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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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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공지영 1993년 08월 138호
나는 내가 공자의 자손이라는 게 몹시 싫었다. 아버지도 그러하셨지만 할아버지께서는 어린 나를 야단치실 때마다 그야말로 공자왈 맹자왈 했다. 예를 들어 밥상에서 말을 많이 하지 말라든가, 여자아이는 말처럼 뛰어 놀면 안 된다는가 하는 꾸중을 들을 때마다 어김없이 공자의 78대 손이라는 말이 튀어 나왔으니, 내가 공자라는, 세계가 인정하는 성인을 감히 싫어했던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더구나 자라면서 여자라는 이유로 여러 가지 제약을 받을 때마다 나는 엉뚱하게도 공자라는 사람은 왜 왈, 왈 해서 나를 못 살게 구는지 생각했고, 더불어 유교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가질 리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나는 논어를 읽게 되었는데, 시작하면서 덮을 때까지, 그리고 덮고 나서는 더욱 나의 어리석음과 무지와 오만에 대해, 마치 내가 살아있는 공자 앞에서 심하게 화를 낸 경험이라도 있는 것처럼 부끄러웠다. 이상한 일이었다. 할아버지의 밥상머리에서 듣던 공자와 내가 논어에서 읽은 공자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그럼 할아버지가 알던 공자는 대체 누구란 말인가.
부끄럽지만 불교에 대해서 내가 가졌던 생각들도 그런 것의 하나였다. 국민학교와 중학교 그리고 고등학교가 모두 기독교 계통의 학교였으니, 나의 대학생활은 불교란 것에 접근해 볼 엄두를 내기도 전에 최루탄으로 얼룩져 버렸다. 더구나 나의 친한 친구 가운데에 하나가 불교에 관심을 가진 아이였는데, 그 애는 언제나 최루탄에 범벅이 된 나를 비웃는 도구로 불교를 이야기했으니 공자와 마찬가지로 내가 불교라는 개념을 달가워 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아니, 오히려 그 친구가 말끝마다 달고 다니는 허무라는 말 때문에, 나는 불교가 정의를 향한 인간의 의지를 공이라는 그럴 듯한 단어로 매도하는 종교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더구나 일자무식하게도 해탈이라는 것이 그저 단순히 인생의 백팔 번뇌에서 벗어나는 것이라고 믿었던 나는, 단테의 신곡 가운데 천국이 무미건조한 것임을 생각하면서, 그 친구와 언쟁 중에 감히 이런 말을 했다.
“해탈? 시켜 줘도 안 한다. 해탈하고 나면 무슨 재미로 사니?”
그러던 내게 변화가 찾아온 것은 최근의 일이었다. 그 때 개인적으로 나는, 내가 전혀 원하지도 않았고, 상상하지도 않았고, 더더구나 내가 저지른 일 때문도 아닌 어떤 고통에 휩싸여 있었다. 어머니는 말버릇처럼 당신의 업이자, 내가 이승에서 갚아야 할 업이라고 되뇌였지만 나는 거기에도 동의할 수 없었다. 내가 책임질 수도 없고, 알지도 못하는 지난 삶 때문에 고통을 겪어야 한다면 그보다 더 부당한 일이 어디 있을까 싶었던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스스로 성당에 다녔던 내게서 이미 신도 떠나가 버린 뒤였고, 과학과 신념이 인간을 구원할 수 있다고 믿었던 80년대의 꿈도 사라진 듯 보였을 때였다.
바로 그 때 나는 불교를 만나게 되었다. 그저 불교에 관심이 있다고만 하는, 사람 좋은 선배를 통해 나는 먼저 선불교에 접하게 되었다. 그리고 조금씩 책을 읽어 나가기 시작하면서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상한 일이었다. 불교는 나를 비웃던 친구가 말하던 그 런 종교가 아니었다. 어머니가 내게 주려고 부적을 만들어 오는 그런 종교도 아니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그렇다면 친구의 부처님과 어머니의 부처님은 누구란 말인가.
어쨌든 나는 점차로 고통을 두려워하지 않고 고통을 정직하게 바라보며 담담하게 견디는 법을 불교를 통해서 배우게 되었는데, 어느 날 시장에 갔다가 거지에게 무심히 돈을 놓아주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십 년만의 일이었다. 이런 부끄러운 이야기도 이야기라고 털어 놓는 것은 거지에게 동전을 던지는 그 단순한 행동을 내가 십 년 동안 하지 않게 된 것에 숨어 있는 나의 의식을 설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두 가지, 하나는 사회 구조를 바꾸지 않는 한 거지에게 동전을 던지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나 하는 이데올로기를 받아들인 때문이요, 둘째는 거리의 걸인 앞에서 주머니를 뒤적거리고 그것을 던지는 내 모습을 누가 보면 창피할 것 같다는 해괴망측한 자의식 때문이었다. 그러나 불교를 공부하고 그것이 내 마음에 주는 위로를 받아들이면서 나는 아무 스스럼없이 거지에게 다가가 작은 돈을 건네주었고 거기에 대해 어떤 다른 생각도 품지 않았다. 그건 시장을 보는 일보다 더 자연스러운, 그냥 일상일 뿐이었던 것이다. 이상한 일이었다. 내가 배웠던 기독교에서 그렇게 가난한 사람을 도와주라고 했지만 불교에서 그런 구절은 읽은 기억조차 없는데 말이다.
어쨌든 나는 불교를 이해하기 시작하면서 어머니를 이해하기 시작하였고, 할머니를 이해하기 시작하였고, 천 년을 울려도 맑은 소리가 그치지 않는 사찰의 종을 만들어 낸 조상들의 예술을 이해하게 되었고, 그리고 더욱 나아가 거지와 나에게 숨어 있는 아직은 모르는 어떤 힘을 이해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럴 즈음 지난 여름 지우들과 선암사에 들렀다가 송광사로 들러서 올 여정으로 길을 떠났다. 길지 않은 여정이었는데도 우리 일행은 별 것 아닌 일로 서로 언쟁하게 되었고, 그래서 여행 마지막 날 들른 송광사 입구에서는 아예 저만큼씩 떨어져 서로에게 신경을 곤두세우고 걸어갔다. 그 때 내 귀에 어떤 새의 울음이 들려 왔다. 지금도 이름을 알지 못하는 그 새의 울음소리는 뭐랄까 마치 비웃는 듯한 사람의 웃음소리 같았는데 어수룩한 문자를 써서 굳이 표현해 본다면 이런 것이었다. 호로로로로 호로로 호로로로로.....
내 뒷통수를 무언가가 치고 지나가는 것 같았다. 좋다고 떠난 여행에서 별것도 아닌 일 가지고 우리가 이렇게 서로 신경을 곤두세울 게 뭐 있을까 하는 생각, 아아, 우리는 언제까지 대체 얼마나 작은 것들에 집착할 건가 하는 생각.....
선암사의 아늑한 분위기도 송광사의 엄숙한 정적도 이제는 거의 잊혀 가지만. 송광사 입구에서 멀리 소리로만 울던 그 새의 소리는 아직도 내 귀에 선해서 날마다 내게 묻는다. 언제까지 대체 얼마만큼이나 작아지고만 있을 거냐고 말이다. 하지만 그것도 이상한 일이다. 새는 제 타고난 소리로 그저 울었을 뿐일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