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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자치제의 역사적 근거와 현실적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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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고성국 1990년 03월 97호
1. 지방자치제의 역사적 전개와 그 정치적 의미
자본주의적 발전과 병행하여 출현한 근대국민국가가 형성되기 이전의 시기에 있어 정치는 본질적으로 지방분권적인 것이었다. 봉건제의 전형을 창출한 서구에 있어서나 그것의 중앙집권적 변형인 동양의 봉건제에 있어서 정치권력의 존재 양식은 분산적이었다. 그리하여 이 시기에 분산된 분권적 정치·사회체제를 느슨하게나마 집중시킬 수 있었던 것은 권력체계 자체로부터의 규정력이라기보다는 종교나 그와 유사한 신권적 카리스마였다고 할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분권적 정치체제는 자본주의의 발전에 따라 경제의 일국적 운용이 보편화되면서 더 이상 효율적인 것도 자연스러운 것도 아니게 되었다. 일국적 경제활동의 자유로운 운동을 위하여서는 경제적, 국경에 상응하는 정치적 국경의 획정이 요구되었으며 또한 그에 상응하는 조세체제와 행정체계의 중앙집권적 확립이 요청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소위 절대왕정기로 표현되는 근대국민국가로의 이행기에 있어 국가권력의 중심 과제는 분산이 아니라 집중일 수 밖에 없었다.
지방자치는 이러한 구래의 분산적 원심력과 근대국민국가의 집중적 구심력 간의 정치적 절충의 결과로서 주어졌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근대국민국가가 점차 그 역할과 비중을 높이게 되면서 절충의 폭이 제한되고 그 결과로 지방자치의 영역 또한 좁아지게 되었던 것은 필연적 과정이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의 귀결로서 과도하게 집중된 현대판 리바이어던 즉 현대행정국가가 출현하게 되었던 것이다.
바로 이 시점에서 지방자치는 전혀 새로운 정치적 의미를 갖게 된다. 분명 분산, 분권을 극복하고 집중과 통합을 추진하는 것이 대세였던 시기가 있었으며 이 때의 지방자치는 두 운동간의 긴장에 대한 절충적 해소책의 의미를 가졌지만 이제 이미 과도하게 집중되고 비대화된 현대국가에 있어 지방자치는 긴장의 절충적 해소로서가 아니라 과도한 집중과 비대화된 행정, 집행권력이 직선적으로 가져올 ‘정치’의 부재, 민주적 절차의 소홀, 그리하여 궁극적으로는 주권자에 대한 일방적 통제와 국가권력의 군림이라는 상황에 대환 제도적 방어기제로서의 의미를 갖게 된 것이다. 우리가 민주개혁의 주요한 내용의 하나로서 지자제의 전면실시를 제기하는 것도 바로 이러한 지자제의 현대적인 정치적 의미 때문이다. 그리하여 이제 지방자치제는 중앙으로 집중된 행정, 집행권력의 일방적 결정과 집행을 지방적 차원에서 여과견제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제도로서 이해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그러나 이 경우 ‘여과·견제’가 함축하고 있는 이중적 의미에 대해서는 한번 더 짚고 넘어가야 할 듯하다.
‘여과·견제’의 첫번째 의미는 정치과정의 개방성과 국민대중의 정치 참여의 문제와 관련된 것이다. 비록 현대국가의 대부분이 ‘대의제’라는 정치원리를 채택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대의제’가 정기적인 선거 이외의 모든 정치과정을 배제·폐쇠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대의제악 참뜻을 살리면서 일상적 정치과정에서의 국민대중과의 결합을 어떻게 강화·확대시키는가가 핵심적 영역으로 사고되지 않으면 안 된다. 지방자치가 ‘여과·견제’의 제도적 기제로 작용한다는 의미는 바로 이러한 정치과정의 제도적 순환과 정으로서 지방적 수준의 정치의 장을 확보한다는 것이다.
두번째는 국민대중이 정치의 주체로 나서는 장일 뿐만 아니라 대중 스스로가 정책입안 심의, 결정, 집행, 평가에 이르는 총괄적인 정치역량을 고양시킬 수 있는 대단히 유용한 정치의 장이라는 의미이다. 민주주의의 궁극적인 그리고 어떤면에서는 유일한 담보가 국민대중의 성숙된 정치역량이라고 한다면 기득권충의 대중에 대한 탈정치화와 우민화정책에 맞서 국민대중스스로 책임있는 정치의 주체로 자신을 세우기 위하여 지방차원의 정치공간을 적극 활용하는 것은 중장기적으로 볼 때 결정적인 중요성을 갖게 될 것이다.
