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리쟁이의 꿈 - 꼬마요정 아사달의 세상구경(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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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동화 - 곽재구
1993년 08월 138호
피리쟁이는 바다로 이어지는 내리막길을 휘적휘적 걸어 내려갔습니다. 달빛들이 여전히 피리쟁이의 어깨며 바랑 위에 수북수북 내려 쌓였습니다. 피리쟁이는 잠시 걸음을 멈췄습니다. 뒤를 돌아보던 그는 한동안 손을 흔들었습니다.
“아저씨와 함께 있고 싶어요. 저를 데려가 줘요.”
피리쟁이의 머리 속에 나리꽃의 목소리가 자꾸만 웅웅거렸습니다.
“난 집도 형제도 없는 사람이란다. 어떻게 그럴 수 있겠니?”
피리쟁이는 함께 따라오겠다는 나리꽃을 차분하게 달래 보았으나 나리꽃은 막무가내였습니다.
“집과 형제가 무슨 대수인가요? 난 그냥 바랑 끝에 꽂혀 있으면 되는 걸요.”
“넌 세상을 잘 몰라서 그래. 나도 네가 내 바랑 위에 꽂혀 함께 얘기도 하고 피리도 불고 바람도 쏘이고 싶구나.”
“그런데 뭘 망설이는 거죠? 나도 아저씨 목소리도 듣고 피리 소리도 듣고 새로운 세상 구경도 하고 싶어요. 그러다가 잠이 들면 아저씨 등위에서 그대로 잠이 들기도 하구요.”
“내 등에서 잠이 든다고 말했니? 그 말이 참 듣기 좋구나. 그래, 나도 네가 내 등에 업혀 새근새근 잠이 든다면 너무 좋겠다. 난 사실 한 번도 누군가의 등에 업혔던 적이 없었어. 물론 누굴 업어 주었던 적도 없었지...”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 왔습니다. 가늘고 섬세한 달빛들의 올이 불어오는 바람에 이리저리 날렸습니다. 피리쟁이는 달빛들의 움직이는 모습이 아까 나리꽃이 연주했던 피리 가락과 썩 닮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난 네가 좋다. 네가 내 피리를 부는 순간 내 마음이 얼마나 설레였는지... 그렇지만 나를 따라 나설 수는 없어. 뜨거운 햇볕 속을 걷노라면 넌 사흘도 못 가 완전히 시들고 말 거야. 개울물 같은 데서 충분히 목을 축여 준다 해도 말이지...”
피리쟁이의 말에 나리꽃은 아무런 대꾸가 없었습니다. 피리쟁이는 사흘을 못 가 시들고 말 것이라는 자신의 말에 나리꽃이 톡톡히 겁을 먹은 모양이라고 지레 짐작을 했습니다.
“왜 아무 말도 못하지?”
피리쟁이가 나리꽃의 옆구리를 찌르며 말했을 때 나리꽃의 대답이 그만 피리쟁이의 가슴을 온통 휘저어 놓았습니다.
“사흘씩이나 아니어도 좋아요. 그냥 한나절만 함께 있다 시든다 해도 난 좋은 걸요.”
피리쟁이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가슴의 떨림 때문에 한동안 눈을 감고 있다 뜬 피리쟁이의 눈앞에 나리꽃이 쿨적쿨적 우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피리쟁이는 자신의 가슴으로 나리꽃의 어깨를 포근히 감싸 안았습니다.
“울지마. 그래 우리 함께 가도록 하자.”
“정말이에요? 날 데려간다는 말이죠.”
말을 마친 나리꽃은 피리쟁이의 가슴 안으로 깊게 안겨 왔습니다.
“널 데려갈 좋은 생각이 났어.”
“무슨 방법인데요?”
“그건 좀 뒤에 이야기하도록 하지. 대신 내가 먼저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
“듣고 싶어요.”
나리꽃은 자신의 머리를 피리쟁이의 어깨 위에 가만히 뉘었습니다. 피리쟁이는 달빛을 충분히 받은 나리꽃의 이마가 썩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30년 전 이야기야. 그날 난 스승을 만나러 가는 참이었지. 스승은 내게 10년 동안 공부를 하고 돌아오라 말씀하셨어. 이를테면 그 10년의 공부를 다 마친 셈이지. 자, 봐라. 저기 저 내리막길을 막 돌아 바다로 들어서면 큰 기와집 만한 바위 하나가 있지. 우린 그 바위를 너럭바위라고 불렀단다. 바위 위에 올라서면 넓게 앉아 어른 다섯은 충분히 앉을 자리가 있었지. 그 바위 위에서 난 스승과 만나기로 약속이 되었었지. 단오가 지난 첫 보름날 밤이 바로 그 약속 날이었구나. 바위에 올라섰을 때 스승은 바다 쪽을 바라보며 조용히 앉아 계셨지. 난 스승의 등뒤에 무릎을 꿇고 앉아 말했지.
