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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 마음을 바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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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김재웅 1989년 09월 91호
불교는 한 말로 마음을 닦는 종교라 할 수 있다. 내 마음에서 올라오는 괴로운 마음, 화나는 마음, 열등감, 자만심 등등 모든 분별에서 연유하여 올라오는 모든 업장을, 궁리를 부처님 광명에 공양 올려 마음을 비워서 밝게 알자는 일이다. 진심 닦아 성불이란 말씀이 있듯이 업장을 다 닦으면 밝아질 것이다.
백성욱 선생님께서는 철두철미하게 업장을 닦고 몸뚱이의 애착을 닦도록 이끌어 주셨다. 경기도의 소사도량에서 근본 업장을 닦으면서 때로는 꾸중을 듣기도 했으며 매도 맞았다.
대중들 앞에서 호되게 꾸중을 들을 때 자존심과 선배라는 권위가 무버져내리는 아픔, 망신과 모욕을 당한다는 괴로움에 몸 둘 바를 몰랐다. 마음 속에서 올라오는 불만과 설움이 교차되는 고통은 너무나 컸다. 그때마다 고통 당한다는 그 놈을 계속 주시하고 그 곳에다 대고 ‘미륵존여래불’을 바치면 법의 매 맞는 그 놈이 내가 아닌 삼자처럼 느껴지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별로 부끄럽지도 괴롭지도 않아지기 시작한다. 아상(我相)이 뾰족 올라오는 데다 바치니 해탈이 되는 증거다. 실은 육신은 내가 아닌데 육신이 나의 전부인 줄 알던 습성을 깨친 것이며 그 점을 실천해 익어가는 과정일 것이다.
무더운 여름날도 덥다고 어쩔 줄 몰라하는 그놈을 바치면 고통이 적어지면서 그런 대로 견딜 만하다. 조금 더울 뿐이지 숨통이 터질 것 같은 짜증은 없다. 내 마음을 거느리고 내 육신을 길들이는 일이다.
비가 온 뒷날 콩밭을 메는데 지두콩이란 신품종 콩은 키가 크고 잎이 넓고 무성하여 보통 콩줄기보다 큰 편이다. 콩밭 이랑 속에서 쪼그리고 앉아 호미로 김을 메면 바람 한 점 콩밭 이랑으로 들어오지 않고 땅에서 혹 올라오는 뜨거운 열기에 숨통이 막힌다. 날은 후덥지근하고 등에는 따가운 볕이 내려쬐는데 가장 더운 한시경에 덥다는 생각에 계속 바치는 정진을 하면 등골로 흘러내리는 땀방울이 굴러 피부에 닿는 그 촉감이 빗방울이 흘러 내리듯 오히려 시원하다. 마음 속에 성냄과 열이 있으면 답답하여 밖에서 쬐이는 열과 날씨로 인하여 더위를 먹기 쉬운데 마음 속을 계속 바치니 밖이 더워도 안에 열을 잘 바쳐 아무 일 없는 듯이 기슴이 시원해지고 찬바람이 나는 듯하다.
공부는 호흡 들이쉬고 내쉬는 사이에 공부가 있는 줄 알고 바쳐야 한다. 그게 마음 닦는 일에 성공하는 비결인 것이다. 소사의 수도생활 7년 6개월 동안 더운 여름 l2시에서 3시 사이에도 한번 쉬지 않고 무거운 지게를 지고 풀 베고 김 매고 밭 갈고 리어커 끌고 하는 일 하면서 더위를 조복 받았고 덤다고 어리광 부리는 마음을 용서하지 않았다. 약하고 게으른 마음을 사정 보지 않고 매섭게 다스렸다. 밤이나 낮이나 부처님 전에 마음 바치는 일의 연속이었고 온몸에 땀에 흥건히 베어 몸에 옷이 철썩 달라붙어 몸 전체가 끈끈하여 싫은 마음이 일어나는 순간 순간 부처님 전에 그 싫은 생각을 용서를 하지 않고 드린다.
어떤 곳에서든지 나란 아상을 용납치 않아야 한다.
