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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자치의 본질과 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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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배손근 1990년 03월 97호
1. 지방자치의 본질
지금까지 모든 역사에 있어서 민중의 운명이나 생존양식을 결정하는 힘은 언제나 한줌의 인간이 틀어쥠으로써 전체 민중은 소외되어 왔다. 자유의 본질이 인간 자신의 운명이나 생존의 조건과 양식을 스스로 부정하는 힘이라면 자기결정, 자기통치, 자기관리야말로 자유를 위한 기본 조건이다. 모든 사회운동의 궁극적인 목적은 인간에 의한 인간의 지배, 착취, 소외로부터 해방된 계급 없는 사회를 창설함으로써 시민(주민)으로서, 생산자(노동자)로서, 소비자로서 인간의 주체성을 회복하여 사회의 주인이 되게 하는 데 있다. 이것은 바로 타자에 의해 일반적으로 결정, 관리되고 지배, 종속되는 수동적 객체에서 벗어나 자신이 직접 스스로 결정, 관리통치의 주인이 되지 않고서는 결코 인간의 진정한 해방이나 자유는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민주주의의 핵심이며, 기본 논리이다.
민주주의의 본질은 ‘자치’ 또는 ‘자주관리’이다. 따라서 민주주의가 제대로 실현, 가능하기 위해서는 직장 및 기업의 노동자자치, 지역의 주민자치, 국가의 국민자치가 확립됨으로써 최저변인 기층에서부터 최상층인 국가에 이르기까지 사회의 모든 영역, 모든 레벨에 걸쳐 총체적인 ‘자치’가 이루어져야 한다. 국가레벨의 상부구조의 민주화도 중요하지만 지역이나 직장 동 토대의 ‘기층민주주의’가 보장됨이 없이 상부구조의 민주화만으로는 어차피 소수자의 지배놀음에 지나지 않게 된다. 따라서 민주주의의 토대로서 직장자치, 기업자치와 함께 지방자치가 중시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특히 지방자치의 실현 없이는 민주주의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지방자치의 본질은 행정적 자치가 아니라 정치적 자치이다. 지역주민이 국가로부터 상대적으로 독립, 자치단체를 조직하여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지역사회의 모든 문제를 스스로 자주, 자치적으로 결정, 통치하는 것이 바로 지방자치이다. 따라서 자치단체의 자치권은 중앙의 국가권력을 분권화하여 위로부터 지방에 부여되는 것이 아니라 본래 그 지역주민이 갖는 고유권한을 어느 정도 중앙에 위임하느냐 하는 데 그 본질이 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근대국가의 생성은 국가단위로 조직되어 국가권력을 지방으로 분권화하는 과정을 거쳐왔을 뿐 아니라 현실적으로도 지방자치는 국가권력의 인정 위에서만 자치권을 갖기 때문에 주민자치는 국가권력과의 관계에서 일정한 한계를 갖지 않을 수 없다. 요컨대 지방자치는 자치단체 독자의 자치권과 국가의 전 지역통치권이라는 상호모순된 대립물의 통일체라는 데 그 본질적 특성이 있다. 따라서 지방자치를 제도화함에 있어서는 우선 자치단체의 권한과 역할배분을 어느 정도로 할 것인가 하는 지방과 중앙의 상호관계가 문제가 된다. 또한 주민자치, 즉 지방자치단체의 구역설정, 지방의회와 지방자치단체의 장과의 관계, 그리고 정당과 자치단체와의 관계설정 등이 문제가 된다. 이하에서는 이러한 지방자치의 본질과 그 제도화에 있어서 세계에서 가장 민주적, 선진적이라 할 수 있는 유고슬라비아의 경우를 서방선진제국과의 비교시각에서 그 주요특정만 살펴보기로 한다.

2. 유고의 지방자치의 기본원리
유고는 생산수단의 ‘사회적 소유’와 ‘국가퇴장’의 논리에 기초하여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영역에 걸쳐 모든 단위, 모든 레벨의 의사결정 내지 관리를 철저히 분권화 공개하고, 이에 노동자 시민, 소비자 등 관계당사자가 주체적, 동권적으로 참가함으로써 직장 및 기업의 노동자자주관리, 지역의 주변자주관리, 국가의 국민자치 등 사회 전체의 총체적 체제로서 ‘참가민주주의’ 내지 ‘자주관리사회주의’를 실시해 가고 있다.
