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워서 될 수 없는 얘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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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마의 방 - 유홍준
1993년 08월 138호
이문구의 소설「유자소전兪子小傳」은 실존 인물인 유재필의 전기라고 한다. 이문구 씨의 고향 동무인 유재필이 소설 속에서 보여준 달인의 경지는 이 세상의 식자층, 그 가운데서도 사회적으로 득명得名한 사람들을 스스로 부끄럽게 하는 것이었다. 유재필의 미덕은 모든 것이 정직에서 나온다. 그것은 도덕적인 정직뿐만 아니라 논리적으로 따지기 이전의 감성적 정직에 근거하여 말하고 행동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본인에게 얼마나 막대한 피해와 손해가 온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그렇게 한 세상을 살았다는 사실에서 우리 시대의 한 성인을 만나는 것 같은 뭉클한 감동을 받게 된다. 이문구의 소설에 따르면 유재필은 죽음의 문제에서도 달관과 득도의 경지를 보여준다. 그 역시 논리가 아니라 허허롭게 대처하는 느긋함에서 풍겨 오는 것이다. 유재필은 노신의 아큐보다 모든 면에서 한 수 위였고 아큐는 불행해 보였지만 유재필은 행복해 보였다. 지금 나는 유재필의 미덕이 보여준 오묘한 삶의 생리를 더듬어 보고 있다. 열심히 살려고 해서, 똑똑하게 살려고 해서, 깨침을 구하려고 용맹정진해서 얻는 것이 아닌, 저 체득의 경지를 어떻게 본받을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보게 된다. 십 연도 더 된 것 같다. 나는 한국미술사를 가르치면서 좀더 잘해 보려고 이름 높은 선생님들의 강의를 찾아 다닌 적이 있었다. 그러던 중 국립중앙박물관장으로 당대의 안목과 빼어난 문장력으로 한국의 미학을 설파해 온 고 최순우 관장의 강의를 도강하게 되었다. 최 관장은 우리나라 백자의 특성에 대하여 잔잔한 어조로 소담하게 말하기를 십여 분 하고는 이내 슬라이드 감상에 들어갔다. 첫 슬라이드가 조선 초기 백자 항아리였고, 그 다음은 백자 제기, 그 다음은 귀대접.... 이런 식으로 다음 다음으로 속속 넘어가는데 열번째쯤인가에 달항아리가 슬라이드에 비쳤다. 의자에 앉아 등을 돌리고 학생들과 함께 슬라이드를 보던 최 관장은 느린 몸동작으로 일어나더니 달항아리를 물끄러미 살피다가 옆으로 가서 또 한번 바라보고는 “그거 참 조오타”하면서 이내“다음 슬라이드”하고 말하였다. 그 이상의 설명은 없었다. 그러나 그 강의 중에 풍기는 전체적인 분위기는 달항아리의 형태와 때깔에 서린 그 모든미감을 설명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나는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물음으로 되돌아오는 것이다. 내가 최 관장을 흉내내어“그거 참 조오타, 다음 슬라이드”라고 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그것은 최 관장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일 뿐이다. 또 최 관장이 내 나이였던 시절에는 그런 식으로 강의하지 않았을 것 같다. 정말로 탐구하는 자세에서 달항아리의 둥근 듯 이즈러진 선의 묘미, 기하학적 원이 아니라 둥그스름하게 돌아간 어진 선 맛, 설백의 눈부심이 아니라 유백색의 따스함에서 오는 정겨움, 상큼하게 받힌 굽다리와 긴장감 있는 입 부분의 마감 솜씨를 미세하게 따지면서 설명했을 것 같다. 그렇게 하기를 이십 년, 삼십 년 하다 보니 입신과 달인의 경지에서는 “조오타!”한마디로 끝낼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그러니까 한 분야에 입문하여 전문인, 프로가 되면 초단에는 초단답게, 9단에는 9단답게 그 경지가 나타나는 것인가 보다. 나는 초단이 9단을 흉내낸다고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결코 초단처럼 행동하지 않는다는 사실만 배웠던 것이다.
지금 세상에는 그리 널리 알려진 인조물이 아니지만 유재필의 품성과 덕성에 못지 않은 인간적 매력을 지닌 희대의 “구비평론가” 방동규라는 분이 있다. 주변에서는 그의 별명인 배추에다 형 자를 붙여 배추형이라고 불리는 분이다. 그 배추형이 한번은 술자리에서 왕년에 주먹 쓰던 시절을 얘기하는데, 그 요지는 주먹의 달인은 결코 주먹을 쓰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주먹으로 따지자면 20대 중반 주먹 3단 시절이 가장 강하지만 이미 늙어 몸이 말을 잘 듣지 않는 오십대의 9단한테는 이길 수가 없다는 것이다.
