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의 농민으로 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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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마의 방 - 전언눔
1989년 09월 91호
현진스님, 9박 10일의 일정을 마치고서 강대의 농활대가 오늘 떠나는 날입니다.
불과 10여일이었지만 흙투성이, 땀범벅이 되어 농민들과 고락을 함께 하여 버려져 있는 이 땅의 농촌 현실을 진심으로 이해하려는 그들의 자세를 보면서 흐뭇하기도 하고 대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인지 막상 오늘 그들이 떠날 때에는 섭섭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들은 떠나면서 “건강하세요.: 하고 인사했고 나의 대답은 ”그래, 너희들이 그토록 씩씩하게 살아가고 공부하는데 어찌 내가 건강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였습니다.
현진스님, 농민들은 씨를 뿌린 다음 그 씨가 가뭄과 비바람을 이기고 거칠고 딱딱한 땅을 뚫고 싹 트는 탄생을 마음 조이고 기다립니다. 그러다 싹이 터 나는 것을 보면서 탄생의 기쁨을 맛봅니다. 그러나 잘못되어 뿌린 씨가 싹도 트지 않고 혹 실오라기 같은 싹이 트다가 시들어 버리면 맥이 풀려 버린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이 땅의 희망인 젊은이들이 씩씩하고 힘차게 거친 세파를 헤치고 우뚝 솟아올라 힘차게 나아갈 때 무한한 힘을 얻습니다. 사실 나의 건강은 세끼의 밥과 함께 젊은이들의 모습에 좌우되는 편입니다.
현진스님. 며칠 비워 두었던 방에 군불을 넣었습니다. 오래 불기가 없었던 탓으로 부엌에 습기가 꽉 차서 불쏘시개가 꽤 들었답니다. 매일 불을 탤 때에는 불쏘시개가 그리 많이 들지는 않았답니다. 이렇게 부엌에서 불 때는 작은 일에서조차 많은 배움을 얻을 수 있습니다.
불은 우선 부엌에 가득 찬 습기를 다 없앤 다음에야 제대로 타기 시작합니다. 한참 신나게 탈 때에는 생나무를 다 넣어도 잘 타지요. 생나무도 마른나무와 적당히 만나게 되면 손색없는 땔감 노릇을 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오랫동안 타는 데는 생나무가 제격이랍니다.
불을 넣다보면 가마솥에 물이 끓게 마련입니다. 보통 때는 그렇게 잠잠하던 물이 온통 소리를 내지르고 그 육중한 무쇠 솥뚜껑을 밀어올린답니다. 그렇게 잠잠하던 물도 불을 만나니까 꽤 무서운 힘을 내는구나 싶어 신나기도 하고 왈각 겁이 나기도 합니다. 하기야 동구 밖 큰 시냇물을 볼짝시면 수량이 적을 때에는 정답기까지 하던 물이, 비가 많이 오는 장마 때에나 홍수가 져서 굽이쳐 흐를 때에는 겁도 나고 힘도 솟아오르지요. 아무런 힘도 없어 보이던 물도 많이 모이면 큰 둑을 무너뜨리고 무서운 파괴력을 가지는 것이지요. 그래서 권좌에 계신 분들이 백성들이 하나로 뭉치는 것을 다는 그 속셈을 헤아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현진스님, 그런데 말입니다. 그 물을 정확히 측정해 본 적은 없지만, 99도에는 결코 끓지 않는다고 해요. 물도 고집이 있는가 봐요. 가끔 우리는 불을 좀 때다가 물이 꿇지 않는다고 어리석게도 물을 나무라고, 불 때는 일을 걷어치우는 짓을 곧잘 하는 것 같아요. 나도 국민학교 다닐 때 물은 100O도에서 끓는다는 걸 건성으로 배우긴 하였어도 그것을 실제 생활에서 깨닫고 느끼기는 최근의 일이랍니다. 물은 100도가 되어야 끓는다. 물은 1%도에서 끓는다. 그렇다면 ○○은 몇 도가 되어야 움직이고 ××은 몇 도가 되어야 끓을까? 최근에 급진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우리의 민주와 통일운동은 과연 몇 도가 되어야 실현되겠는가? 참으로 깊이 궁리해 보게 됩니다. 스님, 불을 땐 다음 가끔 저는 화로에 그 불을 담기를 좋아합니다. 내 딴에는 잘 한답사고 화로를 쏟아 묵은 재를 다 쏟아버리고 알불만 담으려고 애쓰는데, 이 모습을 보고 우리 집 할멈이 그러면 안 된다고 해요. 화로 바닥에 묵은 재를 남겨두고 불 위에도 묵은 재로 알불을 덮어야 불이 오래 간다는 것입니다.