1) 자유인의 연합과 국가사멸
유고의 자주관리체제는 마르크스의 명제인 ‘자유롭고 평등한 제 개인의 연합’에 기초하고 있다. 이것은 바로 사회는 동등한 권리를 가진 제 개인의 자유로운 협의와 합의에 의한 계약사회로 보는 데 있다.
노동주체는 생산자로서는 산업적으로 노동자→연합노동 기층조직(=기업의 내부조직)→노동조직(=기업)→연합노동복합조직(=기업연합체)→산업공동체→국민경제 등으로 연합해 가고, 또 시민, 주민으로서는 지역적으로 노동자→지역공동체(인구 2천명 내외)→꼼뮨-(인구 4만명 내외)→공화국·자치주→연방으로 연합해 간다.
노동자 자주관리는 국가의 매개 없이 노동자가 연합하여 자주, 자치적으로 사회의 모든 부문을 운영하는 것이기 때문에 국가의 퇴장은 당연한 귀결이다. 또한 이 국가사멸의 논리는 전위당에 의한 대중의 지도라는 사고방식도 부정된다. 사람들이 자기의 생활을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 대전제이기 때문이다. 국가의 기능은 국방, 외교, 경제관계의 법적틀 형성등으로 대폭축소, 한정되고 있다.
2) 분권 및 참가와 위계제 폐지
자주관리는 지역이나 기업 등 각종 단위의 완전한 자주독립성을 전제함으로 모든 의사결정 내지 관리의 철저한 분권과 참가 및 자치에 기초한 ‘기능적 민주주의’를 체제원리로 한다. 지역, 기업 동 모든 조직의 배부에서도 철저히 분권화 되어 하부로 권력이 분산되고 있다. 산업은 물론 지역적으로도 지역공동체→꼼뮨→공화국, 자치주→연방 등으로 철저하게 분권화한후 이를 다시 ‘밑으로부터 위로’ 자유롭게 평등한 연합의 원리에 의해 통합해 감으로써 조직간 및 조직 내부에서 의사결정의 위계제(Hierarchy}를 완전 폐지했다. 이로써 종래 전형적이던 상하위간의 일방적인 명령, 복종관계는 완전히 소멸되었다. 이러한 위계제의 폐지로 모든 조직은 대등자간의 수평적 연합관계로 전환되었다. 그리고 자주관리는 위계제 조직원리에 기초한 엘리뜨지배의 계급사회를 폐절하기 위해 기업내부의 기층조직과 지역공동체로부터 연방에 이르기까지 총체적으로 모든 레벨의 의사결정에 노동자 시민이 직접 또는 대의원을 통해 동권적으로 참가하는 참가제의 조직원칙을 기본원리로 한다.
3)합의제와 하부권위의 원칙
모든 조직내 및 조직간의 의사결정은 그 결정에 참가하는 모든 주체간의 ‘합의제’를 원칙으로 한다. 연방계획은 물론 모든 레벨의 계획이나 계약은 모두 하부단위의 계획을 토대로 ‘밑에서부터 위로’ 작성, 쌓아올라가고, 그로부터 상호조정된다. 따라서 모든 ‘권력 및 권위’의 기초는 하부의 토대인 기층에 두어지며 이 원칙은 대등자간의 수평적 통합을 원리로 하는 자주관리체제의 당연한 귀결이다. 이에 따라 모든 조직간의 관계, 예컨대 공화국이나 연방과 꼼뮨 사이의관계도 어디까지나 상호 대등한 합의에 의해서만 권리, 의무가 설정된다.
