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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았지만 긴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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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권영숙 1993년 08월 138호
태산목 하얀 꽃잎도 뚝뚝 떨어지고 비파랑 치자 이파리만 살아 움직이는 나른한 오후.
“선생님! 저 진원입니다. 이번에는 며칠쯤 절에 가실 겁니까?”
교무실에서 받은 녀석의 전화 한 통이 시계를 삼 년 전 이맘때로 돌려놓는다. 아직 추억을 먹고 살 나이는 아님에도 늘 지금처럼 웃음 짓게 만드는 생생한 기억들. 잦은 금정산 산행으로 단련된 녀석들이었지만 처음 장거리 여행을 다녀온 것은 오학년 여름방학 때였다.
보퉁이를 하나씩 꾸린 우리가 사상터미널에서 해인사행 버스의 뒷자리를 운 좋게 차지하고 헤 벌어진 입을 비로소 다문 것은 한참을 버스가 달린 뒤였다. 한 시간 남짓 지났을까. 창 밖 풍경에 취해 있는데, 우스갯소리 잘하고 덩치 우람한 영범이가 내 눈치만 슬슬 보더니 과감하게 오징어 다리랑 빼빼로, 비스켓 등을 주섬주섬 꺼내 놓고 본격적으로 먹기 시작했다. 녀석의 꿈은 일류 호텔 주방장, 취미는 요리라더니 지난번 산행에서도 산꼭대기까지 떡볶이 재료를 지고 와서는 모두들 기쁘게 했었다. 차는 계속 달렸고, 먹는 것도 조잘거림도 시들해지더니 들떠 밤잠을 설쳤다며 아이들은 고개 박고 침 흘리며 자기 시작했다. 얼마 뒤 쓰레기통 운반 대장인 순한 눈매의 수화 녀석이 “선생님! 자꾸 올라올라 카는데요!”하더니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끊임없이 오징어를 씹던 볼록한 배를 자랑삼는 광래녀석이 콜라 마시면 괜찮아진단다.
드디어 가야 정류장! 떠날 때는 팔팔 뛰는 미꾸라지 같던 놈들이 이젠 절인 배추 같았다. 그래도 아이들이라 아이스크림을 보더니 금방 생기가 돌았다. 변함없이 언제나 기분 좋게 만드는 절로 오르는 길. 낑낑거리며 구불구불 얼마 동안 오르자 우리 부처님 모습 닮은 여러 바위들이 가까이 잡힐 듯 다가와 안기고 절 지붕도 보이기 시작했다. 언제나 멈추지 않는 수각의 물소리랑 큰 그늘로 쉼터를 만들어 주는 감나무가 반갑고도 반가웠다. 흐트러진 차림새를 바로잡고 시린 물로 정신을 차린 뒤 저마다 심각한 얼굴로 촛불을 켜고 향을 피우고 우리 부처님께 절을 올렸다.
주지 스님께서 아이들을 둘러 앉히시고 차를 주시며 법당 출입, 절하는 법, 신발 정리, 음식 먹기 등 여러 가지를 자상하게 일러 주셨다. 각자 임무를 받고 저녁 예불 후엔 108배를 다섯 번 하라는 엄명까지 내리시자, 평소 깜찍한 게 아니라 끔찍하게도 별나던 녀석들이 마늘 씹은 얼굴로 새색시처럼 고개 숙이고 방바닥만 후벼팠다. 이내 날 따라온 것을 후회하는 눈치였다. 그래도 어쩌랴. 텔레비전과 오락기도 있는 편안한 집은 너무 멀리 있는 것을.
각자 임무에 들어갔다. 병훈이는 싸리비로 마당을 쓸고, 청소 안 하기로 유명한 광래는 걸래 빨아 공양방을 열심히 닦았고, 영범이랑 진원이, 수화는 호미로 탑 주변 잡초를 뽑으며 저희끼리 제법 심각하게 쑥덕거렸다.
“우리 인자 죽었다. 내가 머라 카데! 샘 따라 절에 가면 놀지도 몬하고 억쑤로 고생만 한다 안카드나”하는 수화.
“밥도 쪼끔밖에 못 묵고, 밤참도 안줄낀데 배가 을매나 고푸겠노?”하는 영범이
“니는 지금 배고픈기 문제가? 니 108배 해봤제. 눈이 팽팽 돌고 다리가 덜덜 떨리는데 그걸 다섯 번이나 어째 하노!”하는 진원이.
