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재산관리법으로 인한 피해
1962년 ‘국가재건최고회의’에서 법률 제 1087호 전3장 19조 부칙으로 제정-공포된 ‘불재법’은 당시 비구승과 대처승 간의 분쟁이 갈수록 심화되어감과 동시에 경내지 안에서의 요식 및 위락 영업 행위 등으로 불교의 재산이 황폐화되어 가는 때에 제정되었기에 불교계 일각에서 크게 환영을 받았다. 또한 총무원장이나 주지의 권한을 법률적으로 보장해 줌으로써 비구승에 의해 조직된 대한불교 조계종이 자리잡아 가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하였음은 사실이다. 그러나 비구와 대처의 단일종단의 의지가 태고종의 인정으로 말미암아 사실상 무의미하게 된 상황에서, 법(法)만이 남아 불교를 억압하는 요인으로 작용하였음을 간과할 수 없다.
모든 불교 단체의 등록을 의무화하고(불재법 6조), 불교 단체 대표자의 취임 등록을 강제하며(9조), 불교재산 처분은 허가 및 신고(14조, 15조)토록 한다는 등 임원 선출과 재산 관리를 일일이 통제하였던 불재법은 벌칙사항까지 두어 승려를 일반 잡범으로 취급하기까지 하였다. 특히 부칙 3조의 “문교부장관*은 불교단체가 법령에 위반하거나 분규로 인하여 본 법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고 인정할 때에는 본법 제 9조 1항의 규정에도 불구하고 당해 불교단체의 재산관리인을 임명할 수있다”는 조항은 사유재산권을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위헌적인 것일 뿐 아니라, 당국의 부당하고 지나친 간섭과 개입의 극대치였다. 그로 말미암아 사찰이 해당 관청의 눈치를 보게 되었고, 또한 관과의 밀착 관계가 심화되었으니, 이것은 불교내의 분규를 조장하는 한 요인이기도 하였다.
1970년에 광주의 증심사에서 사찰재산처분권을 둘러싸고 문제가 발생하여 신임 주지가 그 수습을 위해 노력하고 있던 차에, 문공부가 사전 통보 하나없이 일방적으로 전남 광주시장을 증심사의 재산관리인보로 임명함으로써 불교계의 강한 반발을 산 적이 있다. 이러한 부당한 간섭의 사례는 가깝게는 1983년 신흥사가 ‘주지 싸움’으로 말미암아 재산관리 및 제반 실권이 속초시로 넘어갔던 예도 있다.
그밖에도 불재법에 의한 피해를 열거하자면 수없이 많지만, 무엇보다도, 18개나 되는 불교종단을 낳게 한 원인임을 지나칠 수 없다. 하나의 종파가 성립되려면 종지와 종통, 소의경전 등 그 종교 나름대로의 특성을 기준으로 하여 인정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재산 상태와 등록 여부를 기준으로 하여 행정편위주의적 처리에 의해 만들어진 일부 군소 종단이 불교 전반의 인상에 큰 손상을 끼치고 있는 실정이다.
불재법이 폐지되고 설사 제약 요인이 완전히 사라진다 해도(그럴 리도 없지만), 지금으로서는 이법을 근인(根因)으로 하여 왜곡되어 온 불교 현상을 개선하려면 너무나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더러는 아예 회복이 불가능한 점도 있다. 결국 불재법은 그 명분도 퇴색해 버렸고 실효성이 상실된 법률로서 다만 불교를 왜곡시켜온 공로밖에 없는 악법이었다.
‘전통사찰보존법’의 입법이 있기까지
불교관계법령 중 최고의 악법인 불재법의 존재 가치에 대한 문제 제기는 70년대 이후 간간이 거론되었으나 본격적으로 문제화되고 토론되지는 못하였다. 그러다, 80년대에 와서야 80년, 81년에 개정시안이 만들어지게 되었는데, 이 또한 조직적이고 지속적으로 진행되지 못하였으며, 오히려 83년에는 ‘관계당국의 자료제출명령권 및 검사권’ 신설과 벌칙을 대폭 강화하는 것 등을 내용으로 하는 불재법 개악이 시도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다 본격적으로 불재법의 모순을 지적하면서 다른 관계법령과 함께 폐지를 주장하고 나선 것이 86년의 ‘9.7 해인사승려대회’ 였는데, 이 승려대회의 정신을 계승하면서 발족한 불교관계악법철폐운동 공동대책위원회는 불교관계법의 개정안 및 불재법 폐지에 따른 대안(미숙하다는 지적도 있다)까지 제시하면서, 100만인 서명 운동을 펼치는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으나, 주최자들의 구속과 수배로 지속되지 못하였다. 같은 시기에 총무원에서도 불재법의 폐지를 논의하지 않을 수 없었으니, 종회의원의 절대 다수가 개정쪽으로 기울어 결국 개정안을 문공부에 건의하게 되었다.