‘여과와 견제’의 이러한 이중적 의미를 확인할 때 비로소 한국 사회에서의 지방자치의 역사적 궤적에 대한 정치적 해명이 가능해질 것이다. 그것은 단적으로 표현하자면 지방자치의 민주적 성격에 대한 원천적 부정이자 지방자치를 통해 정치의 주체로 나설 국민대중에 대한 원천적인 정치적 배제과정이었다. 아래에서는 그러한 역사적 경과를 추적하면서 최근 지방자치의 복원으로까지 오게 된 정치적 배경을 살펴보기로 하겠다.

2. 지방자치-부정과 복원의 정치과정
식민지시기에 과도하게 팽창되었던 중앙의 행정 집행기구를 그대로 물려받은 채 40년대의 정치적 대립과 한국전쟁을 경과한 한국사회에 있어 국가권력은 가히 무소불위의 권능으로서 사회 각 부면을 일방적으로 장악, 주도해왔다. 특히 일제말기의 전시체제와 한국전쟁을 통해 대폭 강화된 동원체제는 지방정치 및 행정의 자치적 운용을 허용할 어떠한 여지도 갖고 있지 못했다. 그러므로 민주주의의 모든 절차와 원칙이 유보된 상황에서 52년부터 실시된 지방자치는 중앙행정기구의 편의적 집행을 위한 허위체계로서만 가능했을 뿐이었다.
4월혁명은 40년대, 50년대의 이러한 정치상황을 일변시킨 정치적 계기였다. 4월혁명은 그것의 민주적 지향을 법·제도적으로 정착할 시간적 여유와 유효한 수단을 거의 갖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5.16쿠데타로 좌절되까지 사회, 정치의 각 부면에서 나름대로의 민주개혁의 단초를 열어놓았다. 그리하여 지방자치는 그 본래의 정치적 의미를 완전히는 아니지만 상당 정도는 회복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4월혁명의 시기에 지방자치의 실시가 갖는 정치적 의미는 상대적으로 제한될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그 당시는 지방자치적 차원의 민주개혁이 주요하게 부각될 수 없을 만큼 사회 전 부면에서의 개혁의 기운이 충일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4월혁명 기간 중 실시, 복원되었던 지방자치의 민주개혁적 성격은 역설적으로 5·16쿠데타로 인한 지방자치가 원천봉쇄된 60년대 이래의 정치부재의 상황에서보다 전면적으로 부각되었다고 할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87년 대통령선거시의 대국민공약으로 제시되었던 지방자치제 실시가 그간의 여소야대 4당정국에서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표류하다가 89년말 5공, 광주문제의 타협적 정리의 정치적 보상물로서 전격 결정, 발표된 저간의 정치상황을 보면서 현단계 지방자치의 실사가 갖는 여러 가지 한계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잠재적으로 갖고 있는 민주개혁적 성격에 주목하는 것도 지난 30년 간의 지방자치 부재의 시기가 역설적으로 증명해 준 지난 지방자치의 민주개혁적성격의 복원에 대한 기피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의 지방자치제는 그 본래의 민주개혁적 성격에도 불구하고 그것의 발현을 최대한 억제하면서 미봉적으로 실시된 것이 거의 확실하다. 왜냐하면 이번의 지방자치실시 결정은 기본적으로 현재의 정치구도를 계속 유지 확대시키려는 제도정치권의 이해타산을 극복하여 지방자치 본령의 민주적 성격을 실현한 국민대중의 정치역량이 미성숙되어 갔다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제 위에서 정리한 한국정치사에서의 지방자치의 역사적 경로를 살펴보면서 그것이 현상태로서 실시되는 현시기 지방자치의 정치적 성격과 그 한계를 검토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왜냐하면 그럴 때에만 채 발현되지 못한 지방자치의 개혁적 성격을 이후의 정치과정을 통해 온전하게 실현시킬 최소한의 논리적 근거를 갖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3. 지방자치 실시의 정치적 의미와 그 발전전망