‘스승님 저 돌아왔습니다.’ 스승은 아무 대답도 없었지. 그대로 한 시각을 넘겼어. 스승이 말문을 연 것은 날이 막 바뀔 즈음이었지. 달빛들이 수북수북 떨어지는 바다는 큰 거울과 같았단다. 가까운 섬들의 그림자가 바다 가운데 떨어져 있었지.
‘그래 무슨 공부를 하였느냐?’ 스승은 바다를 본 채 말문을 여셨단다. 난 지체없이 대답했지. ‘소리를 들었습니다.’ ‘좋은 공부를 하였구나. 그래 여태껏 들은 소리를 한 번 이야기해 보려므나.’
난 스승에게 그 동안 내가 세상을 떠돌면서 들은 이야기를 하나씩 이야기했지. 그 속에는 물론 언덕 위에서 만난 나리꽃의 이야기도 들어 있었어. 바로 그 순간이었지. 바다가 갑자기 들끓기 시작했지. 여태까지의 고요가 깨지고 달빛들이 수런대기 시작했어. 마치 거대한 소나기가 몰려 온다고나 할까? 아니면 모래바람의 회오리가 불어닥치기 시작했다고나 할까? 그 게 뭐였는 줄 아니? 조기 떼였단다. 엄청난 조기 떼였지. 규규규규. 조기 떼의 울음소리가 온 바다를 뒤덮었단다.
‘저게 무슨 소린 줄 아느냐?’‘조기 떼의 울음소립니다.’ 난 침착하게 대답했지. 사실 너럭바위 주변 사람들에게 오월 보름날의 조기 떼는 잘 알려져 있었지. 조기잡이가 바로 이들의 생업이었으니까 말이야. 그 때였어. 스승이 손바닥으로 바위를 쳤지. 그러고는 나즉하게 이야기했어. ‘춤을 추게 하라. 춤을!’ 나는 한동안 바다를 바라보았지. 스승의 말은 조기 떼의 춤을 보고 싶다는 거였지. 그것은 내 10년 동안 공부의 결실을 확인하려는 스승의 의도이기도 했지. 나는 피리를 들고 스승의 옆자리에 앉았어. 그러고는 한동안 바다를 바라보았지. 이내 명상에 잠기기 시작했어. 이게 얼마나 난해한 시험 문제라는 것을 난 잘 알고 있었지. 내 피리소리로 수천 수억만 마리의 조기 떼를 춤추게 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은 처음부터 하지 않았어. 그건 문제를 더욱 난해하게 할뿐이기 때문이지. 어쩌면 내 안에는 스승보다 더 강렬하게 내가 10년 동안 공부한 능력들을 시험해 보고 싶은 욕망이 있었는지도 몰라.
나는 가능하면 내 능력을 다 펼쳐 보이려는 생각을 했지. 조기 떼가 춤을 추고 안 추고의 문제는 그 뒤의 일이라 생각했던 거야. 나는 그 동안 내가 만났던 세상의 모든 소리들을 하나씩 떠올렸지. 어떤 한 순간 내 가슴속에서는 그 때 만난 소리들이 지금 쏟아지는 달빛과 뒤섞여 춤을 추기 시작했어.
난 피리를 불기 시작했지. 가능하면 내가 만난 모든 소리들이 가장 아름다운 형태로 춤을 추는 그런 가락들을 빚어냈지. 한동안 바다가 조용해졌단다. 요란하던 조기 떼의 울음소리도 끊겼지. 조기 떼가 내 피리 소리를 듣기 시작한 거야. 어려운 대목은 바로 그 때부터였지. 비록 조기 떼들이 피리 소리에 관심을 가졌다고는 해도 그 많은 조기 떼들이 춤을 추게 할만큼의 강력한 아름다움과 힘을 내가 가질 수 있는가 하는 것은 여전히 어려운 문제일 수밖에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지.
그런데, 그런데, 난, 해내었단다. 조기 떼들이 춤을 추기 시작한 거야. 바로 고갯마루에서 만난 나리꽃이 연주했던 그 선율을 내가 연주하기 시작할 때였어. 정말 부드럽고 섬세한 가락이었지. 그 소리를 만들기 위해 나는 나리꽃잎이 바람의 살을 만나 부벼 내는 소리만큼의 바람을 만들어야 했지. 한없이 부드러우면서도 한없이 강렬한 힘! 그 힘이 내 피리 구멍들을 들쑤시기 시작했어. 나는 내 가락들이 아울러 나리꽃의 향내를 뿜어 주기를 바랬지. 그 향기를 달빛들이 먼 바다까지 실어가 주길 바랬어. 눈을 온전히 감았지만 조기 떼의 춤을 휜히 보이더구나. 그건 최초의 경험이었지. 눈을 뜨면 보이는 것은 너무 작아. 겨우 눈에 띄는 부분만 보일 뿐이지. 그런데 눈을 감으니까 다 보이는 거야.
