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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동의 시월 - 한 대통령후보가 불교신자라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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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사자의 소리 - 김철규 1987년 11월 69호
하늘은 웬일로 저렇게 푸르른가! 한국의 시월 하늘은 문자 다루는 자 누구라도 몇 마디 중얼댈 만하다. 그 가을 어느 날, 평소 자주 찾아가던 어느 절을 찾아갔다. 바람이 너무 좋아서인듯 마당에 자리 펴고 앉은 어느 스님의 독경에 귀 던지며 불도의 신자들이 둘러앉아 있었다. 이윽고 스님은 그들을 향해 설법을 시작하고 나는 그런 저런 사람들 가운데서 말씀에 빠지게 되었다. 자연은 완벽한 기계이고 그 안에 있는 인간들은 말씀 속에 조용하다. 그런데 이게 무슨 소리인가? 스님의 설법중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불교신자가 대통령이 되어야 불교가 잘될 수 있다”며 한 정당의 대통령후보를 드러내 놓고 지지하는 것이 아닌가. 이 청년 불자는 가슴속에 쿵 하는 소리가 남을 느끼며 그 맑던 하늘이 단박에 노랗고 검게 보이지 않았겠는가. 스믈스믈 그 자리를 기어 나올 수밖에 없었다.
불자들 가운데 그런 사람들이 있다는 말을 안개 속의 뜬 소문같이 들은 적은 있으나 이렇게 내가 직접 겪게 되다니, 그 길로 일주문으로 내쳐나온 나의 가슴은 무거운 체증에 걸린 듯 답답했다. 스트레스를 풀지 못하면 병이 되고 울화병은 실어증이란 중상을 가져온다는데, 어디에다 한마디 해야겠다 싶다가, 스님들이 직접 만드신다는 해인지의 지면을 빌어 억장을 풀고자 한다.
유월, 우리는 용감했다. 이 나라의 국적을 가진자의 사명을 했다싶다. 자찬할 만큼 잘 싸웠다. 제철도 모르고 천방지축 피어난 꽃들도 노랗고 전경들이 뿌려준 최류탄가스도 노랗고… 세상은 노랗게 노랗게 채색되어도, 우리는 거리에서 민주를 소리쳤고 용팔이 스타일의 사복들과도 잘 싸웠고 그러다 연행되어서도 잘 싸웠다. 학생들이 선두를 이룬 행렬은 가득 모인 시민들로 열을 이어갔고 스님들의 행진은 상황을 더욱 비장하게 다졌다. 이에 놀란 정권 담당자들은 빛좋은 개살구 같은 ‘6.29선언’을 내놓기에 이르렀다.
그런 지 4개월 뒤, 8개항의 약속은 공수표로 남아 있다. 선언의 약속이 얼마만큼 이루어졌는지 명확하다. 정권쟁탈전의 양상이 직선제 식으로 바뀐 것 외에 무엇도 실천된 바 없다. 구속된 사람들은 아직도 어두운 감방에 묻혀 있고 월간지는 인쇄 끝판에 중단되었다. 생계보장의 주장은 최류탄의 안개 속에 호도되었고 그 무진 안개틈으로 노동자 이석규는 파편에 죽어갔다.
9월 5일, 공개된 국무회의는 노동자 탄압의 오도된 구실을 위해 재벌의 단체인 전경련의 전무 조 규하를 출석시켰으며, 그 자리에서 조 규하는 악의에 찬 허위 보고를 했다. 구시대의 악랄한 행위는 감쪽같이 숨겨졌고, 그 대신 노동자들이 임직원을 묶고 토끼뜀을 시켰다든지 사장을 드럼통에 넣고 굴렸다든지 또 옷을 벗기는 인간적 모욕을 주었다는 식의 이야기가 만들어졌다. 이것이 6.29선언의 실상이다. 이 선언의 환상에 젖은 자는 깨어나야 한다.

불교 신자라는 그 후보의 실상은 어떠한가? 그는 79년 12.12 쿠테타 다음날에 수도경비사령관의 자리에 앉았으며, 피로 얼룩진 이 땅의 역사 현장인 광주의거를 진압한 5적의 일인이다. 그리고 80년 8월 보안사령관이 되어 한국불교 1600년 동안에 처음 보는 변란인 10.27 법난을 지휘한 장본인이다. 그 법난으로 인해 사회적 타격을 받은 수많은 신자들은 불교에 회의를 품고 부처님을 외면하게 되었고, 스님들은 보안사의 골방에서 무수한 곤욕을 치러야만 했다.
최근 그 후보는 모 언론기관과의 대담을 통해 자신은 불교 신자가 아니라고 밝혔다(신동아 9월호, 중앙일보 9.23일자) .또 다른 자리에서는 불교 지도자들에게 자신이 어릴 적부터 파계사와 인연이 깊은 불자임을 알아달라고 했다. 표를 위한 카멜레온의 작태에 다름없는 말장난일 뿐이다.
80년 봄, 모든 꽃들이 피어나려 했을 때 차가운 총부리 앞에 꺾여버렸던 민주주의. 우리는 실상을 알아야 한다 그의 손에 의해서 우리의 봄은 찢어졌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