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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용성선사(龍城禪師)의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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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탐구 - 한보광 1990년 03월 97호
1. 대각사상(大覺思想)
용정선사의 사상을 한마디로 말한다면 대각사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선사의 일생중 전반기 30년은 대각(大覺)을 성취하기 위한 자리적(自利的)인 수행기라고 한다면, 후반기의 30년은 스스로 자득(自得)한 대각의 경지를 이타적(利他的)인 입장에서 설천한 대각의 실천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실천은 구체적으로 조직화하고 행동화한 것이 대각교(大覺敎)의 설립이며 대각교운동이다. 그러므로 선사의 생애를 대표할 수 있는 단어가 바로 대각사상이다.
지난 호에서 살펴보았듯이 선사가 살다 간 시대는 역사적으로는 천시와 멸시를 받는 불교였으며, 사회적으로는 이 나라가 오랜 잠을 깨고 개화로 인하여 받아들인 서양문물과 더불어 개신교와 천주교가 들어오던 때였으며, 단적으로는 교단 전통적인 한국불교는 사라져가고 일본불교화되어가는 과정에서 일부 승려들은 일제의 군견(軍犬)역할을 하던 시대였다고 볼 수 있다. 용정선사는 이러한 때에 승려는 어떻게 전법도생(傳法度生)해야 할 것이며 당시의 불교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 어디인가를 고민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가 찾은 방향이 바로 대각사상이었다.
그는 전후 3차에 걸쳐 대각을 얻었으므로 어디에든지 걸림이 없는 확고부동한 경지에 이르른 것이다. 이러한 흔들림이 없는 경지를 바탕으로 새불교운동을 전개하는 근거로 삼았으니 이것이 바로 대각교의 설립 취지이다. 그는 나라가 일제에 넘어가 민중의 술통이 막혀 있을 때 산중선회(山中神會)를 그만두고 서울로 내려와서 시대를 관조하고 세계 사조를 관찰하게 되었다. 그뒤 민중의 긴 잠을 깨우치고 스스로 자각시키는 길이 민족을 살리는 길임을 깨닫고 1911년 대각사를 설립하여 여러가지 활동을 하였으나 이는 주로 선(禪)을 대중화시키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가 1919년 3.1독립운동의 민족대표로 서대문 감옥에서 3년의 옥고를 치른 뒤 출옥과 더불어 본격적이고 구체적인 새불교운동을 전개하기 시작하였다. 그해 9월에는 삼장역회(三藏譯會)를 조직하여 한글로 된 저술과 불경의 번역을 적극적으로 착수하였으며, 이어서 대각교(大覺敎)도 창립하게 된다.
선사는 ‘중앙행정에 대한 희망’이란 글에서 민중의 머리속에 뿌리박고 있는 악습을 제거하기 위해선 과감한 개혁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 개혁 가운데는 사원경제의 자립, 승복의 개선, 적극적인 포교방법, 철저한 계율생활, 시대에 뒤떨어진 용어를 현대에 맞게 변화시키는 작업, 불교경전의 한글화 작업 등을 지적하고 있다. 그러면서 개혁해야 할 것은 과감히 고쳐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물론 그의 유신방법은 외적인 제도나 운영 면에서도 찾아볼 수 있지만, 그보다도 내적인 불교 본연의 독자성을 새롭게 부각시키는 데 더욱 역점을 두고 있는 것 같다.
그러면 선사가 주장하는 대각이란 과연 무엇인가? 선사는 대각에 대한 정의를 여러가지 측면에서 내리고 있다. 여기에 대하여 ‘심조만유흔(心造萬有論)’이란 저술에서 마음이외의 모든 것을 부인하고 있으며 불(佛)과 진심(眞心)과 아(我)를 일체(一體)로 보고 있다. 이 진심에 의해서 천지만법이 창조되며 나의 동근동체(同根同體)일 뿐만 아니라 일진심광명체(一眞心光明體)인 유심(唯心)이 된다고 하고 있다. 또한 일진섬광명체는 법신불(法身佛)의 이명 (異名)이기도 하며 이는 대자재(大自在)의 위신력과 무연대비의 발휘로서 처처에 자비시설(慧悲施說)을 성취하고 영원히 무애위력을 발휘하기도 하며 역사속에서는 석가모니불로 나투기도 한다고 하고 있다. 또 진심대광명체를 줄여서 진심(眞心)이라고 표현하고 있으며, 불교는 진심을 가르치는 교(敎)이며, 심(心) 이외에는 부처가 따로이 존재할 수 없다고 하고 있다. 이어서 법신불이 역사속에서 석가모니불로 나투었고 이는 다시 사람마다 각자 가지고 있는 진심을 개발했을 때 각인(覺人)이 된다고 말하고 있다.
또 각해일윤(覺海日輪)에서는 더 구체적으로 말하고 있다. 즉
“道之大源이 出於覺이로다. 覺者는 何오 本覺 始覺 究竟覺이 圓滿無二之謂也오…(中略)…妙智圓明하야 無所不照之謂也니 宗敎 道德 哲學 因果 等이 無所不備考로다”
라고 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道之大源出於覺’이라고 함은 우주의 가장 핵심적인 근원이 각(覺)이라고 하는데 이 각은 본각(本覺), 시각(始覺), 구경각(究竟覺)이 둘이 아니며, 모두가 하나로 된 상태를 밀하고 있다. 그러면서 이는 어디에도 비치지 않는 곳이 없고, 종교,도덕, 진리, 철학, 과학 등 모두에 두루 갖추어져 있다고 하고 있다.
