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목나무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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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 재원
1993년 08월 138호
한여름의 공기가 따갑게 끈적거린다 잘 익은 수박이랑 참외를 시원한 냇물에 담구어 두고 고목나무 그늘에서 멍석자리 펴 놓고 낮잠 한숨 자고 나면 팔만사천 번뇌가 다 사라지겠지!
석가 세존도 보리수 아래에서 정각을 성취하였고 예수 그리스도도 나무 십자가에 못박혀 중생들의 고통을 대신 받았다고 하니, 나무와 인생은 둘이 아님이 분명한가 보다. 우리나라 어느 곳이나 나무가 없는 곳이 없지만 특히 고목나무는 마을 어귀나 뒷산에 어김없이 자리하여 그 마을의 길흉화복을 지켜 왔고, 사람들의 삶을 지켜보고 수백 년을 그 자리에서 묵묵히 자리잡아 왔다. 또한 마을의 들녘(입구)이나 묏등(이름 없는 묘지)에는 어김없이 정자나무(亭子木)인 느티나무나 회나무 또는 은행나무가 자리잡고 있다. 해마다 정월이 되면 당산제堂山祭를 지내기 위해서 마을에서 가장 모범된 가정을 정하여, 그 집 가장에게 당제를 지내게 하고, 제주는 며칠 동안 금욕과 근신의 정성을 드려 마을의 대표로서 그 마을의 안정을 기원한다. 당산제를 지내는 곳에는 어김없이 고목이 있다. 그 고목을 당산목堂山木 또는 동신목洞神木이라고 했다. 동신목은 그 옛날 누가 심었는지, 누가 가꾸어 왔는지 알 수 없지만 그 푸르름과 이끼 낀 가지들은 마을의 산 역사며 증인이다. 이러한 동신목은 마을의 수호신 역할을 했으며, 종교적 신앙의 대상이 되었다. 가뭄이 극심할 때면 기우제를 지내며 비가 오기를 기원했고 마을에 몹쓸 병이 돌면 동신목에 굿을 했으며, 풍년이 들면 어김없이 햇곡식으로 감사의 축제를 올렸다. 이러한 의식들이 우리 민족의 토속신앙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정자목에는 인간의 희로애락이 서려 있다. 만남의 기쁨과 헤어짐의 슬픔도 정자나무 밑에서 이루어졌고, 동네 아이들의 숨박꼭질도 이 정자나무 밑에서 이루어졌으며 노인들의 나들이도 요즘처럼 노인정이나 삭막한 시멘트 다리 밑이 아니라 정자나무 밑이었다. 아낙네들의 세상사 이야기들도 이곳에서 만들어졌으니 정자목은 정보은행이 아니겠는가. 다시 말하면 마을 공동체의 모태는 바로 이 정자목에서 시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눈을 돌려 산으로 가 보자. 천 년의 신비를 간직한 고찰들이 우리나라 명산마다 자리잡고 있다. 사찰 주변에는 고목들이 수없이 많다. 우리의 선사 스님들에게 고개 숙여 감사한다. 그들 조사 스님들의 나무에 대한 보살핌이 없었다면 저 고목나무들이 저렇게 울울창창할까. 선방에서 좌선을 하다 잠깐의 여가에 포행을 하며 나무를 돌봤을 것이며, 그렇게 많이 필요한 땔감으로 나무밖에 없었던 그 시절에도 사찰 주변의 나무들이 고목으로 남아 있는 것을 보면 나무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지극하였을까는 짐작이 간다.
그뿐이랴, 산을 넘고 물을 건너 길 떠난 길손에게는 산마루 지나 고개 능선에 있는 한 그루 고목은 지친 나그네의 다정한 길벗이 되어 주었을 뿐 제물을 바라거나 보살핌을 바라지도 않는다. 그냥 자리에 서서 자연과 벗하고 날아드는 산새들의 보금자리 역할을 해 주는 것만으로 넉넉함을 삼는다.
천길 벼랑 바위틈에 사람도, 날으는 새도 오르지 못할 그런 바위틈에 무엇을 먹고 사는지 모를 유아독존의 고목나무, 그 나무에서 인간은 자연의 신비를 배워야 한다. 만물의 영장이라고 떠들어대는 인간들을 가소롭게 여기지나 않을는지...
