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직하고 부지런한 사람이 왜 가난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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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 효림
1989년 09월 91호
‘성실한 사람, 정직한 사람, 부지런한 사람이 잘 사는 사회’라는 말은 이미 이십 년 전 박정권 때부터 늘 들어온 말이다. 박정권이 유신을 할 때도 부지런하고 성실한 사람이 잘 사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그후 5공화국이 들어설 때도 표현의 차이는 있었지만 역시 이 말이 나왔고 오늘날 현정권도 역시 보통 사람, 착하고 부지런한 사람이 잘 사는 사회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는 어떤가. 잘 살기 위해서는 어떤 짓을 하고 있는가? 부동산 투기나 하고 퇴폐 유흥업소 등을 차리며 급기야는 인신매매와 같은 극악무도한 짓을 해서라도 돈만 벌면 된다는 세상이 되고 말았다.
왜 세상은 이 모양이 되고 말았는가? 어쩌자고 우리 사회가 이렇게까지 타락하고 도덕성이 몰락했는가?
얼마 전에 나는 오랫만에 고향엘 갔었다. 출가하여 사문이 된 뒤로 고향을 찾는 기회가 적었던 나는 설레이는 마음으로 고향을 찾아서 연로하신 부모님도 만나뵙고, 벌써 초로(初老)에 들어선 큰형도 만났고, 중년의 나이로 농촌을 지키는 친구들도 만났다. 내가 어린 시절 아름다운 꿈을 간직하고 자란 그 고향의 산과 들은 그대로인데 농촌의 실정은 옛날 같지가 않았다.
오랫만에 만난 고향 사람들은 한결같이 농사짓기가 겁이 나고 무엇보다 지쳤다고 했다. 한마디로 농사에 대한 의욕이 없었다.
나의 큰형의 경우만 해도 몇 년 전에 배추농사를 했다가 가격 폭락으로 천만원대의 빚을 졌는데 아직도 다 갚지 못했다고 했다. 거기다가 담배막에 조합의 돈 삼백만원을 빚내어 기계 시설까지 했는데 그만 외국담배 수입으로 소용없게 되었으며 그래서 그 담배막에다가 고추 건조를 하겠다고 고추농사를 했다가 또 빚만졌다고 했다. 농촌운동을 하겠다고 고향에 남아 있는 친구는 나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오늘날 이 땅의 농민은 농사 지어서 풍년이 들면 망한다.”
어떻게 해서 농민이 농사를 피땀 흘려 지어서 풍년이 들면 오히려 망하는가? 배추가 풍년 되면 그 해 배추농가는 망하고 고추농사 지어서 풍년 들면 그 해 고추농가는 망한다. 이것이 오늘 우리 농촌의 현실이다. 세상에 땅보다 정직한 것이 없다고 믿는 사람들, 그래서 땅
을 닮아 속일 줄 모르는 사람들, 새벽부터 밤 늦도록 등골 빠지게 일만 하는 사람들, 이들이 정직과 성실로써 지은 농사가 어떻게 이들을 오히려 망가뜨리고 있는지 나의 우둔한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이같은 현상은 비단 농촌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도시의 노동자들도 마찬가지다. 나는 아직 내 주위에서 가난하면서 게으른 사람을 보지 못했다. 도시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은 반드시 가장 부지런한 사람들이다.
보라, 새벽부터 골목을 청소하는 청소부를. 저들은 자기 구역의 일을 자기 혼자 다 해내기에는 너무 벅찬 작업량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일요일도 집에서 편안하게 쉬지 못한다. 아니 오히려 일요일엔 집에서 쉬고 있는 다른 가족까지 동원해서 일을 하다가 사고를 당하는 일
까지 발생한 적이 있었다.
내가 살고 있는 이곳 인천의 남구 숭의 4동 산동네에서 가장 부지런하고 힘든 일을 하는 사람은 연탄 배달부 아줌마이다. 여자의 몸으로 오르기에는 너무나 힘든 가파른 산동네 골목길을 연탄을 열 장 내지 여덟 장씩 가지고 오를 때마다 내 가슴이 다 저려 온다. 그것도 겨우 한 장에 이십원 밖에 남지 않는 일을 너무나 열심히 하는데 요즘에는 그나마 일이 없어 걱정하는 모습을 보았다.
지금 우리 사회는 대통령의 말대로 보통사람의 시대도 아니고 정직하고 성실한 사람에 잘사는 사회도 아니다. 아니 오히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정직한 사람은 일찌감치 살기를 포기하고 죽어야 하는 세상이다. 정직한 사람이 사회정의를 말하다가는 오히려 용공이 되고 좌경이 되기 때문이다.
