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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마산 미황사의 금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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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최성민 1993년 08월 138호
산에 오르는 사람들에게 산사는 ‘참새 방앗간’처럼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곳이다. 그곳에는 대발 드리워진 요사채의 마루가 있어서 그들의 땀을 식혀 준다. 자신들이 믿는 종교는 저마다 다르겠지만 등산객들은 절에 들러서 하나같이 대웅전을 기웃거려 보고 똑같이 석조에서 절 물을 한 쪽박씩 들이키며 호흡을 다듬는다.
휴가철이 되면서 산사에는 이처럼 들렀다 가는 등산객들이 부쩍 늘어나고 있다. 그런데 요즘 절에 들르는 사람들 가운데는 스쳐 지나는 데에 그치지 않고 절의 문화에 관심을 기울이고 절의 정취에 좀더 젖어 보려고 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절에 오는 사람들의 눈빛과 이야기에서 그러한 경향이 느껴지는 것이다.
나는 7월 초에 전에 전남 해남군 송지면에 있는 달마산과 그곳 미황사를 다녀왔다. 내가 달마산 미황사를 찾은 목적은 남다르다고 할 수 있다. 나는 바른 여행 길잡이 시리즈 1,2권인「그곳에 다녀오면 살 맛이 난다」와「섬섬섬」에 이은 3권「우리 샘 맛난 물」을 쓰기 위해서 취재차 달마산 쪽에 다녀왔다. 이번 여행뿐만 아니라 나는 짬이 날 때마다 절에 가곤 하는데 즐 절 물을 만나 보기 위해서이다. 이제 우리는 누구나 환경오염에 대해서 전율을 느끼게 되었고 모두 그 피해자의 자리에 놓이게 되었는데, 환경 오염은 바로 물의 오염이어서 좋은 물이야말로 ‘생명수’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산사는 애초에 물이 좋은 자리에 터를 잡았을 것이므로 물과 더불어 산사가 있고 산사의 물은 아직 거의가 오염되지 않은 우리의 마지막 생명수인 것이다. 최근까지 충북 청원군에 있는 어는 천주교 성당 마당에서는 질이 좋다는 물이 쏟아져서 이 물을 원하는 전국 천주교 신자들에게 판매한 적이 있고, 또 요즘에는 어느 개신교 목사가 판매 조직을 갖추고 산골에서 나는 생수를 퍼다가 팔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절 물은 아직 돈 받는 데가 없으니 절에 가면 언제나 넉넉한 물 보시를 만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다녀온 미황사는 ‘남도의 금강산’이라고 하는 달마산 기슭에 깃들어 있다. 달마산은 거대한 바위신이다. 십여 리에 걸쳐 느닷없이 바위 봉우리가 길게 이어져 있는 모습이 범상치가 않다. ‘달마’라는 이름은 동방선종의 1대 조사인 달마조사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한다. 바위 봉우리들의 생김새가 위엄있고 고풍스러우면서 형형한 눈빛을 내는 달마조사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미황사는 이처럼 산 이름과 산세가 불심을 우러내는 달마산 북쪽 기슭에 자리하고 있다. 미황사는 물을 찾는 나의 갈증 어린 여정에 삼복 소나기 같은 흡족한 선물을 주었다. 미황사의 대웅전과 주지 현공스님이 거처하는 요사채 사이에는 보기 드물게 깔끔히 단장된 샘이 있다. 앉아서도 물을 떠 마실 수 있을 만큼 사시사철 물이 철철 넘치는 ‘앉은뱅이 샘’이다. 한 변이 일 미터쯤 되는 정사각형 둘레를 가졌는데 샘 둘레에 돌담을 쌓고 대발을 엮어 지붕을 올린 운치가 물의 맛을 더해 준다. 이 돌담과 지붕 위로는 담쟁이 넝쿨이 무늬로 얹혀 그늘을 짙게 해 주는데, 한여름 뙤약볕을 피해 들어온 참개구리 한두 마리가 가끔 샘물에 멱을 감고 간다. 이 샘물 맛은 일찍이 초의선사가 말한, 좋은 물의 여덟 가지 덕을 갖추었다고 할 수 있다. 부드럽고 맑고 차고 아름답고 가볍고 비위에 맞고 털이 없고 냄새가 없고... 미황사의 샘물은 늘 요사채 앞 시누대 밭으로 흘러드는데, 시누대와 만나서 내는 물소리는 꾀꼬리와 소쩍새들의 소리와 함께 생명으로 넘쳐서 흐르는 달마산의 정기를 전해 주는 듯하다. 그런데 달마산 미황사 여정에서 나를 더욱 감격케 한 것은 전설 속의 샘‘금샘’이었다. 나는 언젠가 꿈결에서인가 어느 글에서인가, 얼핏 달마산의 금샘에 대해서 들은 적이 있다. 서울을 떠나기 전 현공스님께 전화로 여쭈어 봤으나“마음씨가 나쁜 사람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는 대답이“자연은 자연대로 아껴야 한다”는 메시지로 전달되었다. 미황사에 도착하니 그 곳 보살 한 분과 마침 서울에서 출판 사업을 하면서 휴가차 내려온 이재숙 씨와 이영림 씨가 산에 오를 채비를 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달마산에 오르는 길은 아늑하고도 황홀했다. 한여름에도 썰렁한 바람이 불어 내려오는 것은 숲이 살아 있기 때문이다. 바위틈 사이에 인동초와 산딸기 그리고 이름 모를 덩굴란 들이 몸을 섞고 있으면서 신비스런 향내를 풍기고 있었다.
두 시간을 헤맨 끝에 찾아낸 금샘은 황홀의 극치였다. 우리 샘의 멋진 모습의 상징이라고나 할까? 샘이 물맛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생김새로 사람을 감동시킬 수 있음을 실증해 보였다.
‘금샘’이란 이름은 생물 위에 노란 금빛을 가득 두르고 있어서 붙여진 것이라고 한다.
땅에서 가슴 높이의 수직 바위벽에 일 미터쯤 수평으로 패여 들어간 자리에 삼 사십 센티미터 깊이로 물이 고여있고 수면은 샛노란 ‘금가루’로 온통 덮여 있다. 그리고 샘 위로는 또 백 미터 높이의 바위벼랑이 이어진다. 누가 일부러 판 것 같기도 하고 자연이 수만 년에 걸쳐 빚어 놓은 ‘예술품’같기도 한데, 일부러 판 것이라면 이런 기이한 현상을 어떻게 알아냈을까 하는 궁금증을 남긴다.
금샘 속은 해가 비치는 방향에 따라 늘 밝기가 바뀐다. 물은 밖에서 볼 때 오른쪽 천정 가까운 곳에서 석간수가 방울로 떨어져 나오며, 물구멍 주변엔 그 외진 곳에서도 작은 과리 몇 그루가 움을 틀고 있어서 금샘의 생명력을 대변해 준다. 금샘 수면의 샛노란 거죽은 금가루라 하기도 하고 유황 성분이라고도 한다. 죽이불처럼 생긴 이 황금(?) 거죽은 물을 뜨면 담겨 나왔다가 일이 초 뒤에 사라진다. 그리고 그 물맛은 유난히 차겁다거나 독특한 점은 없으나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질감은 확실히 다른 것 같다.
속세를 떠나 있으면서 석굴 안에서 우주를 오롯이 예쁘게 가꾸어 가는 수도승의 모습이라고 할까? 금샘을 보고 그 물을 마시고 내려오는 기분은 또 하나의 황홀한 새 세상을 얻은 만족감 바로 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