이어서 본각, 시각, 구경각에 대해서는 하나하나 구체적으로 논하고 있다. 선사는 본각에 대하여 ‘각해성(覺海性)’이란 말로 대신하고 있다. 이는 천지, 허공, 만물이 생기기 이전의 근본체성을 말하고 있다. 이는 본체와 둘이 아니며, 부처와 조사가 나기 전의 본래각(本來覺)을 나타내기도 한다. 또한 이는 적이상조(寂而常照)하고 조이상적(照而常寂)함을 말하고 있다. 다음으로 시각(始覺)이라 함은 일체중생의 성품이 본래각(本來覺)임을 깨닫는 시초(始初)이며, 여유지자(如有智者)가 각오미지원인(覺悟迷之原因)하며 각오본묘진성(覺悟本妙眞性)을 말하고 있다. 이러한 본각과 시각은 구경에 둘이 아니며 또한 이는 자기 스스로도 깨치고 다른사람랍도 깨치게 하여 자각각타(自覺覺他)가 둘이 아닌 원만한 경지이므로 구경각이라고 한다. 이와 같은 본각, 시각, 구경각을 다 깨친 것을 대각(大覺)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여기서 ‘大’라고 하는 것은 우리의 본연심(本然心)은 상대적으로 큰 것이 아니라 대대(對對)가 끊어진 것을 말하며 ‘覺’이란 것은 능히 깨칠 바 없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대각의 체성(體性)은 분명하되 일절명상(一切名相)이 없고, 들을 수 없고, 불(佛)도 법(法)도 승(僧)도 신(神)도 허공도 아니로되 천지인(天地人)의 주인공이 되고 만법의 왕이 된다. 또한 대원각체성(大圓覺體性)은 일체명상(一切名相)이 없으나 하늘도 되고 땅도 되며 사람도 된다. 이와 같은 대원각체성(大圓覺體性) 즉 대각성(大覺性)에는 진여청정섬(眞女淸淨心)이 있어 그 묘용(妙用)이 두루 법계(法界)에 항상하며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 라고 하고 있다.
이상과 같은 선사의 대각에 대한 구체적인 정의는 ‘각해일륜(覺海日輪)’등 많은 저술에 잘나타나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선사의 대각사상은 그 뿌리를 어디에 두고 있는지 살펴보기로 하자. 대각에 대한 정의를 본각, 시각, 구경각을 다 깨친 경지라고 하며 그 근본은 “覺海性, 大圓覺體性, 大覺性眞如淸淨心”등으로 표현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고 있는 본각이란 말은 대승기신론(大乘起信輪)에서 처음으로 등장하는 용어이다. 선사께서 대각을 이와 같이 정의하고 그 근본을 진여청정심(眞如淸淨心)으로 이해한다면 이는 대승기신론(大乘起信輪)의 영향을 받고 있는 것 같다. 이는 바로 대승기신론의 여래장사상(如來藏思想)과 그 맥락을 같이하고 있다고 보아야 옳을 것이다. 이러한 여래장사장적인 입장에서 불교의 근본을 파악하신 분이 신라에 있어서는 원효대사이시다. 원효대사는 대승불교의 근본을 ‘대승기신론’의 여래장사장에서 원융무애한 원리를 터득하였으며, 이것을 ‘一心’이라고 하면서 실천에 옮긴 것이 바로 불교의 대중화운동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시장은 고려시대에는 보조 지눌(普照知訥)과 원묘 요세(圓妙了世)이다. 특히 불교는 이것을 ‘진심(眞心)’이라고 하면서 결사운동(結社運動)으로 실천하게 한다. 또한 조선시대에는 서산대사로 이어졌으며 그는 이것을 ‘유심(唯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러한 유심사상을 임진왜란에 처한 국가를 구하는 구국운동 (救國運動)으로 설천화하고 있다. 이와 같이 역사적인 맥락을 계승한 용성선사는 여래장을 완전히 깨쳤을 때 그것이 바로 ‘대각’이라고 파악하였다. 그래서 그는 이것을 ‘대각’이라고 하였으며, 이러한 대각사상을 실천화한 것이 대각교운동이었다. 이 운동은 바로 민족의 독립운동이며 불교의 자각운동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한다면 선사의 대각교운동의 원조(元租)는 초역사적인 법신불(法身佛)에 두고 있으며, 이것을 역사적, 신앙적으로 구체화시켜 출현하신 화신불(化身佛)인 석가모니불을 교조로 삼고 있다. 그래서 불즉대각(佛卽大覺) 이기에 대각즉불(大覺卽佛)이며 대각교즉불교(大覺敎卽佛敎)요 불교즉대각교(佛敎卽大覺敎)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면서 선(禪)에서 주장하는 삼처전심(三處 心)을 그 종지(宗旨)로 하고 있다. 선사는 법신불에서부터 화신불에 이르기까지 대각에 대하여 여러 측면에서 설명하고 있으며, 우리 국민 모두가 스스로 자각하고 또한 남도 깨닫게 하는 각타로 인해서만이 이 나라의 독립과 불교의 중흥이 성취된다고 믿고 실천하신 것이다. 이 민족의 잠을 깨우고 타락되어가는 승단을 자각시키기 위해 무한히 노력하였다. 그 결과 때로는 감옥에서 감옥살이도 하였으며, 일제와 야합한 종단과 정면대결하여 청정교단(淸淨敎團)을 주장하였으며 심지어는 일생을 무승적(無僧籍)으로 승려생활을 하였다. 이와 같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끝까지 굴하지 않았던 것은 그 스스로 3차에 걸처 오도한 대각에 있었을 것이다. 선사는 스스로 체득한 대각을 중심사상으로 삼았으며, 이를 실천화하였던 위대한 종교가이며, 사상가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