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들이 금강산을 만행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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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비의 소리 - 현응
1989년 09월 91호
문 목사와 문 신부가 북한을 방문했으니 이젠 문 스님 차례라는 우스갯소리가 신문 만화에 실린 적이 있었다. 우스운 이야기 같으면서도 무심히 넘길 수 없는 심각함이 내포되어 있어,
느끼기에 따라 실질적인 통일논의와 노력이 부족한 불교계로서는 낯 뜨거운 농담이 되었다.
그러던 중 법타스님이 포교 목적으로 세계청년축전 기간 중에 북한을 다녀와서 북한 불교의 실태를 소개하고 남북한의 문화적 이질감과 체제간의 문제점을 해결하는 데 불교인의 노력을 촉구하여 신문의 만담이 반쯤은 현실로 된 듯하다. 물론 스님의 성씨가 문 씨가 아니고 신 씨인 차이만큼이나 문 목사나 문 신부의 경우와는 방북의 내용과 성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 스님이 할 수 있었던 그 정도가 사실 한국불교의 현재의 능력이며 실태이니까.
그러나 스님이 밝혀온 내용, 즉 이북에서의 불경 번역 상태, 스님들의 수행과 포교실태, 사찰의 보존상태, 정치와 불교교단의 관계, 신도나 북한주민의 불교적 이해 정도 등은 매우 중요한 정보로서 불교를 중흥하고 민족의 공동적 문화를 복원하고 창출하는 데 중요한 참고가 될 것이다.
현재 이 땅에는 공안정국의 찬바람이 불고 있지만 일시적인 정치현상으로 봄이 타당할 것이고 민족역량의 강화와 자신감을 바탕으로 통일조국에의 길은 안정 속에 넓혀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근년에 와선 많은 스님들이 중공으로, 연변으로 또 북한으로 오고 가고 있으니 늘상 하는 절집안 지대방 한담 중 걸망 메고 금강산과 묘향산을 순례하고 만주벌판과 중국전역을 만행했으면 하는 희망도 이젠 멀지 않아 모든 운수객(雲水客)에게 현실로 다가올 것이다.
조금 창피한 일이지만 정부의 행정조직에서 이북의 각 도, 군의 책임자가 임명되어 있는 것처럼 불교종단에서도 이북의 주요사찰의 주지가 이미 임명되어 있다(북한의 현지 사찰주지가 이 사실을 알면 매우 불쾌하여 봉은사 사태라도 일으킬지 모르겠다). 그러나 총무원과 해당 주지스님이나 전 종도들이 통일 후의 북한에서 어떻게 사원을 관리하고 국민을 포교하고 새로운 민족국가를 창조하는 데 불교가 향도적 노력을 할 것인가에 대해선 무심히 인연에 맡겨두고 있으니 매우 딱한 노릇이다.
비단 불교 문제뿐이겠는가? 통일문제나 기타 세간살이 문제에 대해서도 불교도들은 너무 소심하게 생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 ‘강인하면서도 유연함’, ‘지혜로우면서도 자비로움’, 이런 것들이 사실 불교도의 미덕이 아닌가? 세간에서는 바로 이 정을 지금불교에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임수경 양 평양축전 참가 사건만 해도 그렇다. 임 양 자신이야 알고 저질렀고 각오했으니 형벌을 받겠지만 이 문제를 수용하는 기성세대는 이무래도 너무 가볍고 이기적이고 부족하다 .사실 임 양 사건은 애초 청부가 연초에 대학생들의 평양축전 참석 허용 방침에 따른 뒷받침 속에 이루어졌다면 전혀 다른 사회적 분위기가 연출되었을 것이고 통일에의 전망도 또 달라지게 되었을 것이다. 설사 또 그렇게 되지 못했더라도 기성세대가 받아들이기에 따라, 또 언론이 긍정적 평가와 여론을 조성함에 따라 신선한 충격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수도 있었을 것이다.
아무튼 임 양 사건을 두고 여러 가지 걱정과 평가가 다양하지만 그러한 입장들은 정치적, 사회적 변화와 조건의 소산이라서 고정적이고 영원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문제는 이 모든 것이 우리 민족의 역량 또는 기성세대의 경륜과 노력으로 얼마든지 발전적으로 물꼬를 틀 수 있음을 자각하는 일이다. 왜냐하면 이 문제는 공안적으로, 정치적으로 몰아갈 일이 아니라 통일에의 길로 몰아가는 슬기가 요구되는 일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덧붙여서 임 양의 북한에서의 행적과 발언이 일부밖에 알려야지지 않아 임 양 사건의 중요한 본질적 내용이 가려지고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언론은 책임을 통감하고 전체 행적을 밝혀 주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뒷짐 지고 무심히 통일열차에 무임편승한 많은 불자와 스님들도 기름과 연료가 필요한 지금 차비를 좀 내야 할 것이다.
금강산으로 백두산으로 만행을 하기 위해서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