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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포교원 성열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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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계삼소 - 박연진 1993년 08월 138호
부처님 당시 취바리라는 술주정뱅이가 있었다. 취바리는 늘 술에 잔뜩 취해 휘적거리며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동냥하고 시비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취바리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술에 푹 젖어 비틀거리며, 지나가는 부처님 일행을 우연히 만나게 되었다. 취바리는 취중에 부처님에게 달려가 자신도 사문이 되고싶으니 받아달라고 졸랐다. 그러자 부처님은 제자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 자리에서 취바리를 사문으로 받아들였다. 다음 날 술에서 깨어난 취바리는 자신의 머리와 의복이 사문의 모습임을 알고는 펄쩍펄쩍 뛰면서 누가 자신을 이렇게 만들어 놓았냐고 소리지르며 난리를 부렸다. 이 소문을 들은 부처님 제자들은 부처님의 처사가 의아스럽고 이해되지 않았다. 그들은 부처님께 왜 취바리가 취중에 한 말을 받아들였는지를 물었다. 이에 부처님은 비록 취바리가 맑지 못한 정신으로 사문이 되겠다고 했으나 이를 내쳤으면 그는 내세에도 현세의 습대로 살 것이나, 하룻밤만이라도 취중 발심으로 출가 사문이 되었던 인연의 씨앗은 언젠가 반드시 꽃을 피워 진정한 사문이 될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다. 불연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이야기이다.

작은 호기심과 관심으로 스쳐 지나갈듯이 걸음을 잠시 멈춘 모든 이들에게 부처님의 말씀을 전해 불법과 소중한 인연을 맺게 하는 것이 자신의 일이라고 성열스님은 이야기한다. 이는 우리 불교인 모두가 관심을 갖고 순간순간 행해야 할 바이지 싶다. 성열스님은 서울 강남포교원에서 십 년이 넘도록 도시 포교의 선구자적인 역할을 해오고 있다. 허름한 시장 상가 삼층에 협소하게 자리한 이곳에서 성열스님은 누가 보아도 ‘대장이지’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힘찬 말씀과 위풍당당해 보이는 거구에 온전히 가사를 수하고 휘날리듯 걷는 힘찬 모습만으로도 그러하다. 웃음도 너무 괄괄하여 듣는 이들은 영문도 모르고 따라 웃을 수밖에 없게 된다. 코끝에 안경을 걸치고 눈을 위로 치켜 우리를 쳐다보는 표정, 얇은 쌍꺼풀에 눈웃음이 자글자글한 장난기까지 담고 있음을 볼 때는 오히려 스님의 담박한 성품이 낯설어 보이기도 한다.

10.27 법난은 지금까지도 불교인들의 가슴에 오래도록 응어리로 남아 아픔으로 되살아 나는 사건이다. 사회정화라는 명목으로 예고 없이 우리 사찰을 그야말로 발칵 뒤집어 놓았다. 당시 성열스님은 총무원 포교국장으로 있었다. 그러니 누구보다도 가장 직접적으로 그 치욕의 현장을 겪고 감수하였음을 쉬이 짐작할 수 있다.
“군인들이 사찰을 군화발로 온통 휘젓고 다닐 때 이를 지켜볼 수밖에 없던 심정은 참담했습니다. 천 육백 년의 우리 불교가 고작 이러한 대우를 받고 이렇게 무너지다니 하는 좌절감이 들었습니다. 왜 이리도 우리는 나약한가 하는 자조의 질문을 던져 보았습니다. 결론은 우리 불교가 그 동안 교육을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념적으로나 사상적으로 불교를 수용하여 불교인들 스스로 튼실하게 무장되어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던 것이죠. 이 무렵부터 포교에의 열정이 구체화되기 시작했고 그 결실이 1982년 이곳 강남포교원으로 맺어졌습니다.”
스님은 산중에 계실 때부터 우리 불교의 포교 활동이 시급하다고 생각하곤 했단다. 으레 그렇듯이 처음에는 스님도 걸망 하나 매고 선방으로 마음 자리 닦는 공부를 하러 다녔단다.
한번은 극락암에서 경봉 노스님 모시고 살림을 살았단다.
“경봉스님은 우리에게 참선이 가장 중요하니 경전은 볼 필요가 없다고 얘기하면서 당신은 경전을 한 줄에 꿰시더군요. 먼저 스님의 경전 인용 얘기를 알아들을 수가 있어야지. 곰곰히 생각을 해봤습니다. 옛날 대선사들 치고 대강백이 아니었던 분이 몇 분이나 되는가 하고 말입니다. 그 때 생각했지요. ‘먼저 부처님 말씀을 알아야 한다. 그래야 흔들리지 않는 거목이 되지.’ 그 길로 은사 스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동국대학교에 입학하여 지금에 이른 것입니다.”

