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문사승가대학.
이 곳에서 학인들을 가르치는 강주소임과 주지직을 맡고 계시는 분이 명성스님이다.
시자스님의 안내로 스님의 방에 드니, 때 아닌 때에 꽃을 피운 선인장이 주홍빛으로 다소곳이 앉아 있고, 풍란과 수석은 침묵으로 방문객을 맞아 주었다.
스님께 요즈음은 어떻게 지내시느냐고 말문을 여니,
“이제 불사도 거의 끝나고 지금은 방학 중이라 한가하게 보내고 있어요. 때로 난초와도 만나고, 주로 붓글씨를 많이 써요. 저녁에는 입선에 들어 조용히 생각하는 시간도 갖지요.”
벽에 걸려 있는 단아한 글씨는 스님의 정갈하고 자상한 평소 일상사를 무언으로 멸해주고 있는 듯했다.
모처럼 맞은 한가함이라고 하셨지만 스님은 곧 있을 졸업식과 입학식, 불사 뒤의 봄단장을 계획하시느라 여념이 없으셨다.
스님은 지난 칠십 년 운문사에 들어오셔서 강의를 시작한 이래, 칠십 육 년부터는 주지직을 맡아 교육환경의 정비라는 차원에서 불사를 시작했다. 주위에서는 강의만 하던 사람이 불사를 어찌하겠느냐고 걱정했다지만 이제 불사가 거의 다 이루어지고 보니 모두들 놀란다고 한다.
건물 하나하나마다 스님이 손수 설계 구상을 하셨다고 하는데 실용적인 측면은 물론이고 미적감각 또한 뛰어나 그저 감탄스럽기만 하다. 그 모두가 학인들이 공부하는 데 조금도 불편함이 없게 배려하신 스님의 넓으면서도 세심한 성품의 덕택이리라. 틀리고 비뚤어진 것이 있으면 기어이 고쳐 바르게 하시는 스님의 강한 집념이 오늘의 운문승가대학으로 변모케 한 것이다.
이제 웬만한 것은 두루 갖춘 셈이어서 교육 환경이 나빠 공부 못하겠다는 불평은 자신의 게으름을 탓해야 옳을 것이다. 말하자면 승려종합대학으로서 어디에 내 놔도 손색이 없을 만큼 주위의 돌멩이 하나, 풀 한 포기에도 정성을 기울인 흔적이야말로 보는 이를 숙연케 한다.
스님은 스물셋의 꽃다운 나이에 출가했다. 국민학교 다닐 때부터 성현집을 탐독하면서 책 속에 나오는 그런 인물이 되고 싶었단다. 원래 집안이 불교와 인연이 가까워 불교서적과도 접할 기회가 많았는데, 「반야심경해설집」을 읽은 것이 발심의 직접적인 동기가 되었다. 당시 유일하게 비구니 선방이 개설된 ‘해인사 국일암에서 선행(善行)스님을 은사로 모시고 득도하였다.
“행자 시절이 참 좋았어요. 지금 마음이 공양주 살 때의 그 순수한 신심을 못 따라 갈 것 같아요. 처음 발심한 그 마음으로 초지일관(初志一貫)한다면 누가 무슨 일인들 못 이루겠어요. 절집에 들어온 지도 삼십여 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공양주 때의 그 시절 그 마음으로 되돌아가고 싶을 때가 많아요.”
스님은 공양주 살이를 출가자의 근본 수행이라고 강조한다. 모든 것을 감수해야 하고 인욕을 닦아야 하는 행자 시절을 못내 그리워함은 발심했을 때의 그 순수하고 깨끗한 마음을 끝까지 간직하기가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요즈음 하나의 행사처럼 대강 마쳐 버리는 행자 공부를 못마땅해 하신다. 물질의 풍요가 오히려 정신의 빈곤을 부추기는 현실이고 보면, 그 옛날 서릿발 같은 계율 밑에서 수행했던 큰스님들께서 계율정신을 강조함은 다시 한번 새겨들을 말씀이다.
그동안 공부하면서 기억에 남는 이야기를 들려 달라고 하니, 역시 행자 시절의 이야기라고 하시면서 한 토막 해 주셨다.
“국일암에서 공양주를 살 때는 6·25사변 직후였어요. 무장공비들이 주위 산 속에 많이 주둔해 있었는데, 그런 빗발치는 총알 소리를 들으며 팔만대장경 기도를 드렸어요. 그때는 총알이 날아와도 마음이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어요. 치던 목탁을 멈추지 않고 ‘공부하는 앞길이 열리게 해 주십시오’하고 정성껏 기도를 올렸지요. 그랬더니 정말 공부길이 열려 진주 미륵사에서 또 공양주 살이를 하며한 철을 보냈던 기억이 있어요.”
절구에다 쌀 껍질을 벗겨 청솔가지 지펴 대중의 공양을 짓던 시절의 이야기는 계속됐다.
“당시만 해도 부뚜막이 흙으로 되어 있었어요. 일이 끝나고 나면 흙을 물에 풀어서 빗자루로 깨끗이 쓸어 언제든지 새로 만든 것처럼 했어요. 바닥에 밥풀 하나만 떨어져도 그것을 씻어 먹었어요. ‘쌀 하나가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농부들이 피땀을 흘렸을까’하는 알뜰한 생각, 순수한 마음이 앞섰던 거지요. 누구나 승려가 되려면 반드시 이런 과정을 통해 마음 단련을 쌓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모든 것이 너무 흔해서 귀한 것이 드물고 그래서 본래의 가치를 잃어가는 게 요즈음 현실이다. 밥풀 하나쯤이 무슨 대수일까. 왜 거듭거듭 행자 시절의 깨끗하고 엄격했던 계율정신을 강조하시는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스님은 그동안 비구니 승려들의 교육에 많은 관심과 노력을 기울이며 외길을 걸으셨다. 출가 전에도 교육에 종사했던 것을 보면 교육과는 어지간히 인연이 깊은가 보다. 출가하여 전라도 선암사에서 대교과를 마치고 전강(傳講)을 받은 후, 줄곧 가르치는 일을 한번도 쉬지 않았다. 어떤 일을 시작하여 중단됨이 없이 한 길을 걷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이는 처음 발심한 마음과 마지막 마무리를 지을 그 순간의 마음이 일관되어야 한다는 스님의 신념에 찬고집이 담겨 있는지도 모른다.