4)대의원제와 파면제
자주관리의 근본원칙은 ‘프랑스내전’과 ‘빠리꼼윤’(1871년)에서 마르크스가 정식화한 대의원제 민주주의와 어떤 지도자이든 언제든지 파면할 수 있는 항시적 파면제도로서 이것은 치자와 피치자 관리자와 피관리자 사이의 2분화를 근원적으로 폐절하려는데 본질이 있다. 유고의 대의원제는 대의원이 선출모체의 방침에 충실하고, 거기에 책임을 지며, 언제나 그 활동을 선출모체에 보고하도록 함으로써 대의원의 활동을 엄격히 구속하고 있다. 이같은 제도는 ‘대표제’민주주의 경우 포괄적인 백지위임에 의해 일단 선출된 의원이나 대표가 제멋대로 행동함으로써 곧잘 선거인과의 일상의 연결을 상실하고 직업화하여 진정한 대표라고 할 수 없는 경향을 뿌리뽑기 위한 것이다.
5)기능적 민주주의와 의회의 기능분화
지주관리체제의 대의제도는 정치, 경제, 사회의 모든 영역의 이익이나 권한을 포괄적으로 대표하는 일반적 유형의 대의원제일 수는 없고, 따라서 사회를 각 영역별로 기능분화함으로써 특정의 목적에 대해서만 기능별로 대변하게 하는 기능적 민주주의 원리를 채택하고 있다. 이것은 특정의 대의원이 정치, 경제, 사회의 모든 영역에 걸친 다양한 이해관계를 올바르게 대변한다는 것은 대의원의 능력면에서도 근본적으로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자주관리는 보통의 노동자, 시민이 정치적 결정의 주체가 되게 하여 각자에게 자기 능력을 발견하여 이를 발전시키도록 교육하는데 목적이 있으므로 전문적인 직업정치가를 육성함이 없이 가능한 한 모든 사람이 한번씩 교대로 대의원이 되는 것을 원칙으로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원리에 따라 각급 의회도 기능분화하여, 연방의회는 공화국 자치주원과 연방원의 2원제로, 공화국의회과 자치주의회 및 꼼뮨의회는 각각 정치원(사회, 정치의회), 경제원(연합노동회의), 사회문화원(꼼뮨 및 지역공동체회의)의 3원제로 이루어지고 있다. 기업내의 연합노동기층조직의 노동자나 지역공동체의 주민, 그리고 사회정치조직(공산주의자 동맹, 노동조합 등)의 구성원은 각각자신의 대의원단을 선출하고 이들 3종의 대의원단을 파견함으로써 꼼뮨의회, 공화국 또는 자치주의회, 연방의회를 구성한다. 모든 단위 모든 레벨의 대의원의 임기는 4년이고, 연속 재선은 허용되지 않는다. 대의원 수는 I989년 현재 전국 9만여 개의 대의원단에 총 150만명의 대의원이 각종 의회에 참석하고 있다.

3. 유고 지방자치제의 특정과 의의
이상의 체제원리에 따라 유고의 지방자치제는 지역공동체, 꼼뮨, 공화국·자치주의 3단계로 이루어 지고 있다. 지역공동체는 주민자치제의 제1단계(세포단위)로서 전문행정기관이 따로 없는 진정한 의미의 자치공동체이다. 교육, 청소, 환경, 보건, 문화, 체육 등 각종 공공사업을 주민의 직접민주주의에 의해 자주관리한다. 그 형태는 주민총회나 분야별집회 등 직접적인 의사결정 형태이며, 지역공동체의 재정은 국가의 간섭이나 매개 없이 수의자부담주의에 따라 주민의 지주납부금으로 운영한다.