도심 속에서 정돈되지 않은 불교의 모습에 대한 의견은 아직도 분분하기만 하다. 이는 불교의 현대화와 전통성 사이의 간극을 메꾸지 못한 탓이리라. 성열스님은 불교의 현대화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다. 스님은 그 현대화라는 것이 무엇을 말하는 것이냐고 오히려 반문한다. “불교 자체가 변하는 것인가요. 우리의 불성 자체는 하나도 변한 바가 없습니다. 부처님 당시의 사람이나 오늘을 사는 우리나 무엇이 다르죠? 변한 것은 사회와 그에 따른 의식 구조일 뿐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부처님이 출현하셔서 어떠한 말씀과 행을 하실지를 먼저 생각해 봐야지요. 분명 오늘에 맞는 방편으로 변하지 않는 불법을 전하였을 것입니다. 음력이니 양력이니, 전통이니 현대니 하는 식의 관례를 말씀하실까요?”강남포교원에서는 음력으로 행사를 하는 날은 일 년 중 탄생일, 출가일, 성도제일, 열반제일, 우란분제일 오 일뿐이라고 한다. 이곳의 운영 방법도 특이하다. 모든 관리와 운영에서 스님은 열외이다. 신도들이 회비와 제반 경영 관계 일을 도맡아 하기 때문이다. 스님은 단지 한 달 활동비만을 받는다.“스님이 해야 할 일은 부처님 법을 전하고 수행하는 것이지, 뭐 다른 일이 있겠어요. 다른 일들은 재가 불자님들의 도움이 있으면 되지요.”스님은 뒤돌아보는 법이 없다. 오늘의 시점에서 불교의 역할과 위상에 궁극적 관심이 있다. 어설픈 종교관은 절대 용납하지 않는다. 불자란 이러이러 해야 한다는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포교원을 찾는 불자들에게 법문을 한다. “관광 불자가 너무 많습니다. 산중에 있는 산세 좋은 사찰을 찾아다니고, 어디 부처님이 장엄하고 영험하다며 철새들처럼 사찰을 찾아 헤매는 우리 불교인들의 모습은 반성되어야 합니다. 절이라는 공간을 드나든다고 모두 불자는 아닙니다. 불자란 내용과 사상에서 새로 태어나야만 진정한 불자입니다. 계율을 수지하고 이념적 의식화가 철저히 이루어지고 통과의례도 모두 불교식으로 해야 합니다.”관광 불자라는 말에 가슴이 철렁한다. 나도 절이라는 공간을 통해 불교를 호흡하면서 그저 분위기에 취해 살아온 사이비 불자는 아니었던가 하는 반성에 몸이 저린다. 스님의 날카로운 말씀이 법당 동판에 새겨진‘조고각하’라는 경구와 어우러져 더욱 매섭게 다가온다. 불교의 세계관이 완전히 의식화되는데는 삼대가 걸린다고 한다. 우리 민족의 뿌리를 다 안고 있던 유교가 사라진 지 오래되었지만 아직까지 우리는 유교적 사고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지적한다.“아무리 할머니나 조상이 불교라 하더라도 제대로 불교를 믿지 않았으니, 결혼을 할 때는 예식장에서 하고 자손이 스님이 된다고 하면 그리 슬퍼하고 애통해 하는 것 아닙니까. 제대로 철저히 불법에 귀의해도 삼대가 지나야 생활 속에 불교가 젖어드는 것인데 대충 절만 왔다갔다하면 뭐 하겠어요.”처음 포교원을 시작할 때 십 년만 하면 뭐든 되겠지 하는 생각이 있었단다. 십 년이 이미 훌쩍 지나 버린 지금, 스님은 빈 산에 정성껏 나무를 하나하나 심어 가는 마음으로 일을 한단다. 십 년이면 강산은 변하겠지만 그 토양은 변하지 않았을 것이다. 스님은 한결같은 법문과 손길로 언젠가 흙 냄새 향긋하고 그득히 물 흐르는 정토를 이루어 낼 오늘을 어루만지고 토닥여 줌으로써 하루를 충일하게 산다. 불타사상으로 돌아가자! 스님은 모든 문제의 해결점을 근본적으로 불타사상에 어그러짐이 있는가 없는가 하는 문제 의식에서 찾아낸다. 심리적으로나 생리적으로 부처님과 우리가 다를 바 없기 때문에 스님의 관심은 사회 구조에 있는 것이다. 달라진 것은 사회 구조밖에 없으니 당연한 일임에 분명하지만 왠지 우리 한국 불교와는 맞지 않는 듯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마도 우리 불교가 역사적으로 보여 준 모습이 이와는 달랐기 때문이리라. “사회 구조에 대한 연구가 필요합니다. 그 사회의 가장 큰 문제에 바람직한 대응을 하고 목소리를 내어야지요. 물론 그 대응을 생각할 때 철저하게 불타사상의 견지를 고수하고 있어야 하고요. 지금 부처님은 어떻게 행할까 하는 고민이 있어야 합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언제나 깨어 있는 것이기 때문에 현대와 전통 사이에서 헤맬 필요가 없습니다. 종교는 문화 현상입니다. 본질을 굳건히 수용하고 현상에 부응하는 것에 긍정적인 입장이지요. 이것이 현대화인지는 모르겠지만요.”스님은 불교의 현대화라는 용어 개념이 마땅치 않음이다. 가장 나다운 것이 세계적인 것이다. 스님은 불교가 현대화되어도 가장 불교적일 수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는 것이다. 시각의 흐름에 따라 굴절되어 불교가 아닌 것이 불교로 표출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하신다.
“종교 특유의 신비감요? 역사적 사회적 현상에 따라서 형성된 것이 불교의 본질일 수는 없다고 봅니다. 사상적인 근거가 없다면 과감히 의식 전환을 해야 합니다.”

