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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의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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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비의 소리 - 편집실 1987년 12월 70호
12월 16일은 제 5공화국 8대 대통령 선거일이다. 이는 16년만의 일로 실로 감개가 깊다. 그런데 선거는 민주주의 나라에서 가장 신성한 행위이기도 하지만 또 가장 추악한 일면도 갖고 있다.
지금 민주화와 선거의 열풍 속에서 불교계는 부정적인 모습을 드러내보이고 있다. 초연한 자세까지는 아니더라도 가만히만 있어도 좋겠다는 심정이다. 호국불교라는 망령이 되살아나지를 않나 독재 타도, 민주화의 부르짖음이 특정 후보의 지지 성명으로 바뀌지를 않나, 불교의 본분에서 벗어난 사태가 속출하고 있다. 서로 입장과 시각을 달리한 채, 선거를 앞둔 불교 내부의 갈등은 좌-우의 대립만큼이나 극단화되고 심지어 폭력으로까지 발전하고 있다.
새삼스럽게 종교와 정치의 분리라든지 정치 권력에 대한 중립적인 태도의 고수라는 원칙만을 내세우자는 것은 아니다. 또 그런 원칙만을 강요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중립이란 태도는 무관심이나 방조자의 역할로 끝나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도 종교집단으로서의 불교는 중립성이 유지되어야 한다. 물론 승려나 신자가 개인으로서 자유로이 의견 표시를 하거나 특정한 후보를 지지하는 것은 존중되어야 한다. 다만 단체로서의 정치 참여는 신중하게 고려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대통령 선거는 돈과 권력에 의한 부정과 부패로 점철되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러나 이와 같은 제도와 권력에 의한 폭력은 그것을 용인하고 선택한 유권자 자신의 정치 수준의 반영이기도 하다. 역대의 선거 경향은 여촌야도(與村野都)로 흘러 왔는데 7대 선거에서부터는 지방색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더니 이번에는 종교 선거의 성격까지 띠게 되었다.
여촌야도의 경향은 농촌의 보수적인 성향이나 권위에 승복하는 태도에서 비되었다. 그러나 7대 대통령 선거에서부터 드러나기 시작한 지방색은 물론 향토애의 발로라거나 지역 특성으로서의 긍정적인 면도 있겠지만 그것이 지역 감정으로까지 발전한 것은 유감이다.
인간은 출신 지역이나 성분에 의해서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말과 행위에 의해서 평가되어야 한다. 지역 감정을 부채질하는 후보도 또 그에 따라 흥분하는 지역 주민도 모두가 자제할 필요가 있다. 지역 사이에 있는 편견이나 갈등은 증오로가 아니라 이해와 관용으로 해소해야 할 문제이다.
지방색과 함께 또 우리가 지나치게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것이 후보자의 종교이다. 공교롭게도 이번 후보자들은 종교가 다 다르다. 민정당의 노 태우 후보는 무종교에 가까운 불교 신도이고, 민주당의 김 영삼 후보는 기독교이고, 평민당의 김 대중 후보는 캐톨릭이며, 공화당의 김 종필 후보는 통일교로부터의 자금 염출설까지 나돌고 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은 종교 지도자도 아니고 종파의 대표자도 아니다. 국민을 공평하게 다스릴 직인으로서의 대통령이다. 자신이 믿는 종교라고 편애하거나 다른 종교라고 부당하게 대우할 권리도 의무도 없는, 공인으로서의 대통령인 것이다. 이를테면 노 태우 후보가 불교 신자냐 아니냐 하는 것은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니다. 불교 신자가 대통령이 된다고 해서 불교가 이익을 볼 것이라든지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불교가 망할 것이라는 생각은 착각이다.
우리는 그 모든 편견에서 벗어나서 대통령의 직을 충실히 수행할 수 있는 사람을 자유롭게 판단하여 선택해야 할 것이다. 후보자의 출신 지역이나 종교와 같은 일차적인 관계보다는 정당의 정강이나 그 정책의 수행 능력을 따져서 판단해야 할 것이다. 또한 우리는 정치적 권력에 의해 불교가 어떻게 된다는 환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런데, 총무원의 공식적인 태도는 아니지만, 여당인 민정당의 노 태우 후보를 위한 대규모 법회의 계획이나 일부 사찰의 기도법회는, 그것이 불교 내의 보수적인 사고의 소산이든 정치 권력의 강요이든 간에, 자신들의 무지나 나약한 모습을 드러낸 것에 불과하다. 또 민주당의 김 영삼 후보가 벌이는 기도회나 공식석상에서 취하는 기독교에 대한 태도 역시 보기좋은 모습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진보적이고 새로운 불교 운동을 대변하는 민중불교 단체에서 평민당의 김 대중 후보를 지지하는 공식적인 성명을 발표한 것을 위시하여 특정 후보의 선거운동을 위한 단체라는 느낌을 준 것도, 민주화를 위해서나 새로운 불교운동을 위해서나,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옥석을 가릴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 무지나 낳는 병폐는 악덕이 낳는 병폐보다 더 클 수가 있다. 대개 어떤 상황이나 문제에 부딪쳤을 때에 그것을 해결하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다. 결국은 같은 결론에 도달하였더라도 그 이유나 근거는 방법마다 다를 수 있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개인의 의견을 존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미 합의된 결론이나 선택한 결과에 대해서 책임지는 것도 중요함을 알아야 한다.
현명한 선택을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