소젖을 짜는데 소 몸에서 발산하는 뜨거운 열을 온몸에 받으며 소 다리에 상체 붙이고 소의 배에는 이마를 대고 힘들어 하는 팔로 젖 짜는 순간은 너무나 어렵다. 오줌 똥이 묻은 소 꼬리가 쇠파리를 쫒느라 후리칠 때 어쩌다 그 꼬리가 눈과 입술을 맞히는 순간은 메스꺼움과 구역질이 나올 지경이다. 그런 순간에 ‘미륵존여래불’을 그 마음에 바치면 참 보람을 느낀다.
얼굴엔 더러운 냄새와 온몸엔 땀이 비오듯 흐르는 가운데 두손으로 젖을 짜면서 소 발길질이 우유 동이를 업지를까 싶어 양무릎 사이에 감도는 긴장은 생사 생사를 건너가는 큰 공부거리다. 공부와 일이 둘이 아니고 일하면서 올라오는 생각을 부처님 전에 바치는 속에서 복과 지혜가 자란다.
이렇게 염불하고 마음 닦는 일에 열중하다보면 온 심신이 밝고 씩씩하여 힘찬 환희와 공경심이 마음 가득 차게 된다. 악조건은 닦을 마음을 가장 잘 일으켜 공부를 쉽게 이루게 해 준다. 기막힌 순간에 부처님이 나오느냐, 원망심이 나오느냐, 의지하는 마음이 나오느냐, 부처님 모시는 마음이 나오느냐, 무서움이 나오느냐, 염불이 나오느냐 수 없는 마음을 수 없이 부처님 전에 드리는 연습이 부단히 이어져야 할 것이다.
공부는 산중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시끄러운 시장바닥에서도 부처님 향하는 순간에 있고 시시각각 분별심을 부처님 전에 바치는 찰라 어디에도 있을 수 있다. 생활과 불법이 둘이 아니며 불법과 사회현상이 둘이 아니다. 캄캄한 밤중에 먼 밭에서 농작물을 지게로 나를 때 누가 뒤에서 잡아당기는 것 같은 때 무서운 마음이 들면 그 자리에서 그 마음을 바치고 편안한 뒤라야 내려왔으며 어떤 때는 얼음판 위에서 30분간 장괘무릎을 하고 다 바친 다음에 내려왔으며 한번도 몸뚱이 애착에 항복한 적이 없다고 생각하며 내 마음은 늘 실패가 없는
전쟁터와 같았다.
추운 마음을 항복받기 위해 산골짝 우물에서 영하 9도가 될 때까지 저녁 공부 전에 목욕을 매일 하였다. 우물물을 퍼서 옷을 벗은 채 머리 위에서 찬물을 뒤집어부을 때에는 심장이 멎는 것 같고 머리카락은 순간 얼음덩이로 변하고 맨살 위에는 얼음이 번쩍거린다. 또 어떤 날은 더운 물로 씻을 때도 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옷을 입을 쯤에는 찬 물로 목욕할 때가 훨씬 훈훈함을 느꼈다.
찬물을 영하 9도에서 뒤집어 쓸 때에도 오직 ‘미륵존여래불’ 정진에 몰입할 뿐이다.
처음 소사에서 지낼 때 홀로 고향에 두고 온 홀어머니를 생각하는 자식의 마음은 갈기갈기 찢어지는 것 같았다. 그 마음도 계속 바치어 진한 혈육의 정, 업보의 정을 항복받은 일은 참 보람되었고 욕정은 부끄러운 것이기에 오히려 방심치 않고 잘 바쳐지나 홀어머니에 대한 업연과 애착은 정말 아프게 닦았다.
이런 업보를 해탈하고 깊은 뿌리의 업장들을 하나하나 해탈하고 나니 세상은 조용하고 밝으며 의심은 풀어지고 아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어진다. 마음은 늘 가볍고 환하며 부처님에 대한 고마움과 공경심은 가슴 가득 벅차오르며 세세생생 선지식 만나 법문 듣고 부처님 시봉을 발원하는 마음이 저절로 나온다.
사람 몸 받기 어렵고 불법 만나기 어렵고 선지식 만나기 어렵다고 하는데 이 세상에 태어나서 금강경을 만나 마음 닦는 것보다 더 큰 기쁨과 보람이 어디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