꼼뮨은 지역자주관리의 제2단계와 국가권력의 말단기관이라는 2중의 성격을 잦고 있다. 74년 이후 국가기능은 국방, 외교 등 기본적인 것 이외에는 모두 꼼뮨과 공화국 자치주에 이양됨으로써 꼼뮨은 현재 정치, 경제, 사회, 문화에 대한 완전한 자치권을 갖고 있다. 현재 유고 전체에 520개의 꼼뮨이 각기 평균 21개의 지역공동체를 갖고 있다. 꼼뮨은 보다 큰 지역단위(공화국·자치주 연방)의 모든 기관 창설의 기초이고, 모든 사회정치구조는 꼼뮨의 자주관리를 토대로 그 위에서 성립하며, 모든 「권력·권위」의 기초는 꼼뮨에서부터 직접 파생되는 「사회적 자주관리」의 최고권위 기관이다. 꼼뮨은 전기, 상하수도, 교통, 주택, 보건, 직업훈련, 지방산업 등 각종 공공경제활동과 주택건설, 유지, 토지이용, 관리, 교육, 공중위생시설, 도시계획 등 꼼뮨공영사업을 수행한다. 꼼뮨의 자주관리기관은 선거인집회, 일반투표 등 직접적 형태와 꼼뮨의회를 통한 간접적 형태가 있다. 직접적 형태는 꼼뮨의 폐지·합병, 꼼뮨의 사회계획, 예산 및 지역계획, 세금이나 지주납부금 결정에 대해서 이루어진다. 그리고 꼼뮨의회는 3원제로 되어 있으며, 각 원은 공화국·자치주 및 연방의회에 통일 계통의 대의원을 파견한다. 꼼뮨의 재정은 주민의 자발적인 자주납부금과 조세에 의한 꼼뮨 자체의 예산이 기본이다. 이밖에 1인당소득이 당해 공화국의 전채 꼼뮨평균보다 낮은 꼼뮨에 대해서는 공화국기금에서 그 부족 분을 보조해 줌으로써 꼼뮨간의 균등한 지역 발전을 도모하고 있다. 이와 같은 유고의 지방자치제는 지방과 중앙의 권력관계 설정에 있어서 중앙권력을 지방으로 분권화하여 「위에서부터 밑으로」 위양할 뿐만 아니라 상하의 위계제와 수직적 통합, 대표제민주주의 등을 원리로 하는 서구제국의 경우와는 근본적으로 발상을 달리한다. 지자제의 최소 세포단위에 있어서도 서독의 꼼뮨(1,800개)이 인구 5천명, 일본의 阿·村(2,848개)이 8천명, 영국의 자치구(1만여 개)가 1만명인데 비해 유고의 지역공동체(1만9백여 개)는 2천명 내외로 가장 적은 편이다. 지방의회와 자치단체 장과의 관계에서도 유고는 의원파 장을 따로따로 산출하는 기관대립형(일본, 미국의 대도시)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대의원제시스템과 항시적 파면제 등으로 인해 주민의 직접참가와 「밑으로부터의 통제」라는 면에서 유고의 지자제는 자본주의제국에서 가장 선진적인 이탈리아의 「지역평의회」와 「주민참가제도」에 비해서도 본질적 의미에서 발본적으로 선진적이고 민주적이라 할 수 있다.
이상과 같이 유고의 자주관리체제의 양대지주의 하나인 지역공동체와 꼼뮨의 자주관리를 보았지만 그것은 이들 기층영역, 특히 지역공동체는 전문적인 행정기관도 없이 주민 전원이 참가하여 직접 결정하고 직접 집행한다는 의미에서 인류사상 그 유례가 없는 직접민주주의의 위대한 실험이라 할 수 있다. 이같은 순수한 직접민주주의는 극히 한정된 지역 내지 극히 한정된 문제 이외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이유로 「빠리·꼼뮨」(1871년)을 비롯한 어떤 혁명기간에 있어서만 표방되었을 뿐 그 실천적 의의를 너무나 오랫동안 과소평가 또는 무시해 왔다. 이에 대해 유고의 지방자치는 평균인구 2천명 정도의 소사회에서 이를 실천함으로써 고대 그리이스, 아테네의 폴리스와 비견할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오늘날 대표제민주주의는 민주주의의 형식만 갖추고 있을뿐 너무나도 중앙집권적이고 관료주의적인 교묘한 조직수단으로 인해 「조종형민주주의」로 타락해 가고 있는 데 비해 이 유고의 지역공동체의 자주관리실험은 이같은 대표제민주주의 공동화·형상화를 타파하고 저변에 있는 시민 한사람 한사람의 기능이 단순히 투표하고 비판, 반대나 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결정의 채택과 집행의 전과정에 직접 참가하는 이른바 「풀뿌리민주주의」를 지향하고 있다는 점에서 확실히 문화대혁명의 새로운 역사적 전환점을 닦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