우리가 사는 현실을 돌아보자. 자기들만이 제일이라고 떠들어대며 치고, 부수고, 죽이고, 밀고 들어온 코쟁이 종교(?)는 미신이라고 몰아세워 조상 대대로 이어온 당산목을 마구잡이로 몰살하려 하고, 새마을 사업이라 하여 마을 정보은행이며 공동체의 요람인 정자목을 사정없이 베어 버리고, 대형 댐을 막아서 귀중한 나무들이 하루아침에 수몰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며, 나무를 숨도 못 쉬게 하는 마귀할멈 시멘트는 날로 땅을 덮어 가니, 고목나무의 운명은 심각하기만 하다. 어디 그 뿐인가. 사람들의 기억 속에도 상품의 가치로밖에 보이지 않아 ‘저 고목은 얼마쯤 되겠는데’ 하면 아무리 높은 산의 나무라도 언제 없어졌는지조차 알 수 없으니 정말 한심하다.
전국의 각 사찰에도 나무에 대한 관심이 새로워져야 하겠다. 나무는 한번 병들면 살리기 어렵다. 사람 같으면 병원에라도 가보지만 나무는 다르다. 옛날 조사 스님들이 나무를 아꼈듯이 우리 스님들도 나무에 대한 지식을 쌓아서 가꾸고 보호해야겠다. 오늘날과 같이 자연환경이 파괴되고 수질이 오염되어 도시의 주변 사찰에는 약수물 가져다 귀한 생명을 연장시키려고 북새통을 이루고, 아무리 깊은 산 속이라도 물 좋다는 소문만 나면 그 날로 주변 환경은 엉망이 되는 오늘의 현실에 금수강산이란 말은 옛 말이 되어 버렸다. 뒤늦게 와서 자연 보호니 환경 보호니 하는 구호들이 난무하지만 때는 이미 늦은 듯하다.
석가 세존께서도 ‘우주는 모두 한 뿌리요, 사해四海는 청정하여 공히 한집안이로다’하고 자연은 인간은 하나임을 말씀하지 않았든가. 인간이 자연을 파괴함은 인간 스스로 자신을 좀먹는 것임을 자각해야 한다. 인간은 일백 년도 못 사는 자신들의 자취를 남기기 위해 족보를 만들면서, 수백 년을 사는 고목나무에게는 고목나무 족보를 만들 생각이라도 염두에 두었던가. 천연기념물이니 자연보호수니 하며 국가에서 지정한 나무가 있지만, 얼마나 많은 국민이 가꾸고 보호하며 사랑하는 데 관심을 가졌는지 궁금하다.
며칠 전 우리 고목나무사랑협회 회원들과 대구 팔공산일대(동화사를 중심으로) 고목나무 조사 활동을 하다가 느낀 것은, 고목나무를 보호하고 가꾸는 일은 단순히 환경보호나 나무를 사랑하는 일로만 끝날 것이 아니라 인간이 인간을 사랑하듯 나무도 사랑해야 하며 특히 경로 효친 사상이 희박한 이 시대에 고목나무를 보호함은 노인을 보호하듯 아끼고 귀하게 여겨 천수를 누리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름다리 고목나무가 있는 산이나 마을은 든든하다. 그곳의 역사를 말없이 지켜보고 그곳 사람의 살림살이를 뚜렷이 증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요즈음 사회는 스승이 없다고들 한다. 믿고 의지하며 삶의 고통을 어루만져줄 큰 어른이 없다는 말이겠다. 그나마 우리의 고목나무는 메마른 현실의 스승처럼 아직도 자기의 자리를 지켜내고 있다. 문명의 폭력에 상처를 많이 받으면서도, 고목나무를 사랑하고 보호하는 일은 우리의 스승을 모시는 일과도 다르지 않을 듯 싶다.
고목나무는 오늘도 시멘트 바닥에 뿌리를 박고 찢겨진 가지로 피를 흘리며 사람들을 지켜보고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다. 그리고 관심없는 동자승의 독경 소리를 들으며 부처님 도량을 장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