이렇듯 불재법에 대한 여론이 분분하자 관계당국은 대폭 개정을 약속하지 않을 수 없었고, 각종단에 의견을 물었으나 뚜렷한 진전이 없자 87년 6월 5일에 ‘불교재산보존법’ (문공부공고 제659호)이라는 명칭으로 입법 예고를 하였다. 개정의 주요 골자는 다음과 같다.
가. 개정의 취지가 재산관리에서 전통 사찰의 재산보존 위주로 전환함에 따라 ‘불교재산보존법’으로 개칭함
나. 등록 대상인 불교단체를 축소하여 건립 ·축조된 지 50년 이상 경과된, 역사적 가치가 있는 사찰로서 대통령이 정하는 사찰과 이러한 사찰을 두개 시·도 이상 관장하고 있는 종단에 한함(제3조)
다. 불교단체의 대표자를 종전의 등록제에서 신고제로 함(제 4조)
라. 사찰의 재산 변동시 허가를 받아야 할 범위를 축소하여 경내 건물 또는 경내지의 사용을 폐지하거나, 불교 단체의 재산을 대여, 양도 또는 담보시에 한함(제 6조)
마. 재산증감 신고, 수입지출예산서 제출, 재산목록 제출 등 불교단체의 의무조항삭제(제14조)
바. 벌칙을 완화하여 체형을 삭제하고 벌금형은 존속시키며 일부는 과태료로 함(제17조~제l9조)
개정언어 공고되자, 조계종을 제외한 기타 종단들이 종단의 정의 및 등록 조항 등에 크게 반발하여 수정을 의뢰하였고, 그에 문공부는 다시 개정안을 내놓았으나 그전까지 불재법 폐지 문제에 대해 일언반구도 없던 각 종단들이 ‘폐지’를 건의하고 나섰다. 그리하여 당국에서는 폐지를 기본으로 하되 ‘전통사찰보존법’으로 대치하겠다는 것이다.
어찌되었든 불재법은 폐지될 것이다. 불자들의 강력한 폐지 주장에 의해서건 정부와 여당의 선심공세건 간에, 정기국회의 마지막 날인 11월 11일 이전에 그 법 자체는 없어진다. 각 종단에서는 ‘전통사찰보존법’이 제정되고 시행령이 작성될 때는 그 입안 과정에 종단의 간부 스님, 불교학자 문화재 전문위원과 같은 전문가들이 참여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이 ‘전통사찰보존법’이 앞서 예고한 ‘불교재산보존법’을 크게 벗어날지는 의문이다. 그것은 당국이 과연 불교의 자율적 운영을 보장해 주겠느냐는 우려에서보다는, 불교 종단 자체가 완전한 자율권에 불안해하고 있기 때문에 갖는 의문이다.
법인의 설립
재산관리나 처분에서 자율권이 주어지는 것을 꺼리는 것은 중앙종회에서 개정안을 결정했던 것이나, 아직도 일부 스님들께서 불재법이 불교를 지켜주는 법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원로, 중진 스님들께서도, 불재법이 불교를 지켜주고 있다고까지는 하지 않아도, 존속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계신다. 그 까닭은 간단하다. 재산처분권이 주어진다면 불교재산은 남아나지 않을 것이라는 말씀이다. 불재법으로 묶인 상황에서도 법을 교묘하게 이용하여 부처님의 재산을 팔아먹는데 그것이 없을 경우를 생각해 보라는 것이다. 전문가라고 하는 사람들도 이러한 의견에 수긍을 한다.
이에 대해 불교관계악법철폐운동 공동대책위에서 나온 폐지에 따른 대안을 보면, “폐지 후 민법을 비롯한 다른 법령에 의해 모든 법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며, 불교단체를 중심으로 하는 인적-물적 결합의 법률 관계는 주로 민법상의 법인 제도를 바탕으로 해결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그밖의 사찰이나 불교단체의 재산 관리와 인사 행정은 종헌과 종법에 따라 이루어지면 될 것이다.