굳이 열거하지 않더라도 지금까지 승려교육의 필요성과 문제점은 수없이 거론되어 왔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현대사회에 적응하여 새로운 승려상을 정립하기란 그리 쉽지 않다. 그렇지만 누군가 해 내야 하고, 꼭 이루어야 하는 게 교육이다.
이야기를 돌려 교육문제 운운하는 질문에 대뜸 “교육이란 게 딴 게 아니겠지요. 우리 생활을 바로 하는 것이지요. 즉사이진(卽事以眞), 즉 모든 일에 입각해서 참다워야 된다는 게 나의 교육관이랄까 교육방침이에요. 그 한 마디 외에 다른 말을 붙이면 사족에 불과해요. 그래서 학인들에게도 크고 작은 모든 일에 진실한 마음으로 살라고 가르치며, 그것이 바로 부처님의 뜻임을 주지시키지요” 하시며 잘라 말씀하신다.
스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 우리가 딛고 있는 그 자리에서 진실되게 산다면 그것이 바로 성불이 아닐까 히는 확신이 생긴다. 흔히 우리는 성불이니 해탈이니 하면서 어쩌면 저 높은 벼랑 위의 꽃을 꺾겠다고 몸부림만 치는 것이 아닐까 진리란 멀리 있는 게 아닐 것이다. 낮고 더러운 진흙 속에서 연꽃이 피듯이.
승려교육에 있어서 구태의연한 한문경전만으로 배우기엔 부족하다는 게 스님의 지적이다. 물론 골자적인 핵심은 불교 원전에 입각해야겠지만, 한 걸음 더 나아가 일반 사회과학·철학·심리학 특히 어린 싹들에게 불교를 심어주기 위해서는 아동심리학 등 다양한 분야를 섭렵해야 하는 게 현재의 실정이라고 하신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비구니들이 여성인 이점을 살려 외국어·꽃꽂이·다도·요가·피아노 등도 교과목으로 배우고 있다니 바람직한 일로 여겨진다.
이제 교육 환경도 어지간히 정비가 되었으니 앞으로 좀 더 다양한 교재개편 계획을 세워야겠다는 스님은 비구니 승려들의 자질향상에 남다른 안목과 심혈을 기울이고 계심을 엿볼 수 있었다.
“교육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점은 강당에서 교육을 받았으면 교육을 받은 만큼 다른 사람에게 혜택을 줄 수 있어야 해요.
부처님의 올바른 사자로서 그 역할을 다할 때 비로소 부처님의 가르침이 널리 유통되는 게 아니겠어요. 또 현실과 이상의 차이에서 오는 좌절감이나 괴리는 긍지를 갖는 교육을 시킴으로서 극복될 수 있다고 봐요. 승려가 된다는 것이 왕이 되는 것보다 더 우월하다는 인식을 심어야 해요. 그런 자부심을 갖는 교육이 필요한 거지요.”
스님은 요즈음 출가자들이 고졸 이상 대졸 학력 출신도 많아 교육만 잘 받아 실천한다면 불교의 앞날이 결코 어둡지만은 않다고 희망적인 말씀을 하신다. 보다 낳은 불교, 보다 새로운 불교를 위해서는 인재양성이 시급함을 교육일선에서 누구보다도 절실히 느끼시는 스님이기에 오늘도 올바른 승려교육의 정립에 여념이 없으신 것이다.
스님이 강원에서 학인들에게 평소 강조하시는 말씀을 들려 달라고 했더니 원훈(院訓)에 있는 뜻이 곧 그것이라며 자상하게 일러주셨다.
“첫째는 입지발원(立志發願)이에요. 투철한 원력을 세워야 해요. 만약 원이 없다면 씨앗을 심지 않고 꽃이 피기를 기다리는 것과 같지요. 둘째로는 정진불퇴(精進不退)지요. 뜻을 세운 연후엔 물러서지 않겠다는 정신으로 정진을 해야지요. 용맹스럽고 부단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계획이라도 이룰 수 없지 않겠어요. 셋째는 유통교해(流通敎海)에요. 노력의 댓가로 얻은 수확은 널리 유포되어야 해요. 부처님의 교법이 법륜 굴리듯 만세무궁토록 전해질 때 비로소 교육이 완성된다고 생각해요.”
학인 스님들에게 물건 하나라도 바르게 놓으라고 가르치는 스님은 참답게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것이 곧 교육이라고 거듭 강조하시며 마지막으로 평소 즐겨 새기는 게송을 들려 주셨다.
나에게 포대 하나가 있으니
허공처럼 아무 걸림이 없구나
펼쳐 놓으면 온 우주가 그 속에
가득하고
들어 갈 때는 모든 것을 포용해서
받아 들인다.
我有一布袋 虛空無罫碍
展開遍十方 入時觀自在
이야기를 마치고 학인들의 생활상을 한눈에 알 수 있는 슬라이드를 보여 주시며 자연에 왔으니 자연을 보고 자연의 법문을 배워가라고 하시며 맑게 웃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