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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동물산책(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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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강화 - 윤상림 1993년 08월 138호
나까무라 하지메 편. 윤상림 한글 번역

인도에서는 도회지의 혼잡을 떠나 한 걸음 교외로 나가면 반드시 물소를 보게 된다. 갠지스강 하류나 인도 중앙부에는 아직 야생 물소가 있다고 하지만 우리가 보게 되는 물소는 거의 가축이다. 힘이 센 데다가 의젓한 성격으로 농사나 짐 나르기에 잘 쓰며 똥도 말려 땔감으로 쓴다. 잘 보면 그 얼굴 생김새나 몸매는 귀엽기 그지없다. 어미 소의 뒤를 어린 물소가 따라 다니는 모습도 웃음0| 나온다.

물소 ― 인내와 자비의 마음
인도에서는 도회지의 혼잡을 떠나 한 걸음 교외로 나가면 반드시 물소를 보게 된다. 갠지스강 하류나 인도 중앙부에는 아직 야생 물소가 있다고 하지만 우리가 보게 되는 물소는 거의 가축이다. 힘이 센 데다가 의젓한 성격으로 농사나 짐 나르기에 잘 쓰며 똥도 말려 땔감으로 쓴다. 잘 보면 그 얼굴 생김새나 몸매는 귀엽기 그지없다. 어미 소의 뒤를 어린 물소가 따라 다니는 모습도 웃음0| 나온다. 어떤 백과사전에는 그 고기 질이 나쁘고 젖도 거의 쓰지 않는다고 했지만 이것은 잘못된 것이다. 물소의 젖은 인도인이 즐겨 마시는 홍차에는 없어서는 안 될 물건이며, 그 젖으로 만든 버터도 무척 맛있던 기억이 난다. 거기에다가 인도에 있는 외국인용 호텔에서 내놓는 스테이크란 바로 이 물소 고기이다.
물소를 산스크리트어로는 ‘마히샤’ 빠리어로는 ‘마히사’라고 하는데, 인도의 신화에서는 마히샤는 마족魔族 아스라와 같은 종족으로 나온다. 물소의 모습을 한 마히샤는 뒬가여신의 손에 죽었기 때문에 인도인은 시바신의 부인이기도 한 뒬가여신을 마히샤를 죽인 여신 곧 마히샤 말듀라고 부르며 그녀를 믿는다.
「쟈타카」278(마히샤 쟈타카)에는 물소의 전생 이야기가 실려 있다. 거기에는 인내와 자비심을 지닌 물소와 그 등에 올라타고는 눈에 보이는 게 없는 것처럼 까부는 못된 원숭이가 나온다. 그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히말라야 지방에 사는 한 마리의 물소가 한층 힘이 센 어른 소가 되었다. 그는 숲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어떤 나무 앞에서 잠시 멈췄다. 그러자 한 원숭이가 나무에서 내려와 물소 등에 타고는 그 위에 똥오줌을 싸는 등 온갖 못된 짓을 다 했다. 물소는 그런 원숭이를 아랑곳하지 않고 그냥 내버려두었다. 원숭이의 끈덕진 장난을 보다 못한 나무의 신이 어느 날 물소를 찾아와 원숭이가 못된 짓을 더 이상 못하게 하는 게 어떻겠냐고 했다. 그러자 물소는 원숭이의 해꽂이를 견디는 것은 하고 싶어 그러는 것이라 했다. 만일 자기가 원숭이에게 못된 짓을 못 하게 하면 다른 물소나 코끼리에게 같은 짓을 할 것이고, 그러다가는 반드시 앙갚음을 당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마침내 원숭이는 다른 물소를 그 물소인 줄 알고 까불다가 그만 뿔에 찔려 죽고 말았다. 여기 나오는 인내와 자비심을 지닌 물소는 보살이었던 석존의 전생이었다고 한다.
(「남전대장경南傳大藏經」 제 31권, 소부경전小部經典 9 참조)

인내와 자비의 마음을 지닌 보살의 모습은 대승불전에도 나온다. 「법화경」에서 나오는 상불경보살常不輕菩薩은 인간이 보살 수행을 하면 반드시 뒷날에 부처가 되리라는 것을 말한다. 이를테면 인간의 성불 가능성을 힘주어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은 상불경보살의 이런 호소에 대해서 흙덩이나 나무 조각을 던지거나 모욕을 준다. 상불경보살은 그런 때는 일부러 맞서지 않고 그 자리에서 물러나 멀리 떨어져서 그들이 성불할 수 있음을 또 설했다고 한다. 사람들의 비난이나 중상 그리고 박해에 견딘 이 상불경보살이야말로 석존의 전생이라고 「법화경」상불경보살품은 말한다.
물소의 전생 이야기는 그 무대가 봐라나시(지금의 바라나스)인데 브라후마닷타 임금이 통치할 때였다고 한다. 현재의 바라나스와 강가강 북쪽 물가는 가아도라고 불리는 계단식 목욕장이 줄지어 있고 맞은편 남쪽 물가에는 논밭이 죽 이어진다. 원시 경전에 강가강 북쪽 물가에는 인간은 선을 행한다고 한다. 북쪽 물가는 가아도나 사원이 자리잡는 종교 도시였기 때문이리라. 강가강의 목욕장에서는 계절을 불문하고 이른 아침부터 힌두교 신도인 남녀노소가 강속에 몸을 담그고 몸을 깨끗이 하여 경건한 기도를 올린다. 이 큰 강은 맑고 흐림을 가릴 것 없이 신도의 바람을 끌어안고 있는 듯하다. 물론 한센씨병에 걸린 사람들도 목욕하는 곳이 있다. 그들도 조금 하류인 가아도에서 성스런 큰 강에 몸을 담그고 신에게 기도를 드린다.
필자는 10월에 바라나스를 방문한 적이 있다. 아직 더위가 계속되는 속에서 중국인, 일본인 친구들과 함께 가아도 견학을 갔다. 배에 올라탄 우리는 젊은 사공이 노 젓는 대로 북쪽 물가의 가아도를 따라 강 아래로 내려갔다. 계단 모양을 한 물가에는 목욕을 한 사람들이 성스런 강물을 손잡이가 달린 작은 그릇에 넣어 가는 모습도 보였다. 그런가 하면 배 앞편에서 물소 두 마리가 등을 물위로 드러내고 물을 끼얹는 광경에도 맞딱뜨렸다. 물에 젖어 빛나는 두 등의 뻣뻣한 털이 분명히 물소 두 마리로 보였다. 그런데 그 중 하나는 사람이 아닌가. 둥실 떠 있는 몸에 난 털과 살빛을 잘 살펴보면 분명히 사람인데도 우리는 그만 물소로 잘못 보았다. 그들은 물소를 식구처럼 얼굴을 함께 물에 담그고 몸을 비비고 있었다. 인도의 윤회사상으로 말한다면 물소가 우리의 부모였는지도 모를 일이고, 우리가 다시 물소의 모습이 안 된다고 장담할 수도 없는 일이다. 〈미토모 료쥰〉

윤상림 씨는 서울에서 태어났다. 이화여자대학교 국문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고, 동경의 케오(慶應)대학 대학원에서 중문학과 연구 과정을 수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