‘그만 멈추어라.’ 그 때, 스승이 말씀하셨어. 나는 연주를 멈추었지. 그러고는 자랑스런 눈빛으로 스승을 바라보았어. 내 스스로도 대견했지. 생각해 봐라. 서해바다를 가득 메운 조기 떼를 춤추게 하다니...그게 좀 대단한 일이겠니. 그런데 스승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 그냥 그대로 자리에 앉아 또 명상에 잠기셨지. 얼마쯤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겠구나. 비로소 스승이 입을 열었지.
‘빨리 깨우쳤구나. 그만 멈추게 해라.’ 처음 나는 스승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지. 그런데 곧장 알게 되었어. 스승이 조기 떼의 춤을 멈추게 하라고 말씀하신 거야. 그 때서야 난 아직도 조기 떼가 춤을 추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 너무 희열에 찬 나머지 그만 조기 떼에 관해서는 생각이 끊겨 있었지. 그 많은 조기 떼가 제각각 춤을 추는 모습을 생각해 보았니? 처음엔 스스로도 그 모습에 감동이 되었지. 그런데 차츰 두려움이 들더구나. ‘저 많은 조기 떼들의 춤을 어떻게 멈추게 할 수 있는 거지?’ 나도 모르게 그런 생각들이 가슴을 채우기 시작했지.
‘그만 멈추게 해라!’ 스승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다시 울려 퍼졌지. 나는 피리 구멍 위에 손가락을 올렸지. 손가락과 입술, 그리고 가슴이 함께 떨리기 시작하더구나. 나는 내가 생각하는 모든 소리들을 총동원해 조기 떼의 춤을 멈추고자 했지. 그러나 불가능했어. 조기 떼의 춤은 어느 부분 더 격렬해지기까지 했어.
‘그만 멈추어라.’ 스승의 말이 오히려 나를 살려 주었지. 스승은 내 피리 소리를 멈추게 했어. 그러고는 내게 손을 내밀었지. 나는 말없이 스승의 손위에 내 피리를 떨구었어.
스승은 피리를 입술에 대었지. 달빛들이 스승의 어깨와 눈썹과 머리털과 피리 등위에 허옇게 떨어졌지. 스승은 그 자세로 서서히 굳어졌어. 달빛과 스승과 피리가 하나의 뼈처럼 내게 다가왔지. 그러고는 스승의 연주가 시작되었단다. 그 연주의 미세한 힘이라니! 마치 내가 나리꽃의 연주를 흉내내었을 무렵의 바람의 일 할쯤이 스승의 입과 손가락과 피리 구멍을 넘나든다고 생각했지. 이 세상에서 제일 부드러운 바람의 일 할쯤의 질량을 지닌 바람을 한번 생각해 보렴...
조기 떼의 춤은 서서히 잠들기 시작했지. 바다가 이내 조용해졌어. 다시 달빛들이 세상을 채우기 시작했지. 나는 부끄러워 눈물을 흘렸지. 눈물 속에서 바람에 분질러진 달빚들이 여기저기 떠다니는 것이 보이더구나. ‘다시 떠나라! 이번에는 30년의 기한을 주겠다. 네가 여태껏 배운 것은 격렬함뿐이다. 그것은 오히려 아무 것도 얻지 못함만 못할 일이다. 망할 녀석...’나는 그 길로 스승의 곁을 떠났지. 30년 동안이라니... 너무 막연한 시간들이었지. 어떤 순간 30년이 아니라 아예 영영 스승의 곁을 떠날 생각을 하기도 했지. 그렇지만 내가 왜 다시 30년 후에 이 길을 걷게 되었는지 그것은 나도 잘 모르겠구나. 어쩌면 너도 느꼈을지 모르겠지만 난 그 동안 별다른 피리 공부를 하지 않았단다. 그냥 세상을 떠돌아 다녔을 뿐이지. 그러다 보니 너같이 아름다운 녀석도 만나게 되고...”
말을 마친 피리쟁이가 나리꽃을 바라보았을 때 나리꽃은 피리쟁이의 어깨에 머리를 묻고 새근새근 잠들어 있었습니다.
“내 말을 잘 들어라. 나도 네 곁을 떠나기 싫다. 보름쯤 뒤에 다시 들르마. 그 땐 참 예쁜 씨앗으로 머물러 있겠지. 그래, 그렇게만 된다면 널 영원히 잊지 않고 내 곁에 피어나게 할 수 있을 거야.”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