요즈음은 좋은 난방기구랑 성냥 같은 것이 혼해졌지만, 자리를 메는 저는 겨울에는 아직도 꼭 화로에 불을 담아 애용하지요. 불을 담을 때마다, 묵은 재가 알불을 감싸주는 것을 배우면서 늙은 몸의 역할을 생각해 보게 된답니다.
현진스님, 농사에 얽힌 이야기를 다시 할까 합니다. 아시다시피 농사는 철따라 씨 뿌리고 가꾸고 거두어 나누고 간수하지요. 작년에 돌아가신 민병산 선생님의 서예 유작전에서 농경사회의 유습의 하나인 24절기를 쓴 것을 보았습니다. 그걸 보면서 저는 생각에 잠기게 되었습니다. 선생님이 어떠한 뜻으로 저것을 썼을까? 입춘 입하 입추 입동 대한으로 한 해가 가고 새로 시작되는 24절기를. 나는 순간 대한에서 입춘이 이어짐에는 바로 절망이 희망으로 이어지는 이치가 숨겨져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또 요즘처럼 시간의 단위를 분초로 나누고 사는 각박한 생활과는 다른, 계절따라 여유있게 농사에 맞춘 옛 어른들의 지혜를 엿보았습니다. 나아가 팔다리로 하는 농사야말로 천지기운에 가장 순응하는 것임을, 그래서 농사짓는 농자가 천하지 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라 하는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본래 우리나라 농가에서는 얼음이 풀리기 전에는 땔나무나 하고 가마니나 섬을 만들고 새끼 꼬고 농한기가 있었지요. 지금은 선진농업이라 해서 비닐하우스를 만들어, 엄청난 열과 인력을 바쳐 겨울에도 푸성귀를 만들고 온갖 과일을 먹는 바람에 이젠 농한기가 없답니다. 전등불을 온실에 켜 놓아 밤마저 없애버렸지요. 정말 농민들의 그런 모습을 보고 있자면, 마치 새벽부터 밤 늦도록 과외수업을 받아야하는 학생들의 모습처럼 애처롭습니다. 계속 경쟁 속에 내몰리고 있는 이 사람들에게 결국 남는 것은 병입니다만, 이러한 것이 유행처럼 되어 있는 것이 오늘의 농촌의 한 단면입니다. 농사가 자연에 순응하는 것일진대, 자연의 뜻을 역행하는 것이 궁극에는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당장은 모르겠으나 언젠가 자연 나름대로의 방법과 법칙으로 인간을 응징하고야 말 것이 아닌가 하는 두려운 생각이 든답니다.
입춘을 지나 우수 경칩이 되어 대동강이 풀리고 땅이 녹기 시작하면 봄갈이가 시작됩니다. 꽁꽁 얼었던 땅이 풀리면 아주 질퍽질퍽하지요. 혼돈과 혼란이지요. 새로운 시작에는 언제나 이런 혼란과 혼돈이 있기 마련이지요. 이러한 이치는 새로움으로 나아가는 사회에서도 나타나기 마련이라고 생각됩니다.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갈 때 가장 심한 격동과 혼란이 따릅니다. 마치 혁명기에 혼란과 변화가 있듯이, 이러한 혼란과 변화야말로 바로 새 세상을 여는 징조이며 축복입니다. 그러므로 그런 혼란과 변화를 받아들이지 않으려 한다면 언제까지나 겨울공화국 일 뿐입니다. 쟁기로 땅을 간다는 것은 흙을 뒤집어 엎는 것인데, 깊이 갈수록 좋습니다. 철저한 변화가 좋다는 이치와 같습니다.
땅을 갈기 위하여 우리는 소를 부리지요. 그동안 이웃의 소 부리는 것을 배울겸 해서 살펴보았는데 어떤 사람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소에 겁을 주면서 혹사시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상일꾼들은 소와 호홉을 잘 맞추어 마치 율동을 하듯 소를 부리는데 단단한 흙이 물결을 가르듯 넘어가는 그 모습이 사람도 소도 여유로와 탄복할 지경이었습니다. 그 어떤 경지에 도달한 것이어서 옆에서 보는 사람까지 신이 났습니다.
현진스님, 그래서 곰곰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성숙한 민중은 상일꾼들이 소를 잘 다루듯이 정부를 다루어가는 게 아닌가고. 우리는 아직도 끌려가다 버티고 섰지 부리지는 못하는 게 아닐까고. 상일꾼이 되어야 소를 부려 땅을 깊이 팔 수 있게 되듯, 성숙한 민중이 되어야 정부를 다루어 세상을 깊이깊이 갈아 엎을 수 있는 것이라고. 그러기 위해서는 역시 소를 많이 부려보는 길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결론을 얻었답니다.