그러나 법인의 설립은 생각만큼 쉬운 것은 아니다. 현재 사찰별로 소유되어 있는 재산(私有)은 불재법에 묶여 재산 처분을 하려면 총무원의 승인과 문공부를 거치도록 되어 있는데, 법인을 설립하여 등기를 이전하려면 등기 이전 비용이 엄청나서 현재로서는 불교의 처지에 비추어 어렵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법인을 설립하지 않은 상태에서 불재법 없이도 불교정재의 유실을 막을 길을 꾀하여야 한다. 물론 재산 소유가 사찰 단위로 되어 있어도 종헌과 종법에 그것의 제한 조항을 둘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 또한 불가능한 것이 실제로 총무원은 명분상 불교를 대표하고는 있으나 신뢰감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서로 ‘작당’을 하여 종헌과 종법을 마음대로 개정하고서는 언제 재산을 자신들의 이권과 연관지을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법인 설립의 문제만해도 등기 이전 비용이 아무리 많이 든다손 치더라도 그것이 정녕 불교의 발전에 필요한 일이라면 추진 못할 것도 없다.
결국 문제는, 불교 발전이라는 대전제 속에서, 그것을 실천하려는 의지의 부족과 불신감밖에 사지 못하는 불교계의 자세일 것이다.
진정한 의미의 문화재 보호란?
불재법의 완전 철폐를 가로막는 불교 내적인 요인은,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우선은 불교계에 팽배해 있는 불신감을 들 수 있고 또 그로 말미암아 법의 보호에 의지하면 적어도 재산의 유실은 억제할 수 있다는 사고방식을 지적할 수 있다. 종교단체, 그것도 세속적인 기득권을 버리고 출가한 승려에 대한 불신은 곧 삼보가 흔들리고 있음을 대변하며, 이는 불재법의 폐지를 통하여 종교의 자유를 획득하는 일만큼이나 시급한 우리의 과제이다.
불재법의 제정이 불교 재산의 유실을 막는 데에 어느 정도 기여하였음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에 따른 부작용이 어떠했는가? 타종교의 확장에 견주어 불교는 정체 현상이 두드러지고 그 생명의 빛을 잃어가고’ 있다. 몇십년 동안유지에만 그친 것을 두고 안도의 한숨만 쉬고 있음은 한치 앞밖에 보지 못하는 근시안적인 사고가 아닐 수 없다.
불재법의 폐지를 힘들게 하는 불교 외적인 요인들은 또 어떠한가? 불자들이 흔히 현혹되기 쉬운 말이 “불교는 불자들의 유산일 뿐 아니라 우리 조싱들의 유산으로서 국민모두가 보호해야 한다’는 그럴듯한 명분이다. 이 말은 불재법 제정 당시나 ‘전통사찰보존법’이 들먹여지는 현재나 변함없이 일관된 말이다. 일견 타당성이 있으며 부정할 수만도 없는 일면이 있다. 그러나 그 배후에는 박물관의 유물을 떠올리는 그릇된 사고가 바탕을 이루고 있다. 그대로 가만히 있어 주어야반 빛을 발하는 구경거리로서, 휴식처로서 그 보존의 가치를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사찰은 아무리 고찰이라 하여도 결코 민속촌은 아닌 것이다. 그것은 왜냐하면 그 속에서 실제로 지속적인 신앙 활동을 전개해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 지방의 큰 사찰은 수행의 도장으로서의 성격을 잃어버린 채 다만 문화재로서 그 큰 덩지를 유지하기 위해 몇몇 스님만이 관리인의 역할을 하느라 바쁜 지경에 있는 것이 보통이다.
사회는 변화하고 사람들의 생활 모습과 문화도 달라지기 마련이다. 그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리고 후세는 또 그 변모한 모습을 보면서 조상의 얼과 역사를 계승하게 되는 것이다. 불교인들은 스스로 그리고 타의 힘으로 흘러가는 물을 굳이 막기에 현실적이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전통사찰보존법’이 어떻게 성안될지 모르겠다. 그러나 지금까지 지적한 사고가 그 바탕에 깔린 상태로서의 입법안이 전과 두드러진 차이를 과연 보일지에 대해서는 사뭇 의문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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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는 문교부 소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