87년도 현재 보사부에서는 전국적으로 생활보호대상자(극빈자)를 삼백구십칠만여 명으로 책정하고 이천이백억여 원의 예산을 .투여하고 있다는 통계 수치를 본 적이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등급에 따라 생계비, 학비, 의료비 등과 취로사업비, 직업훈련비, 생업자금 융자까지 포함된 수치임을 나타내고 있다. 이 밖에도 각종 사회단체들에서 나름대로 대상자를 선정해서 도움을 주고 있다고도 한다. 이것이 대충 이 땅의 극빈자 정책의 실태이다.
하지만 지난해 문교부 국정감사에서는 팔천여 명의 국민학생이 점심 도시락을 못 싸와서 결식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것이 금년에는 그 수가 더욱 늘어서 지난 3월 말 팔천이백여명으로 나타났다는 사실이다.
국가 경제는 해마다 발전하는 것으로 수치가 말해 주는데 점심 도시락을 못 싸오는 아동은 왜 자꾸 늘어나는가? 이것도 교육위원회와 학교측에서 대외적인 이미지가 나빠진다는 이유로 실제보다 삼분의 일이나 축소했다는 것이 밝혀지기도 해서 더욱 우리를 놀라게 했다. 그뿐 아니라 결식 자신이 점심을 굶는다는 사실이 창피해서 숨기는 경우가 많다고 하니 그 숫자가 얼마나 될지는 미지수다.
얼마 전 텔레비전에서는 백화점에서 파는 스타킹 한 컬레가 십오만 원이니 여자용 팬티 한 조각이 삼십만원이니 하는 기막힌 뉴스를 방영한 적이 있었다. 그래 똑같은 하늘 아래에서 어떤 놈은 삼십만 원 하는 팬티 입고 거들먹거리며 살고 어떤 놈은 닭장집에서 죽도록 고생만 해야 하는 지옥의 삶을 살아야 하는가? 이런 사회환경 속에서 어떻게 건강한 삶, 올바른 삶을 강요할 수 있단 말인가.
그뿐 아니라 저들은 결코 게으르지도 불건전하지도 않다. 적어도 일주일에 쉰여덟 시간 노동을 해도 그 모양이라면 우리는 이러한 모순된 사회를 고발할 수밖에 없으며 또한 제대로 입지도 자지도 못하는 노예 같은 삶을 사는 저들이 설령 노동조합을 만들어서 인간답게 살겠다고 과격한 행동을 했다고 해서 좌경용공으로만 몰아세울 수 있겠는가.
죄가 있다면 못 배운 것과 가난이 죄일 뿐 인간답게 살겠다는 그들의 요구를 우리는 이해하고 수용해야만 될 것이다.
그동안 우리 사회가 수출과 경제 우선 정책으로 일관해 왔기 때문에 경제적으로는 어느 정도 성공했지만 아직까지 이 경제적인 성공에서 소외된 계층들이 너무나 많으며 소득의 분배라는 차원에서 볼 때에도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가 너무나 현격하게 차이가 나 사회불안의 큰 요소가 아닐 수 없다. 그동안 농민이나 노동자의 일방적인 희생으로 경제발전이 이루어진 줄 모르고, 요즈음 외제 차에다 수입 골프채에다 삼십만원짜리 팬티나 입는 족속들이 자신의 몫을 찾으려는 노동자들을 향해 용공 좌경으로만 몰아붙인다면 이것은 인간 이하의 짓이다. 정녕 정부의 견해대로 좌경이 나쁘고 용공이 부정되어야 할 것이라면 저들이 용공분자요 빨갱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 일 아닌가. 그들 때문에 용공주의자도 빨갱이도 만들어지니 말이다.
한 나라의 국가나 사회가 바로 서자면 그야말로 정직하고 성실한 사람이 잘 사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누구든지 부지런히 일한 만큼 대가를 받을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퇴폐 유흥업소도 없어지고 투기꾼도 없어진다. 정직한 사람이 대접받는 사회는 무엇보다 사기꾼 협잡모리배로 정권을 휘어잡는 무리가 용납되지 않는 사회다. 정직한 사람이란 기만적 술책을 부리는 정상배들을 용서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실한 사람, 정직한 사람이 잘 사는 사회란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모든 사람이 함께 노력해야 할 때만이 가능하다. 무엇보다 우리들 보통사람이 정상모리배를 절대로 용납하지 않을 때만 가능한 것이다.
“대통령 할아버지께서는 정직하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은 잘 살 수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우리 아빠께서는 정직하고 부지런히 일만 하시는데 왜 우리는 이렇게 가난할까요” (신동아)라고 말하지만 어느 국민학교 학생의 절규가 우리의 가슴을 때리고 있다.
아직 양심이 있고 미안함을 알고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이라면 이 편지를 받고 한가닥 눈물이 없지 않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