정치권력의 장악(집권)을 자신들의 궁극적인 과제로 상정하는 제도정치권의 각 정치세력에게 있어 지방자치가 그것을 향해 가는 하나의 정치적 결절점이자 매개로서 처리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그리하여 4당구조하에서 상대적으로 기득권을 갖는 여당과 제1야당에 있어 지방자치제의 실시는 또한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방정치의 수준에서 확대, 고착시킬 수 있는 정치적 매개로서 상정되었던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바로 그러한 이유로 인하여 제2야당, 제3야당의 경우 지방자치제의 실시가 대권으로부터 멀어지는 정치적 계기로 받어들여지게 된 것 역시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민주당 공화당이 지방자치 실시 이전의 정계개편을 역설했던 것도 그리하여 실제로 민정·민주·공화의 3당합당을 지방자치의 실시 이전에 완료한 것도 적어도 지방자치와의 관련에서 보면 그들의 합리적 타산의 결과로서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지배세력 일반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지방자치의 실시는 행정적 손실을 보전할 정치적 이익을 보장하는 것으로서 평가되었을 가능성이 많다. 지방자치가 이미 역사적 대세로, 그리고 그것의 실시가 구체적인 정치일정의 하나로서 확고하게 자리잡고 있는 상황에서 지방자치의 연기 자체는 그 자체로서 그만큼의 정치적 부담을 지배세력 일반에게 부과하게 될 것은 명약관화하다. 여기에 더하여 좀더 적극적으로 평가한다면 지방자치의 원천적 부재라는 정치적 부담보다는 약간의 행정적 손실을 감수하더라도 지방자치의 실시를 통한 지방차원의 정치적 지배구조를 구축하는 것이 정치적으로 훨씬 유리한 선택으로 타산되었을 것이라는 점을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이유로 인하여 지배세력 일반에게 지방자치는 지방정치의 장을 통해 중앙권력의 행정적 지배구조를 정치적 지배구조로 전환시킬 수 있는 정치적 계기로서 받아들여졌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지배세력 일반의 이러한 구조가 과연 온전하게 실현될 것인지는 전혀 다른 문제이다. 여기에는 무엇보다도 지방정치의 장에서 역동적으로 운동할 국민대중의 정치력과 민주화운동세력의 대응 정도가 고려되어야만 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3당합당으로 인해 결과적으로 형성된 양당체제 하에서 유일야당으로서의 선명성과 상대적 선진성을 내세운 평민당의 정치 공세 역시 지방자치의 결과를 쉽게 예측할 수 없게 하는 하나의 변수이다.
그러므로 지방자치의 본래적 개혁성의 발현 정도는 전적으로 제도 정치권 내 여·야간의 공방 및 정치력의 수준과 민주화운동세력의 대응 정도 및 국민대중의 정치동향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특히 92년의 대권경쟁과 관련하여 볼 때 지방자치의 실시는 전략적 중요성을 갖는 몇 지역에서의 정치공방을 대단히 역동적인 것으로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예컨대 서울지역의 지방자치단체장이나 서울지역 지방의회 구성의 경우 그것이 갖는 상징적 중요성과 실질적 비중 때문에 그 정치적 공방의 수준은 매우 높은 것으로 예상되는 것이다.
또한 전혀 다른 맥락에서 마산 창원, 부산, 울산, 전남 농촌지역 등의 선거과정과 결과 역시 매우 중요한 정치적 의미를 갖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기층대중의 정치동향이 기층민주주의(Grassroot Democracy)의 직접적인 장인 지방자치제에서 어떻게 외화될 것인지는 이후의 예정된 정치일정 및 제도화된 정권교체 국면에서의 대중적 역할을 가늠하는 데 상당 정도의 시사를 줄 것으로 판단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위와 같은 지역적 특수성이나 정치적 비중과 관련된 몇몇 지역만이 아니라 지방자치가 실시될 전 지역에 있어 국민대중의 역동적 정치참여와 동향은 지방자치의 향후 전망을 가늠하는 궁극적 변수이자 요인으로 사고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왜냐하면 이어 언급했듯이 정치변동의 기본능력은 국민대중의 정치실천으로부터 주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이미 명백하게 확인된 바와 같이 6월항쟁의 전국적 전개과정 등 80년대 국민대중의 정치적 진출이 지방자치의 실시까지를 판단하는 80년대 한국사회 정치발전의 기본 동력이었다는 역사적 현실로부터 엄중하게 증명되고 있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