드디어 저녁 공양 목탁소리. 가지런히 신발을 벗어 정리하고 공양방으로 들어와선 쥐 죽은 듯 조용했다. 우리들의 저녁 공양은 그야말로 ‘엄숙한 의식’ 그 자체였다. 물감 번지듯 어둠이 내리고 맑은 종소리를 시작으로 정해 주신 자리에 나란히 두 손 모으고 우리 부처님 우러러 저녁 예불 올리던 아이들의 모습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네 번째 108배도 엄니를 따라 절에 자주 다녔던 병훈이는 끈기 있게 잘해 나갔는데 육중한 영범이랑 광래는 무척 힘이 드는 모양이었다. 두 녀석 무릎 꿇는 소리가 법당 전체를 흔들고도 남았으니, 점점 속도는 느려지고, 씩씩거리는 소리는 커지더니 끙끙 앓기도 했다. 참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힘드는지 온 몸으로 느끼는 순간이었다. 다 마쳤을 때 얼굴은 토마토 같았고 웃옷은 땀으로 모두 젖어 있었다. 참선 자세로 한참을 앉았다가 나오는데 오른쪽 다리가 덜덜 떨린다며 엄살을 부렸다. 아홉 시에 불을 끄고 자라 했더니 계속 장난치고 키득거리고 열두 시가 다 되어서야 잠잠해졌다. 앞산도 모로 길게 누워 눈꺼풀을 닫고, 별을 매단 나무만 깨어 바람소리를 냈다. 새벽 두시 오십분에 깨우러 갔더니 사방으로 뻗어서 떠메고 가도 모를 정도로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일으켜 앉히면 넘어지고, 엉덩이를 하늘을 치켜들고 머리는 이불 속에 파묻고 구석으로 기어다녔다. 겨우 일어나 씻고 법당에 가서 섰는데 보니 세 녀석은 맨발이고 두 녀석은 단추도 잘못 끼우고 멍하니 서 있었다. 그래도 새벽 예불을 마치고 주지 스님이 “절을 많이 하면 좋은 일이 생긴다”고 하는 말씀에 눈이 번쩍 뜨이는지 예불 대참회문을 큰소리로 합장하며 열심히 절을 했다. 곁눈으로 본 그 때 아이들의 모습은 얼마나 예뻤던지.
아침 공양을 하고 빈 몸으로 남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점점 가파르고 험해지는 길을 가는 것이 무척 힘든 모양이었다. 게다가 주지 스님의 나는 듯한 발걸음을 따라잡으려면 죽기살기로 씩씩거리며 기어올라야 했으니.
“콜라 묵고 싶은데요!” 하는 광래. “목구멍이 터질라 카는데요!”하는 수화. “라면 묵고 싶은데요!”하는 영범이. 이제는 런닝셔츠만 입고 있는 병훈이랑 진원이. 잠망경 같은 바위랑 장승바위 등도 구경하고 맛있는 바람도 먹고 쉬었다가 해인사 쪽으로 넘어왔다. 도회지 아이들에겐 힘들고 험한 산행이었는데 무사히 해낸 것이 정말 기뻤다.
주지 스님께서 이번에 절에 와서 무엇을 얻었는지 물으시자 집에 가면 자기 방 정리도 잘하고, 반찬 투정도 안 하고, 신발 정리도 잘하고 음식도 먹다가 버리거나 흘리지 않겠단다. 일찍 일어나 어머니도 도와드리고 친구들도 괴롭히지 않겠단다. 그게 말처럼 그리 쉬울까마는 그래도 일박 이일의 짧은 일정이었지만 이 녀석들에겐 수확물이 많은 긴 여행이었나 보다. 저마다 마음 밭 한 자락에 큰 나무 될 어린 싹을 심었으니.
그 아이들이 벌써 내 키보다 훨씬 웃자라 턱 밑에 수염이 나고, 아버님 같은 목소리로 ‘여성 보호’를 운운하니 ‘세월이 유수같다’는 감초 같은 표현을 내뱉을 수밖에 없다. 난 우리 아이들이 갖가지 빛깔의 세상을 푸근하게 감싸안을 수 있는 너른 가슴과 손잡으면 따습게 온기 통할 영혼을 가진 사람으로 자랐으면 좋겠다.
살아가면서 이제 우리에게 남은 일은 자신의 영혼을 맑히는 일이 아닐까!
올 여름방학에도 습관처럼 짧지만 기 떠남을 가져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