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담桃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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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비의 소리 - 만우(시인)
1993년 08월 138호
한여름에 나는 과일은 각각 독특한 맛과 향을 지니고 있지만, 그 가운데서도 입 안 가득 달콤함과 부드러움을 채워 주는 복숭아 만한 게 없을 것이다. 또 복숭아 중에서도 솜털이 보송보송하게 돋아 약간 짓물러진 만한 것은 그 껍질을 벗기고 한입 덥썩 베어 물면 미각이 무딘 사람도 당장 복숭아꽃은 물론 그 집주인까지도 사랑하게 될 만큼 매력적이다. 인간의 이상향을 도원경桃源境으로 표현함이 복숭아의 꽃 향에서만 비롯한 것은 아닐 게다. 꽃 맺음은 들뜸이요, 열매 맺음은 가라앉음이기 때문이다. 생존의 최상 조건은 열매 맺음의 참 나눔에 있고 그것은 풀풀이 날리는 색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서서히 제 모습을 드러내 보이는 결실의 과정을 바로 볼 수 있는 지혜를 지닌 사람들의 삶 속에 있을 뿐이다. 무릉의 어부가 도원에서 대접받은 것은 복숭아가 아니고 꿀과 고기였다. 중국 천지에 도화가 없는 곳이 어디 있겠는가. 도원에서 사는 사람들의 삶이 이상적인 사회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어렸을 때 살던 곳에서 오리쯤 거리에 섬진강이 있었다. 작은 누이가 섬진강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으로 시집을 갔기 때문에 가끔 걸어서 누이 집을 가곤 했다. 그 때는 섬진강을 건너려면 나룻배를 타야 했기 때문에 사공이 집에 없거나 잠이 들었으면 하염없이 기다려야 했고, 그럴 때면 강변에 늘어서 있는 복숭아밭 원두막에서 복숭아를 얻어먹으며 기다리곤 했다. 그 시절에는 약간 으깨진 복숭아는 거저 얻어먹을 수 있었다. 겉이 상한 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상품 가치가 없었기 때문에 팔고 남은 다친 복숭아는 이웃끼리 나누어 먹곤 했다. 여도餘桃의 나눔, 그것이 그 때의 삶이었다. 한비자의 세난편說難篇에 보면 여도의 죄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옛날 위나라에 미자하彌子瑕라는 미소년이 있어 임금의 총애를 한 몸에 받고 있었다. 어느 때 어머니가 병환으로 몸져 누우셨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는 임금의 수레를 허락도 받지 않고 타고서 문병을 다녀왔다. 위나라의 형법에는 임금의 수레를 쓰면 단족斷足의 벌을 받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 이야기를 들은 임금은 단족의 형벌도 두려워하지 않은 지극한 효성을 칭찬했다. 또 한 번은 임금과 복숭아밭에서 놀다가 복숭아가 하도 맛있어서 먹다 남은 것을 임금에게 주니, 자기가 먹는 맛남도 잊고 임금에게 올리는 다정다감함을 칭찬했다. 세월이 흘러 미자하의 아름다움도 사라지자 임금의 총애도 식어버렸다. 그래서 미자하를 내치는 벌을 내리기를 “그 놈은 언젠가 내 수레를 몰래 탔고 먹던 복숭아를 내게 주었다.”미자하의 행위가 한 가지였는데도 칭찬과 형벌의 원인이 된 것이다. 물론 변한 것은 마음이다. 대상을 바라봄에 있어 주관의 객관화를 주관화하지 않으면 변해 가는 만물의 속성은 언제나 고락의 곡예를 하는 슬픔일 수밖에 없다. 인간의 모든 관계는 이 저울대 위에서 한 때의 평형을 유지하고 있고 우정, 사랑, 존경, 믿음 등의 묵직한 언어의 열매에 가까운 것들이야말로 매양 무게를 가름당하고 향과 맛도 저울질 당하고 있다. 무엇을 사랑하고 존경하며 믿어야 하고, 방법은 무엇인가. 제도와 방편, 기타 필요하다고 생각해 왔던 모든 요건들을 역사를 이만큼 끌고 오면서 실험하고 검증하고 다시 수없이 반복한 상황이 요즘 세상의 모습이고 또 미래 사회라면, 이 생을 마지막으로 하고픈 간절한 생각이 이 더위를 식혀 버린다. 소유할 수 없는 존재에 대한 분노가 뜨거운 태양보다 더 이글거리는 세상에서 바로 보고 외치는 목소리는 늘 여도의 죄를 면할 수가 없다. 따라서 뭇 존재의 역사를 들여다본 부처님의 마음을 헤아려 본다면, 여도의 상과 벌을 주고받는 관계에서 놓여 나는 것으로 중도를 설하였다. 그 길 따라 섬진 놈, 멱진 놈들 모여 좋은 세상, 참 사람 되어 보려고 예까지 왔는데, 용광로의 불꽃은 아직도 타오르고 그 쇳물을 부어 찍어 낼 주형은 언제 완성될지. 이런 생각 때문에 겨울은 더 춥고 여름은 더 덥다. 도원桃源은 어디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