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구리 한 마리가 팔짝팔짝 뛰어서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원래 그 개구리는 사는 곳이 일정하지 않은 듯 가는 곳도 일정하지 않았다. 그 개구리는 높은 산에도, 바닷가에도 가 보았고, 캄캄한 밤에 들쥐의 공격을 받거나 뱀에게 쫓기기도 했다.
개구리는 신을 넘고 강을 건너 드디어 앞이 확 트인 평야에 이르렀다.
“여기야말로 내가 찾던 평화로운 곳이군…”
개구리는 평야를 내려다보면서 흡족해 하였다.
평야에는 여러 개의 우물이 있었는데, 그 곳의 개구리들은 우물 안에서만 살면서 우물물이 바닥이 드러날 만큼 말라 가고 있어도 아무도 밖으로 나올 줄을 몰랐다.
평야를 달려온 개구리는 그 중 제일 깊고 커서, 먹을 것도 많아 보이는 우물 속으로 풍덩 뛰어들었다. 마침 그 때 우물 안에서는 개구리의 왕이 심복 부하들을 데리고 장기를 두고 있었다.
“이 졸을 이렇게 움직이면 저쪽은 꼼짝도 못하겠지?”
개구리 왕이 졸 하나를 움직이면서 말했다.
“네, 네, 그러믄요. 아주 잘 하셨읍니다.”
한 부하가 고개를 끄덕거리자 다른 신하가 또 거들었다.
“임금님! 더 좋은 수가 있읍니다. 저쪽 졸을 이쪽으로 밀면 이쪽 말이 꼼짝도 못하게 됩니다.”
결국 그것은 처음부터 적수가 있을 수 없는 장기판이었다.
어쨌든 그 개구리는 그 우물 안에서 함께 살게 되었다. 그날부터 그 개구리는 동그란 하늘을 쳐다보면서 그날 일기를 관찰해서 보고했다.
“오늘은 날씨가 참 맑습니다.”
외지에서 뛰어들어온 개구리는 그날 일기를 사실대로 개구리 왕의 수석 부하에게 꼬박꼬박 보고했다. 그런데 왕의 수석 부하는 달랐다. 하루 종일 햇빛이 쨍쨍난 맑은 날씨였는데도 개구리 왕의 기분에 따라 날씨는 얼마든지 흐려질 수도 있었다.
“어허, 왜 오늘은 이렇게 몸이 무거운고? 비가 오려고 그러나?”
왕이 이렇게 얘기하면 그날 온종일 날씨가 맑아도 수석 부하는 이렇게 대답했다.
“네, 그렇습니다. 지금 하늘에서는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햇빛이 쨍쨍한 날씨가 왕 앞에서 비가 내리는 날씨로 바뀌어도, 누구 하나 나서서 그것을 바로잡을 개구리가 없었다. 만일 조금만 잘난 척을 했다가 왕에게 찍히게 되면 그 다음 날로 우물에서 추방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개구리 왕은 회의를 좋아했다. 여러 마리의 개구리들을 빙 둘러앉혀 놓고, 더러는 이웃 마을에 사는 개구리들도 초청해다가 각자 의견을 묻는 것을 취미로 삼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스산한 가을바람에 코스모스 꽃잎이 흩날려 우물 안으로 떨어져 들어왔다. 그러자 개구리 왕은 코스모스 꽃잎을 들고 회의를 시작했다.
“이게 과연 무엇인지 누구 아는 개구리 없느냐?”
그러자 패기만만한 부하가 나섰다.
“임금님, 그것은 깊은 모래 속에서 살고 있는 비단조개의 속옷입니다”
“아닙니다, 임금님. 그것은 여름 내내 이 우물에서 자란 잠자리의 날개올시다.”
“아닙니다. 그것은 이웃 우물에서 사는 금붕어의 비늘옷입니다.”
그러자 개구리 왕이 말했다.
“하여튼 이것은 참으로 귀중한 거야. 금붕어의 비늘은 금빛 찬란하니까 이건 아마 금붕어의 비늘옷일 거야.”
그 때 외지에서 들어온 개구리가 나섰다.
“임금님, 그것은 꽃잎입니다.”
“이것이 꽃잎이라고?”
“네, 그렇습니다. 코스모스라는 꽃잎이지요. 지금우물 밖에는 코스모스가 만발해 있읍니다.”
“자네 말은 그럴듯하네만, 이건 꽃잎이 아닐세.”
개구리 왕이 이렇게 말하자 한 개구리가 외지에서 들어온 개구리를 눈을 부릅뜨고 노려보고 나서 왕에 게 공손히 말했다.
“임금님, 저도 어느 날 우물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코스모스라는 걸 보았읍니다. 그러나 코스모스는 원래 꽃이 피지 않는 커다란 나무올습니다.”
“그래, 잘 봤어. 아마 그럴 거야.”
이렇게 되어 우물 안으로 떨어진 코스모스 꽃잎은 개구리들에 의해 금붕어가 달고 다니다 내버린 비늘로 바뀌고 말았다.
불교 언론이 사회적 통념으로서의 언론과는 같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경영과 제작의 기본적인 규범은 조금이라도 지켜져야 불교 언론이 활성화되리라 본다. 이와 같은 문제들은 불교의 영세성과 함께 전문 인력 부재라는 요인에서, 다시 말해 제직에 재질있는 사람은 불교를 잘 모르고 불교를 잘 아는 사람은 제작에 재질이 없다는 요인에서 파생된 것이라고 본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점을 잘 알면서도 언제까지나 마냥 앉아서 바라볼 수만은 없다.
이제부터라도 불교 언론에 종사하는 모든 사람들이 무거운 사명 의식을 갖고, 문제들을 하나하나 해결해 나가면서 참다운 불교 언론을 꽃피우는 데 전력 투구해야 하리라고 본다. 어쩌면 이것이 지금 우리, 불교 언론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이 안고 있는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