 위한 것처럼 산중 대중 속에 있더라도 마음은 언제나 중생의 밭에서 있어야 할 것입니다. 언제나 민중의 모습을 가슴에 새깁시다. 스님, 대중생활에 많은 깨우침 있기를, 그리고 저에게도 법열을 나눠주시길 빕니다. 그리고 학문을 위한 논리나 이론 역사의 문제를 쉬기 위한 좌선이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스님의 대중생활이 저자거리와 함께 하고 있어야 함을 유념 또 유념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주)苦에는 苦苦性, 行苦性, 壞苦性이 있다. 苦苦는 누구나 같이 공류적으로 느끼는 苦, 이를테면 생노병사 등이 그것이다. 行苦는 변화에 따라 느끼는 고, 조건에 따라 느끼는 고를 말함이다. 괴고(壞苦)는 무너짐을 뜻하니, 부자가 하루 아침에 가난하게 되는 것 등의 따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