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호 보기


보덕(普德) 대사

다음 게시물
진리의 등불을 이어온 이 땅의 스님들 - 편집실 1989년 09월 91호
보덕스님은 고구려 말기 무덕(618)과 정관(貞觀) 연간에 고구려에 살면서 영통사(靈通寺)를 창건하고 열반경을 강설했던 고승이다.
이 무렵의 고구려는 영류왕 때 들어온 도교의 신봉이 유행하고 있을 때였다. 특히 보장왕이 즉위하자 왕의 총애를 받던 연개소문은 왕에게 간청하여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는 등 도교의 홍포에 힘을 기울이고 었었다.
그 때 반룡사에 있던 보덕화상이 도교가 불교와 맞서면 나라의 운명이 위태로와질 것을 염려하였다. 이에 여러 차례 왕에게 간했으나 왕이 듣지 않으므로 신력으로 살고 있던 방장(方丈)을 날려 남쪽 완산주 고대산(孤大山)으로 옮겨 살았는데 그 해가 영휘 원년 경술(650)년 6월이다. 물론 스님의 예언대로 그 이후 나라가 망하니 669년 즉 19년 뒤의 일이었다.
보덕스님은 이 나라 불교사에 크게 추앙받아야 할 점은 열반종의 비조였다는 점이다. 그의 열반경 사상은 원효와 의상대사에게 전해졌으며 원효대사의 현존하는 저술「열반경 종요(宗要)」도 그의 영향 아래에서 출발하고 있다.
그 이후에도 신라에서는 계속 열반경의 주석서가 만들어졌으며 고려시대 대각국사에까지 미쳐 열반경의 전수와 학문적 성과가 보덕대사의 영향임을 그의 저술에서 밝히고 있다.
이러한 학덕 때문에 그에게는 덕 높은 제자들아 많았는데 그 중 무상화상은 그의 제자 김취 등과 함께 금동사(金洞寺)를 세웠고, 적멸, 의융 두 법사는 진구사(珍丘寺)를 지수화상은 대승사를 일승화장은 심정, 대원스님 등과 대원사(大原寺)를 세웠고 수정스님은 유마사를 세웠으며 사대(四大)스님은 계육과 함께 중대사를 세웠고 개원(開原) 화상은 개원사를 세웠고 명덕(明德)은 연구사(藏口寺)를 세웠다. 이와 같은 그의 제자들은 많은 불사를 일으켰던 것이다.
삼국유사를 쓴 일연대사는 스님의 유덕을 이렇게 노래하고 있다.

불교는 드넓은 바다처럼 끝이 없어라.
백천(百ll|)의 유도교(儒道敎) 다 받아들이네.
가소롭다. 저 여왕(麗王) 웅덩이를 막으니,
와룡(臥龍)이 바다로 옮겨감을 알지 못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