스님은 벌써 많은 경전을 한글로 번역하여 출판하였다. 강남포교원에서 ‘도서출판 법등’ 이라는 출판사를 이루어 놓은 터이기도 하다. 모든 말씀을 우리 말로 번역하여 염불하고 발원하신다. 스님은 대부분 아함경에 근거하는 법문을 한다.
“포교일선에 들어오고 보니 제가 마주 대해야 할 사람은 재가불자들이라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일반 신도들에게 스님들 이야기해서 뭐 합니까. 그 분들의 소박한 바람이나 생활에 대해 법문해야지요. 행복, 돈, 가정, 건강, 이러한 것들보다 재가 불자들에게 중요한 것이 뭐 있겠어요. 그래서 아함경을 주요 경전으로 선택했습니다. 아함경을 통해 부처님은 생활 종교를 말씀하고 계십니다. 생생한 역사 안에서의 부처님 모습을 찾아 볼 수 있는 경전입니다.”
이곳 법당에는 반가사유상으로 석가모니불이 모셔져 있다. 불자들이 기도하기보다는 능동적으로 삶을 살기를 바라는 뜻으로 모셨다고 한다. 기도를 하더라도 석가모니 부처님에 비추어 내가 어떻게 생활하였던가 하는 반성과 평가를 내리는 식의 기도를 할 수 있어야 바람직하다고 말씀한다. 포교원 벽에 다음 글이 표구되어 걸려 있다.

재물을 오물처럼 볼 줄도 알고
터지는 분노를 잘 다스려라
때와 처지를 살필 줄 알고
부귀와 쇠망이 교차함을 알라
이것이 지혜로운 불자의 삶이니라
(잡보장경 제4)

‘걸림 없이 살 줄 알라’에 나오는 말이란다. 어깨가 무거워진 느낌이다. 홀로 선 개인으로서의 나 이전에 불법에 귀의한 불자 한 사람임을 새삼스럽게 인식하게 된다. 시대의 요청에 부응하고 불교의 발전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스스로 물어본다. 우리 모두 저마다의 근기에 맞는 바람직한 과제를 찾아 조금씩 부단히 전진해야 할 듯 싶다. 노력하는 가운데 지혜로운 불자로서 살아갈 길 또한 만날 수 있으리라 기대해 본다. 스님의 환한 웃음을 뒤로 하고 상가 밖으로 나왔다.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있다. 장마답지 않은 여린 빗길에 사람들의 발걸음은 더욱 분주하게 오간다. 우산이 서로 부대끼며 옷깃에 물방울이 후두둑 떨어진다. 이곳, 서로 부대끼며 자신의 길을 향해 좇듯이 찾아 나서는 저자거리에서 삶을 일구어 내는 우리는 이제 연꽃처럼 새롭게 다시 피어나야 하지 않을까 싶다. ‘탐욕스러운 사람들 속에 살더라도 탐욕에서 벗어나 살라’, ‘네가 있는 곳에서 부처가 되라’, 스님이 들려주신 말씀을 되뇌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