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둘이서 내일 추월이 언니한테 가서 물어볼까?”
“무얼 물어보자는 거니?”
“우리를 누가 사갈 사람이 있는지 말야!”
“어머나!”
점례는 무서워서 소리치며 놀라버렸다.
“왜, 팔려가기 싫으니? 넌 너희 어머니 고생하시는 거 불쌍하지 않니?”
“하지만 어떻게 우리가 팔려가니?”
점례는 입안의 침이 마르고 가슴속이 덜덜 떨렸다.
“오늘 밤에 잘 생각해 봐,”
판순이는 어른처럼 말하고 일어나 뒤꼍에서 나와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이날 저녁 점례는 어머니 곁에 누워서 곰곰이 생각을 했다. 판순이 말이 너무도 엄청난 것이지만 마땅한 말이기도 했다.
‘내가 추월이처럼 기생이 되면 춤도 추고 노래도 불러야 하는데 부끄러워 어떻게 하나?’
점례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몸을 흔들며 춤추는 모습을 그려보다가 어느새 두눈에서 눈물을 쪼르르 흘리고 말았다.
다음날 아침, 점례는 누가 흔드는 바람에 눈을 떴다.
“점례야, 일어나거라.”
어머니가 점례의 어깨를 안아 일으키는데 얼른 쳐다보니 외숙부가 윗목에 앉아 있었다. 점례는 얼른 마음을 가다듬고 일어나 앉았다.
“외숙부님 오셨읍니까?”
점례는 고개를 숙이며 절을 했다.
“곤히 자는데 깨워서 안됐구나.”
외숙부는 무슨 일이 있어서 이렇게 아침 일찍 찾아온 모양이다. 얼굴이 까칠하게 여위고 눈자위가 움푹 꺼졌다.
“오빠, 집에 무슨 일이 있었나요?”
어머니가 물었다.
“쪼깐아, 애들 데리고 우리 집으로 가자꾸나.”
외숙부는 좀 달래는 듯, 사정을 하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왜 그러셔요? 형님이 많이 편찮으신가요?”
“그렇단다. 승숙이 혼자서 너무 고생이 되어 못보겠구나.”
“애들 학교에 보내 놓고 제가 가보겠어요.”
어머니는 외숙부의 얼굴을 쳐다보며 걱정스럽게 말했다.
“아예 아이들도 데리고 우리 집에 함께 있자꾸나.”
“하지만 오늘은 아이들이 학교에 가야 하지 않습니까.”
결국 외숙부는 혼자 돌아가고 어머니는 점례와 점득이를 학교로 보낸 뒤에 가기로 했다.
학교길에서 판순이가 점례 귀에 대고 소근거렸다.
“어젯밤에 생각해 봤니?”
“뭘 말이니?”
점례는 외갓집 일 때문에 어제 일은 까맣게 잊고 있었다.
“기생이 되는 것 말이야.”
‘난 잘 몰라.”
“그럼, 넌 나중에 거지가 되겠구나.”
판순이는 입을 비쭉거리며 투덜대었다.
“아직 쪼끄만한데 어떻게 나중 일을 알 수 있니?”
점례는 가슴이 조금 떨리면서도 터무니없는 말에 화가났다.
“쪼끄만해도 알 수 있단다. 용감한 애는 큰일을 하고 째째한 애는 거지가 되는 거야.”
점례는 또 찔끔했다. 하지만 점례로서는 지금 어떻게 해야 할지 너무도 어려운 일인 것이다. 학교길은 꼬부라지는 모퉁이길인데, 판순이는 점례 손을 잡고 똑바로 장마당쪽으로 끌고 갔다.
“왜 이쪽으로 가니?”
“추월이 언니한테 가보자.”
“싫어!”
점례는 손을 뿌리치려 했지만 판순이는 놓아 주지 않았다. 끌며 끌리면서 어느새 장마당 저쪽 커다란 기와집 앞에 와 있었다. 거기서 판순이는 남자애같은 큰 목소리로 불렀다.
“추월이 언니?”
“누구야!?”
안에서 금방 대답 소리가 나면서 쫓아나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이내 대문이 열리고 예쁜 여자가 나타났다.
“언니, 저 판순이에요.”
여지는 바로 추월 기생이었다. 추월은 판순이를 갸우뚱 보고 나서 말했다.
“무슨 일로 날 찾았니?”
“나하고 점례하고 언니처럼 되고 싶어서 왔어요.”
판순이는 배시시 웃으며 서슴지도 않고 말했다.
“호호호, 아침부터 그런 장난하면 못써요. 어서 학교 늦을테니 돌아가거라.”
“아니에요. 난 어머니 아버지가 안 계셔요. 그리고 점례네도 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우리는 돈을 벌어 할머니를 잘 모시려고 해요.”
“그렇지만 아직 너희들은 이렇게 어리잖니?”
추월이는 줄곧 웃으며 달래었다. 판순이는 알았다는 듯 활짝 웃었다.
“그럼, 나중에 크면 언니가 우리를 데려다 일을 시켜주세요 ”
“나중 일은 잘 모른단다. 어서 학교 늦을 테니까 돌아가거라.”
“하지만 난 이제 혼자서 단단히 결심을 했어요. 점례하고도 굳게 약속을 한 걸요.”
“언제 굳게 약속을 했니?”
점례가 발끈 화를 내었다.
“얘는, 어제 우리 집 뒤꼍에서 둘이 커서 기생이 되자고 했잖니?”
판순이는 능청을 떨었다.
“얘들아 너희들 이름은 뭐라 부르고 집은 어디니?”
추월이 언니가 다투는 것을 막으며 물었다.
“얘는 점례이고 난 판순이에요. 우리 집은 저쪽 뒷동산 밑에 조그만 초가집인데 함께 살아요.”
판순이는 눈을 반짝거리며 우렁차게 가르쳐 줬다.
“그래, 알았다. 어서 학교 가거라.”
“안녕히 계셔요.”
판순이가 고개를 끄덕하며 인사했다.
“안녕히 계셔요.”
점례도 조그맣게 인사했다.
한 열 걸음쯤 걸어가다가 갑자기 판순이는 발을 멈추고는 뒤로 돌아섰다.
“추월이 언니!”
대문 안으로 들어가려던 추월이 부르는 소리에 돌아보았다.
판순이는 쏟살같이 뛰어가 조금도 거리끼지 않고 추월이 가슴에 덥석 안기는 것이었다.
“언니!”
판순이는 그러면서 큰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울면서 지껄여대었다.
“우리 불짱한 추월이 언니! 어머니도 안 계시는 추월이 언니는 가난했기 때문에 돈에 팔려 기생이 된 거죠? 이렇게 얼굴도 예쁘고 마음씨 착한 언니가 좋은데 시집도 못 가고 춤추고 노래하는 기생이 되다니… 불쌍하고 가련한 우리 언니…!”
추월은 판순이를 달래느라 땀이 났다. 어쩐지 판순이 넋두리가 가슴을 아프게 했지만 줄곧 웃는 얼굴로 깨끗한 손수건을 꺼내어 눈물을 닦아 주고 콧물도 닦아 주었다. 판순이의 깁고 해지고 때묻은 옷을 매만져 주며 가까스로 학교로 보내었다.
추월이는 그렇게 다독거려 보내면서
“판순아, 이담에 언니가 한번 찾아갈게.”
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