신동협 사인의 글에 전경인(全耕人)이란 글귀가 있는데, 시인의 정확한 뜻은 잘 모르지만, 저 나름대로 농사를 지으면서 그 ‘전경’이란 그런 뜻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분업과 위정자의 의도로 농민들은 농사만 지으라고 합니다만, 농사짓는 일이 단순히 땅을 가는 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농업생산이 사회의 한 부분에 지나지 않지만, 농산물 값은 사회 전체적인 성격이 아주 강합니다. 특히 작년의 고추값 파동은 바로 농산물의 유통이란 측면에서 사회와의 관계를 뚜렷이 보여주는 한 보기였습니다. 농산물이 자연과 농민의 합작품인데 그것이 제값을 받지 못한다는 것은 하늘과 대지의 뜻에 어긋나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려하여 나라의 근본인 농민의 삶이 경시당하자 그들은 분노했던 것입니다. 그것을 묵살하려고 최류탄을 쏘고 잠자리 비행기로 공중위협을 한 일이 벽지 봉화 장터에서 일어났고, 일부 농민들은 화가 나서 고추를 싣고 서울 한복판에까지 갔던 것입니다.
이제까지 농민들은 타의로든 자의로든 묵묵히 땅만 갈아 왔습니다. 태어나면서부터 나라를 하늘처럼 믿고 땅을 하늘처럼 믿으면서 순박하고 온순하게 살아 왔던 것입니다. 마치 24절기의 순행처럼 농사를 천직으로 생각하면서 말입니다. 그러나 그 순응은 복종이 아닙니다. 못된 놈을 만나면 추상같은 호령도 하고 막된 놈에게는 벼락도 치고, 떼도둑과 부딪치면 홍수처럼 그것들을 휩쓸어 동해나 서해로 쓸어버릴 수 있는 힘을 지녔다고 생각합니다. 마치 하늘에 대한 기대가 어긋나면 바지 걷어부치고 시퍼런 가래를 들고 샘을 파거나 보를 치듯이, 나쁜 환경을 스스로 개척하는 힘이 곧 순응이라고 말입니다.
이미 땅을 갈았으니 씨를 뿌려야지요. 그런데 모두들 올해는 무엇을 하지 않고 망설입니다. 농사지어 보았자 빚만 늘고있다고 흥분하다가, 봄이 되면 버릇처럽 밭을 갈고 또 빈 밭을 그냥 둘 수 없어 뭘 하긴 해야겠는데 도통 확신이 서지 않습니다. 화투노름 하듯, 그저 돈 될 만한 것만 생각하는 투기성 농사가 되어버리니, 그 다양한 오곡은 사라졌습니다. 한해는이것이다 하고 마구 시작했다가 다음해에는 또 저것이다 하며, 마치 서울거리의 여자들 유행옷처렴 부침이 심한 것은 오늘의 농촌이 얼마나 허약한가를 증명합니다.
그런데 이건 또 웬말입니까? 초복 더위에 쏟아지는 땀을 펼친 신문에는 미국, 농축수산물 등 수입제한 품목 94년까지 완전 개방 요구라는 큰 제목이 실려 있는 게 아닙니까? 참으로어처구니가 없습니다. 최첨단의 기술과학문명을 개발하였고 스스로 세계 제일의 강대국임을 자처하는 미국이 어찌하여 우방인 이곳 농민들의 딱한 사정과 그 분노를 헤아리지 못하는 건지요? 미국에 대한 기대와 문명에 대한 기대가 한꺼번에 무너져 버립니다. 그들은 과학기술에 능하고 생산을 발전시켰지만, 인간을 이해하지 못하는 얼빼기들일 성싶습니다. 인간의 욕망이 생생하게 살아 있는 한 강대국이 약소국을 괴롭히는 일은 계속될 터이지만, 미국의처사는 정말 원망스럽습니다.
스님께 너무나 나 자신의 넋두리를 길게 늘어 놓은 점 해량하여 주십시오. 늦기 전에 때가리 밭의 풀을 뽑고, 쉰날거리 팔을 심으러 가야 할 것 같습니다.
지금 뜨락에는 시골 소녀처럼 청초한 도라지꽃이 온통 햇빛 속에서 그 푸르고 흰 모습을 환하게 드러내 놓았습니다.
스님의 안녕을 다시 한번 기원드리면서 이만 총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