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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연이 어둠으로 내리는 산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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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비의 소리 - 여연 1990년 03월 97호
입춘대길(立春大吉), 봄이 들어서는 절기에 때아닌 하얀 눈이 온 산에 내렸다. 길들이 눈에 묻혀서 꼼짝없이 갇혀 지내게 됐다. 크게 볼 일이 있어 나들이할 일이 딱이 있는 건 아니지만 동네와 동네 사이로 열려 있던 마실 가는 길들이 갑자기 막혀 소통할 수 없게 되었다는 생각이 들자 나 홀로 깊은 산골에 유폐된 듯한 적막감에 둘러싸인다.
하얀 눈밭 아래로 적연(寂然)이 어둠으로 내리는 산사, 그 평온한 고요를 은은한 단청빛 띠며 서 있는 법당으로 가서 저녁예불을 드린다. 오래간만에 정결한 생각을 다듬고 불심을 모아 향을 사르고 촛불을 밝힌다. 흰 창호지문으로 스며드는 아련한 불빛을 받으며 부처님의 하늘 같은 미소가 다가선다.
가만히 숨 죽이고 쇳송[小鐘]을 친다.

문종성번뇌단 지혜장보리생 聞鐘聲煩惱斷 智慧長菩提生
출삼계이지옥 원성불도중생 出三界離地獄 願成佛度衆生
파지옥진언 破地獄眞言 옴 가라지아 사바하…

“이 종소리 들어 우리가슴속 삶에 어리는 온갖 매듭(번뇌) 끊고 슬기로운 길 일구어 깨달음 내게 하여, 고통많은 3계를 벗어나 지옥을 여의게 하소서. 그리하여 원컨대 부처를 중생을 건지리라, 파지옥진언 옴가라지아 사바하…”
바람에 날리는 촛불과, 저승의 길을 안내하듯 휘어지며 나부끼는 향연(香烟)이 저녁 종소리에 녹아 스미는 도량은 그냥 그대로 하얀 극락이다.
예불을 마치고 부엌에 드니, 아까 지펴둔 군불이 금새 꺼져가며 매운 연기를 가득 피워낸다. 살펴보니 밑에 잔 쏘시개나무만 다 타버리고 위의 큰 장작개비에는 불이 설붙어 이내 꺼질 판이다.
불이라는게 참 묘해서, 금방 활활 타다가도 한 순간에 꺼져버리고 만다. 예로부터 우리 삶을 역어 내려오던 일인데도 물 긷고 나무 패고 불 지펴 밥 해먹는 이 지극히 평범한 일들이 요즘에 와서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갓 입산하여 고행하던 행자 시절, 그 석달 동안에는 밥 짓느라 불도 곧잘 지피던 경험이 있는데도 이번 겨울에는 꽤 애를 먹는다.
장작 때는 일 속에서도 참 많은 길을 얻게 된다. 아무리 마른 나무라도 작은 부스러기를 충분히 모아서 밑불을 지피지 않으면 불이 금방 꺼져버리는데, 생나무개비라도 밑불만 충분하면 오히려 더 많은 열을 내며 온돌을 따뜻하게 달구어 준다.
우리 일상의 삶도 나무 때는 일과 별로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 우리의 존재를 이끌어가는 것도 육신이라는 장작을 연소하여 깨달음의 지혜, 에너지를 얻는 일일진대, 그 지혜라는 것은 그냥 생나무를 지펴서 활활 타는 것이 아니라 덕이라는 부스러기, 그 자원을 충분히 쌓아야 건강한 삶을 얻을 수 있으리라.
우리는 어쩌다 행운을 만나 일이 잘 풀릴라치면 금새 경망스럽게 허둥대면서 덕을 쌓는데 소홀해지기 쉬운데, 그러면 부스러기만 타버리고 정작 타야 할 원나무는 연기만 풀풀 피우는 꼴이 되고 만다.
자연의 이법(理法)을 역행하고 사는 현대인들, 그래서 모든 것이 물질이 풍요롭고 편안해졌어도 정작 우리 내부의 영혼은 메마르고 따라서 삶은 치열하기만 하다. 세상이 무섭고 거칠다.

타지 않은 장작개비는 다시 추스려 바람이 잘 통하게 쌓아놓고 부스러기를 몽땅 집어넣어 다시 불을 사린다. 얼마 안 지나 가마솥에서 물 끓는 소리가 솔바람을 내고 서리는 김은 밤안개 되어 태어나고 온통 소용돌이치는 물 끓는 소리가 하얀 눈밭에 퍼져간다. 뒷산 약수를 길어와 반야차 한 종지를 다려 마시며 서산스님이 옛 시를 읊조린다.
“공부하다 목 말라 차를 다려 마시려 계곡에 나아가 물을 길었더니 달빛만 가득 차관에 출렁이네.”
이렇게 고요하고 평온한 일상들에 나 홀로 편히 안주하며 바깥세상 나 몰라라 하는 데에 길들여질까 두렵다.
내일은 막힌 눈길을 뚫어 마을에까지 길이 열리게 울력을 해야겠다.
마을과 마을이 새로 열리고 시냇물이 먼 강물로 풀리듯 내 막힌 영혼도 자유롭게 출렁이도록 길을 열리라.
눈밭 어귀 어디선가 저 혼자 피어 있을 매화향기를 찾아 나서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