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일회보는 정법(正法)을 구현하고 선사상(禪思想)을 고취하며 불교의 생활화를 위하여 발간하고 있읍니다.”
이것은 35호를 내면서부터 밝힌 불일회보의 사시(社是)니, 과연 법보의 틀이 차츰차츰 잡혀가며 궤도에 오르게 되었다.
그러다가, 42호부터는, 해인사에서 펴내는 월간 해인을 창간하여 2년 동안 편집장 일을 보던 현장(玄藏)스님이 주간으로 오면서 불일회보는 다시 지면을 쇄신하게 되었다. 활판에서 사진식자로 바꾸어 지면이 산뜻해진 것도 중요한 형식의 변화였으며, 특히 법정스님의 고정란인 ‘이달의 강론’이 신설된 점은 의의가 깊었다.
법정스님의 글은 이 시대의 한 용운 스님의 몫을 하며, 부처님의 말씀을 육성으로 듣듯이 굴절없이 들려주는 법문이라하여 독자의 큰 호응을 받았다. 그러던 법정스님의 글이 한동안 ‘불일탑’으로 바뀌어 실리다가 48호에서 그치자 독자들의 반응은 퍽 민감하였다. 특히 젊은 층에서 법정스님의 글이 빠진 불일회보에 대한 아쉬움을 많이 역설해 왔다.
그러나 불일회보는, 본사의 주지스님이 지적한 대로, “어느 특정한 사찰만을 위주로 하여 편향 편집되어서는 안 되며, 폭넓게 불교계에 지식과 정보를 알려 주는 언론 매체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방침에 따라 독자의 그런 반응을 무조건 받아들일 수만은 없다. 사실, 43호부터는 유가(有價) 회원을 모집하여 실질적으로 독자로부터 구독료를 받으면서도, 아직도 창간 초기의 송광사 후원회 기관지라는 인상을 씻지 못한 점은 깊이 반성해야 할 일이다.
이에, 그동안 지나치게 학술논문 연재 위주로 편집을 해온 점이나 지면에 퍽 인색한점 등에 대해 지적해 온 독자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한편 지난 몇달 동안 필자가 이 회보의 편집 일을 맡아 오면서 느낀 문제점에 대해 이모저모를 밝힘으로써, 불일회보의 앞으로의 발전을 기대해 보려 한다.
불일회보에는 고정란을 맡아 계속 글을 써오는 든든한 필진이 몇 분 있다. 그러나 그런 글들이 대체로 독자의 독서 욕구를 채워 주기보다는 필자 자신의 발표 욕구만을 풀어 놓는 듯한 면이 더 두드러지는 것에 대해 난색을 표할 수밖에 없다.
좁은 지면에 다양한 구색을 갖춘 기사를 실으면서도 깊이있는 내용을 갖추자면, 글을 보는 안목과 편집에 뛰어난 편집인과 주간이 부지런히 좋은 필진을 찾아나서며 자신의 역량을 소신껏 밀고 나가야 할 줄 믿는다. 충실한 법보는 ‘창간 당시의 기관지 이념이 지켜져야 한다’는 보수성 강한 발행인이나 편집위원들의 지침만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다. 후일 밝힌 불일회보의 사시(社是)대로 보편성이 깔린 범불교적 포교지이기를 바라는 독자들의 요구를, 기관지의 성격을 살리면서 절충할 수밖에 없는 고충이 따른다.
독자의 반응도 다양하다. 사찰 법보로서 계속 불일회 기관지의 성격을 살려 나가기를 원하는 30대 여성 독자가 있는가 하면, 고정된 필자 위주의 글에서 탈피하여 불자와 비불자의 구별없이 신선한 원고를 실어야 한다는 비구 스님의 지적도 있다. 뉴스를 다루는 기사 면에도 대담하게 지면을 할애해야 한다는 소리도 높다. 올해 여름에 일어난 광주 원각사 사태는 불자로서 당연히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인데도, 송광사 소임자의 무책임한 무관심을 불일회보는 그저 미온적 태도로 방관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독자의 비판이 아니더라도, 송광사의 불사(佛事)에 맞춰 일률적으로 세워지는 편집 계획에서 탈피하여 장기적인 계획을 세울 필요가 있다. 또, 승단이나 승가의 잘못을 지적하고 비평하는 글이 어떤 정당성을 가졌는가를 검토하기도 전에, 무조건적인 보호본능으로 몸을 움츠리는 피해의식은 이제 버려야 한다. 수행 외적인 면에 치우친, 깡마른 지식 위주의 편집을 수행과 실참(實參)으로 보완해 가며 법보의 의미를 정립해 가야 하겠다.
이제 불일회보는 송광사뿐만 아니라 불교계 전체의 관심을 두루 대변하는 법보이고자 한다. 불교 기초 교리, 교양, 취미 등을 고루 다루어가며 의욕적인 편집 기획으로 충실한 법보를 꾸며가도록 하겠다.
“편집인의 재량과 독립성이 어느 정도 주어졌는가에 따라 법보의 수준은 결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