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 재산 공개 발표의 요지와 반박 요지
국민 여론 형성에 영향력이 가장 큰 텔레비전 방송 뉴스 시간에 불교계 소식이 머릿기사로 다루어진 사례는 극히 찾아보기 어렵다. 그런데도 총무원장의 7.14선언은 당당히 머릿기사로 다루어졌다. “작금, 종교가 소유하고 있는 재산과 그 운용에서 불합리하게 활용되고 있는 것처럼 비춰지고 있고, 부의 축적 대상인 양 오도되고 있는데 대하여 조계종은 깨끗한 마음으로 희사된 불교도들의 재산을 사회에 공개하고, 종교 본연의 책무를 다하고자 한다”는 의미심장한 내용이 있어서일까. 아무튼 총무원장은 일차로 이 개월 안에 전국의 사찰 기본 공공 재산(부동산과 동산) 전체를 등록 받아, 실사를 통해 파악, 공개하고 이후 연간 예산(수입, 지출)도 공개하여 공익 사업 등 합리적으로 집행되도록 지도 감독하겠다고 밝혔다.
말하자면 조계종에 등록된 사찰의 모든 재산과 재정을 정확하게 공표하여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겠다는 의지의 천명이다. 대단히 바람직한 의지임에는 틀림없다. 그렇기에 언론의 관심을 끌기에는 충분하였던 것 같다. 그런데도 왜 정작 불교 내부에서 반발이 있을까. 실천불교 승가회는 ‘총무원장의 기상천외한 재산 공개 선언은 본말이 전도된 판단’이기에 부당하다고 지적한다. 진정한 재산 공개가 이루어지려면 종권을 담당하고 있는 총무원장을 비롯하여 종무 담당자들의 사찰과 개인 재산이 앞서서 공개될 때에 설득력을 갖는다고 주장한다. 대통령이 먼저 자신의 재산을 공개한 사례를 본받으라는 충고가 되겠다. 그런데 문제는, 불교계에는 특별히 공개할 만한 재산이 없음을 실천불교승가회는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불교 재산은 이미 전통사찰보존법에 의해 외부에 공개되고 있다. 1988년 5월 18일 발표된 이 법은 불교 재산의 등록을 의무화하여, 법의 허가 없이는 함부로 재산을 유실이나 은닉 할 수 없다. 지은 지 50년 이상된 사찰은 부동산이나 동산을 조목조목 열거해서 문화체육부에 신고해야 하며 재산권의 사용은 관의 허가가 있어야 가능하다. 따라서 교계에서는 진작부터 이 법이 불교 발전을 저해한다고 하여 폐지 운동을 벌여 왔다. 또한 사찰의 재정 상황은 총무원에 신고되고 있으며 총무원은 주요사찰의 감사를 실시, 예결산 사형을 점검하여 왔다. 조계종 종헌 제44조4항에 ‘총무원장은 종헌종법이 정하는 바에 따라 종단과 사찰에 속한 재산을 감독하며, 그 처분에서는 승인권을 갖는다’고 분명히 적시되어 있다. 같은 조6항에는 ‘예산 승인권과 중요사찰의 예산 조정권을 갖는다’고 하였다. ‘이 개월 안에 전국 사찰의 부동산과 동산의 등록과 실사를 통한 공고’는 결국 동어 반복인 셈이다. 그렇다면 그 동안 종헌이나 전사법 상에 명시되어 있는 의무조항이 지켜지지 않고 탈법 행위가 만연되어 왔다는 뜻인가. 총무원장은 재산 공개 선언 직후에 가진 MBC와의 인터뷰에서 “일부 몰지각한 승려들이 호텔 등에서 호위호식 한다”는 내용의 발언을 하였다. 결국 일반 실정법과 종헌 상의 명문조항을 무시하는 부정한 승려가 있으니 강력한 제재가 필요함을 비쳤다. 결론적으로 재산 공개보다는 ‘사찰이나 주지에 대한 제재’를 겨냥한 포석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다시 실천불교승가회의 성명을 인용하면, 이번 재산 공개 파문은 정부의 왜곡된 개혁 명분을 뒷받침해 주는 것과 더불어 총무원장의 개인적 입지를 굳히고 확대하기 위한 수단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떨칠 수가 없었다.
앞으로의 전망
이번 조계종의 재산 공개선언 이전에 종교계의 재산 공개가 자정 차원에서 논의되어야 한다는 발언이 있었다. 지난 4월 천주교의 김수환 추기경은 ‘필요하다면 종교계의 재산과 재정 공개가 바람직하다’고 했으며 김영삼 대통령도 고위공직자 재산파동이 얼마쯤 수그러들 무렵에 종교계의 자정을 당부하였다. 특히 개신교단을 겨냥한 재산 공개 발언을 하여 종교계의 촉각을 예민하게 하였다. 그 뒤 별반 종교계 재산 문제 발언이 없다가 이번 총무원장의 발표가 다시금 그와 같은 문제를 발단케 되는 것이 아닌가 하여 귀추가 주목된다. ‘자정’의 차원을 넘어선 ‘사정’의 선상에서 정부가 개입할 여지를 제공해 주는 빌미가 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어쨌든 한국 불교계의 개혁을 위해 조계종이 모범을 보이겠다는 의지는 돋보이는 일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미 정부의 개혁이 ‘공직자 재산 공개’로써는 한계를 나타낸 마당에 불교계 재산 공개를 통한 개혁을 내건다는 것은 개혁의 본질을 희석시킬 소지가 많다. 진정 조계종단이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고 나아가 날로 침체되는 교세를 반전시키려면 인기성 선언이 아닌 실천적인 자세를 먼저 보여야 한다.
사방이 온통 벌건 십자가 철탑의 옹벽 속에서 종단의 재정적 정신적인 지원을 받지 못한 채 고군분투하며 전법의 사도로 정진하는 포교원이나 사설 사찰이 아닌 밤중에 홍두깨 격으로 재정을 공개하고 재산을 감사받으라면 누군들 순응하겠는가. 정말로 불교 재산의 공개가 불가피하다면 총무원에 신고된 재산을 먼저 공개하고, 중앙의 행정 담당자들의 재산부터 밝혀서 먼저 모범을 보여야 한다. 그리고 충분하게 시간 여유를 갖고서 시행해야 한다. 다급하게 이 개월이라는 시한을 정할 이유가 조금도 없다. 공연히 제 발등 찍을 자충수를 둔다면 불교계에 전혀 도움이 되질 않는다.
개혁은 법과 제도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종단의 제도 개혁위원회가 대중의 여론을 충분히 수렴하여 일정한 개혁안을 수립하고 이것이 종회의 의결을 거쳐 공포되는 절차상의 적법성도 갖추어야 한다. 개혁의 선언이 인기 위주가 되지 않으려면 이 점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종헌을 무시한 승려를 제재하기에 앞서, 또한 제재만을 위한 종헌종법을 신설하기에 앞서 공동체의 규범부터 존중하는 자세가 절실히 요구된다. 화합하고 평등한 권리를 선양하는 기풍이 충만하면 삼보정재의 유용은 막을 수 있다. 우리의 공동체가 사부대중에게 열려 있어 모두가 신뢰하는 자세를 회복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앞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