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의 나라’라는 생각 하나만으로 인도에 왔다. 부처님이 태어나서 활동하다가 입적하신 곳을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해 보기 위해서 왔다. 인간석가의 모습을 보기 위함이다. 허나, 맨처음 접한 티벹불교에서 나는 절대신이 이렇듯 완고한 모습으로 보여지는데에 아연해질 수밖에 없었다. 특히 티벹불교 종정(宗正)인 달라이 라마가 정치인으로 부각되는 현실이 놀랍기만 했다. 그는 석가가 버린 왕위를 차지하고 있다.
승왕(僧王) 달라이 라마는 절대신이며 관세음 보살이며 또한 부처님이라는 데에 티벹인은 환희해 마지 않는다. 그런 일은 스승을 존귀하게 대접하는 법이 살아 있다고 여겨지므로 가치가 크다고 본다. 스승은 사바생불(娑婆生佛) 그대로다. 여불(如佛) 대접이라는 말에 꼭 들어맞는다는 생각이 든다. 또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이해하기 곤란한 부분도 많다. 여태껏 몸담아 온‘한국불교’라는 테두리가 나를 그렇게 만드는 것일까. 아마 이 쪽의 티벹인, 네팔인, 인도인, 스리랑카인 들이 한국에 와 본다면 또한 놀랄 일이 많을 것이다. 내가 이 곳에서 당혹스러움을 감추기 어려워하듯이 말이다.
이 곳 인도를 중심으로 하여 티벹으로 전파된 불교는 힌두이즘과 불교가 뒤섞인 탓으로 어느 쪽이 힌두이즘이고 어느 쪽이 불교인지 가려내기가 힘들다. 티벹의 달라이 라마 절에서는 조석 예불은 물론 사시마지를 올리는 일도 없다. 티벹의 절이 다 그렇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일어나고 자는 시간이 우리네처럼 일사불란하게 이루어지는 법이 없다. 물론, 조석 범종소리 대신에 수많은 나팔소리가 ‘부우-우’하는 저음을 내며 이른 새벽에 산기슭에 울려퍼진다. 아무리 깊은 잠에 떨어진 이라도 이 나팔소리에는 모두 잠에서 깨어나기 마련이다. 이 아침 나팔소리는 새벽 대개 여섯시 반 무렵부터 한 시간 가량 울린다.
한편, 기상을 알리는 종이 네시 반에 울리기는 하지만 아직 깊은 정적 속에서 거의가 제 방에서 나오지 않는다.
이 곳의 승려들은 대중방에서 자는 법이 없다. 한 사람이나 또는 두세 사람씩 한 방에서 생활한다. 아침식사는 식당에서 빵과 차로 때우고 만다. 조석 예불 없이 어떻게 지낼 수 있는가. 처음의 이 의문은 얼마 후에 쉽게 풀리고 말았다.
이 곳에는 ‘푸자’가 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계속해서 독경과 염불을 한다. 긴 푸자는 열흘 이상까지도 간다. 푸자를 하는 중에는 아침 식사도 법당에서의 의례 중간에 잠시 쉬는 틈을 타서 때운다. 사부대중이 천여 명 동참하여 푸자를 진행하는 과정을 지켜보노라니 따로 조석 예불을 하지 않는 것에 수긍이 갔다.
푸자는 우리가 연례행사처럼 베푸는 보살계 법회처럼이나 성황을 이룬다. 닷새장 장날마냥 쉴 사이가 없다.
그러면 푸자는 어떤 내용일까.
푸자의식이 이 곳 인도 전역의 사찰에 널리 돼져서 행하여진 시기는 기원전 3세기에서 기원전 2세기 사이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푸자의식은 나를 비우고 힌두 제신들에게 나를 송두리째 바치는 신애(信愛)가 주종을 이룬다. 힌두의 다섯 신들인 비쉬누, 쉬박 두르가, 수랴, 가네샤 등을 비롯하여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제신들에게 올리는 제(祭)이다. 힌두교에서는 부처님도 비쉬누의 회신으로써 아홉번째로 모셔진다.
티벳 절에서 올리는 푸자의식은 독경과 염불이다. 법주(法主)의 범성은 마이크를 통해 잔잔히 울려퍼진다. 독경과 염불의 주된 내용도 불보살님을 찬탄하고 귀의한다는 쪽에 있다기보다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제신들을 신애한다는 쪽에 기울어 있다. 힌두이즘에서 보면 같은 테두리 안에 있는 것이다.
달라이 라마가 주관한 푸자의식을 마쳤을 때, 비닐봉지에 든 녹두알만큼씩한 알약을 한 봉지씩 전 대중에게 나누어주었다. 한봉지를 받아 가져와 헤아리니 약 일천 알쯤 되었다. 기도 전에 세 알씩 먹고 하면 효과가 크다는 설명이 있다. 그 설명에 따라 나도 한두 차례 먹어 보았으나 도대체 무엇이 무엇인지 가닥이 잡히지 않아 얄약 먹기를 그만두고 있다. “알약을 받고는 감격해서 우는 이가 있어요.”그런 말을 들어도 쉽사리 약을 먹게 되지는 않는다.
나처럼 좀체 고집이 꺾이지 않는 완고한 이는 쉽게 믿지 못하는 것을 보니 알약의 효과도 알 만하다. 지금도 알약은 내 짐 속에 챙겨 넣어져 있다.
언제 심기일전하여 목욕재계하고 알약을 착실히 먹으면서 기도할 날이 올는지 알 수 없다.
까마귀 울음소리가 창밖에서 요란하다.
“까악, 까악, 까악, 까악.”
까마귀 울음소리를 우리나라에서는 흉조라고 하여 싫어하지만 인도에서는 그렇지 않다. 길조로 애호하는 새인 것이다. 가만히 살펴보니 까마귀 내외의 금실이 원앙새에 못지 않다. 서로 부리를 비벼대며 희롱하는 모습도 인도에서 처음 본다. 이 곳에서 들은 말이지만 까마귀는 효조(孝鳥)라는 것이다. 새끼가 어미를 봉양하는 데 지극정성이라니 재미있는 일이다.
여기는 인도다. 인도를 인도인의 사고 속에 들어가서 보려고 하지만 잘 안 된다. 모두가 선입견과 아집에 묶인 탓이다.
까마귀는 사람들이 저를 길조라 하든 흉조로 하든알 바 아니라는 듯이 노래하고 논다. “까악, 까악, 까악, 까악.”
윤기가 온 폼에 흐르는 검은 까마귀가 아침인사라도 하러온 것인지 창앞을 오가면서 울고 있다.
딴은, 나의 바이즈나스행(行) 출발을 인사해 주는 이는 오직 이 까마귀밖에 없다.
이 글은 해인 강원을 나온 뒤 제방 선원을 두루 다니며 정진하다 인도순례길에 오른 지묵스님이 몇 달 전에 인도 다람살라에서 보내주신 편지글입니다. 그때는 스님의 ‘지대방 한담’이 연재되던 중이라서 기다렸다가 이제 싣는 것이니 양해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