어쩌다 주먹이 맞붙어야 하는 험악한 상황이 되면 양자는 주먹에 앞서 먼저 눈빛과 몸가짐으로 상대방 급수를 재어 보게 되는데 3단은 펄펄 날지만 9단은 두 발이 땅에 짝 달라붙는다는 것이다. 거기에서 벌써 판가름이 나고 만단다. 3단은 스스로 애숭이임을 자인하고 물러설 수밖에 없음을 안다는 것이다.
그러나 양측이 팽팽해지면 좀 복잡해진단다. 결국 주먹과 발길질이 오갈 수밖에 없는데 이때도 상수는 결코 먼저 출수出手하지 않는다고 한다. 다만 말로만 “정 억울하면 한번 덤벼봐”하며 상대의 출수를 요구한다는 것이다. 이 때 상대가 순식간에 걷어찰 차비를 하면서 한쪽 발을 들어올리면 상수는 두 발을 꿈쩍도 하지 않고 팔뚝으로 방어하면서 “왜 이렇게 성미가 급해?”하고 응수하면 상대는 다음 순간 다음 동작의 리듬을 잃어 주춤하는 사이에 일격으로 끝낸다고 한다. 만일 상대의 발이 올라가는 것을 보고 피한다고 뒤로 주춤거리면 여지없이 맞고 만다는 것이다.
똑같은 상황에서 발을 먼저 들어올린 쪽이 결코 하수가 아니라면 “왜 이렇게 성미가 급해?”하는 엉뚱한 반응에 조금도 흔들림 없이 발을 허공에 띄운 채로 “무좀이 가려워서 그렇다”하는 식으로 대꾸하면 이쪽에서 “어쭈”하며 응수하고 상호간에 다시 맞붙을 자세를 취하게 되는데 이것이 무협지에서 말하는 일합一合에 해당된다는 것이다.
상황이 험악해져서 한쪽이 손에 칼을 들고 나오면 상대방은 눈 하나 꿈쩍 않고 “야, 야, 손 빌라. 칼은 연필 깎을 때 쓰는 거야”하고 대꾸하면 상대방은 그 여유 있는 너스레에 순간 긴장을 놓게 되는데 그 0.5초의 틈에 손목을 잡아 비튼다는 것이다.
똑같은 상황에서 칼을 빼든 쪽이 만만치 않으면 “연필 깎는 데 쓰는 거야”하는 응수에 “칼은 고기 써는 데도 쓴다는 걸 모르냐”하고 다시 자세를 정비하는데 이것이 이합으로 되는 것이란다.
배추형의 이런 이야기를 듣다 보면 그 속에는 인생과 학문과 예술... 잘은 모르지만 참선의 세계 속에서도 그대로 적용시켜 볼 수 있는 구절이 곳곳에 들어있음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배추형의 재담은 재담이 아니라 ‘구비평론’의 경지에 이른 것이다.
유재필의 삶, 최순우의 강의, 배추형의 구비평론, 이런 것을 생각하면 우리는 언필칭 서구의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논리라는 이름 아래 잊어버렸던 인간사의 심오한 한 부분이 되살아남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이 차원 높은 인식과 행동의 원리를 찾아내고 간직하고 실현하는 일을 곰곰히 생각해 보게도 되는데 그러자니 스쳐간 경험 가운데에 예사롭지 않았던 일들이 하나씩 떠오른다.
대학 삼학년 때. 명강의로 이름 높은 이용희 교수의 ‘국제정치학특강’을 수강해 본 적이 있었다. 그 때 이 교수님은 강의 중간에 “여러분은 제발 책을 읽고 난 다음에 저자와 책 이름을 잊어버리십시오”하는 주문을 하였다. 아무리 좋은 책이라도 그 저자와 책이름과 함께 기억되는 지식은 남의 지식이지 내 지식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을 버림으로써 내 것으로 녹아드는 것이니 어디 가서 유식한 채하여 누가 쓴 무슨 책의 어느 구절을 말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 때는 그 말이 그럴 듯하다고만 생각했지만 이제는 버린다는 것의 깊은 뜻과 그 높은 경지가 무엇을 말한 것인지 조금은 알아챌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도 내게 끊임없이 일어나는 반문은 그 모두가 배워서 되는 것도 아니고 억지로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열심히 정직하게 살다 보면 그렇게 될 수도 있다는 결론에 다다르니 내게는 그저 오르기 힘든 저 높은 산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