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 점득아, 좀 빨리 빨리 먹어라. 내가 더 먹고 싶어진다.”
저녁을 먹고 나면 모두들 함께 거적에 둘러앉아 얘기를 하며 떠들었다. 장터는 점득이네가 살던 만주 시골보다, 외갓집이 있는 모과나무골보다 시끄럽고 어지러웠다. 장날이면 온갖 장사치들이 모이고 각설이 아저씨도 다니며 타령도 하고, 술집에서는 기생들이 춤을 추고 소리도 했다. 그래서 판순이도 이렇게 제멋대로 버릇이 없는지도 모른다. 판순이가 한번 노래를 시작하면 이것 저것 끝이 없이 불러대었다.
“정득아, 난 홍도야 울지마라도 할 줄 알고 이강산 낙화유수도 안다.”
“정말이니?”
점례가 곁에서 듣고 있다가 조금 샘이 나는 듯이 물었다.
“그럼, 할 줄 알지. 한번 불러볼까?”
판순이는 그러면서 누구의 대답도 듣기 전에 벌써 노래를 시작했다.
이 강산 낙화유수 흐르는 물에
새파란 잔디 위에 지은 맹서야 …
“지은 맹서가 아니고, 맺은 맹서가 아니니?”
가만히 듣고 있던 점례가 물었다.
“아니야, 지은 맹서가 맞아”
그렇게 대답했지만 판순이는 진짜 어느 것이 맞는지 몰랐다. 판순이는 그냥 들은 대로 외어가지고 부르기 때문에 짐작으로 많이 틀리고 있다는 것만 알고 있을 뿐이다.
“점득아, 우리 둘이 푸른 하늘 은하수 부르자, 응.”
점례가 점득이보고 은근히 편을 들어주기를 바랬다.
“그래, 부르자.”
둘은 노래를 불렀다.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에
계수나무 한 나무 토끼 한 마리
점득이는 노래를 참 잘 불렀다. 판순이 목소리는 머슴애 같은데 점득이는 반대로 계집애 목소리 같았다. 그러면서 길게 맑게 오르내리는 소리가 신기하도록 아름다운 것이다.
돛대도 아니 달고
여기까지 부르자 듣고 있던 판순이가 참지 못하고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가기도 잘도 간다 서쪽 나라로
은하수를 지나서 구름나라로
구름나라 지나서 어디로 가나
멀리서 반짝반짝 비치이는 건
셋별이 등대란다 길을 찾아라.
점득이 노래가 예쁜데 판순이가 거드니까 그만 버렸구나.”
할머니가 짐짓 그러는지는 몰라도 핀잔을 줬다.
“아니야 할머니, 목소리는 남자답게 굵직해야만 어른이 되어도 소리를 잘 한다더라.”
판순이는 누구한테도 지지 않으려 했다. 속으로는 점득이 예쁜 목소리가 부러우면서도 겉으로는 절대 내보이지 않았다.
그해 9월에 점득이네는 장터에서도 바깥쪽 언덕에 있는 국민학교에 들어갔다. 해방이 되던 해부터, 이제는 조선 사람도 남자나 여자나 열심히 배워서 힘을 길러야 한다고 했다. 어른들도 야학을 차려놓고 ‘가가 거겨’를 열심히 배우는데 아이들은 어떤 일이 있어도 가르쳐야 나중에 커서 사람 구실을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종대와 판순이 남매도 점득이네 남매와 함께 1학년에 입학을 했다. 교장선생님이 특별히 두 집 아이들을 생각해서 각각 한 사람분의 월사금만 내라고 해서 형편이 안 되는데도 무리해서 들어가게 된 것이다.
학교에 나가던 첫날, 점득이는 뜻밖에 외갓집 승기 형을 만났다.
“숭기 형!”
“점득아! 너희들 학교에 들어왔구나.”
“그래, 누나하고 종대도 들어왔어.”
“종대가 누구니?”
승기가 물었다.
“우리 오빠야.”
곁에서 둘의 주고받는 얘기를 듣고 있던 판순이가 얼른 가르쳐 줬다.
“뭐야? 넌 누군데 대답하니?”
승기는 판순이의 커다란 목소리가 신기했다.
“난 점득이랑 한집에서 살고 있는 판순이다. 종대는 우리 오빠고. 우리 오빠 잘 생겼지?”
판순이는 곁에 있는 종대를 보고 자랑했다. 얼굴이 하얗고 그리고 어쩌면 나중에 크면 미남자가 될 것 같이 보이는 종대는 그 소리에 부끄러운지 얼굴을 붉혔다.
“그런데 왜 모두 1학년에 들었니?”
승기가 자기와 한 동갑인 종대를 쳐다보며 물었다.
“우리는 아직 가가거겨를 모른다고 1학년에 들라고 했어.”
판순이가 또 가르쳐 줬다.
1학년엔 종대보다 나이 많은 15살짜리 아이도 있었다. 입학식 때 한 줄로 서보니 7살짜리 어린애부터 뒷줄 끝에 서 있는 총각애까지 줄어 울퉁불퉁했다. 종대는 1반으로 가고 점례, 점득이, 판순이 셋은 1학년 2반이 되었다. 반을 가르고 교실에 들어가 책상 자리를 정하고는 1 2 3 4…와 학교종이 뗑뗑…을 배우고는 집으로 돌아갔다.
집에 돌아와 점례는 어머니께 승기를 만난 얘기를 했다. 외갓집과 헤어져 온 지도 넉 달이 된다.
“그래, 지난 장날 너희 외삼촌도 장에 왔더라.”
“외숙부님 만나보셨어요?”
“그래, 가끔씩.”
“그럼 왜 우리 집에는 안 오셔요?”
“바쁘시니까 바로 가시는 거지.”
“승기, 키 조금도 안 컸어.”
점례는 외사촌 승기를 만난 것이 반가왔는데 어머니는 조금도 그런 내색을 하지 않았다.
외숙부와 외숙모님이 장터 점득이네 집에 찾아온 것은 음력 동짓달 그믐께였다. 아버지 제삿날인 것이다. 압록강에 떠내려가 죽은 아버지 제사는 벌써 두 번째가 된다. 외숙부님을 따라 승기도 함께 왔다.
점득이는 아버지 생각을 했지만 왠지 모르게 죽은 아버지보다 맛있게 차려 놓은 제사 음식에 더 마음이 갔다.
외숙모는 숨을 쉴 때마다 무척 힘이 드는지 어깨가 들먹거렸다. 가끔 기침을 하고 나면 얼굴이 붉어졌다.
“점득아, 아버지한테 절을 해야지.”
외숙모가 전에 없이 다정하게 말했다. 점득이는 외숙부님과 승기하고 나란히 절을 했다. 절을 하면서 작년 이때는 승호 형도 함께 절을 했던 것을 생각했다.
제사를 끝내고 음식을 나누는데, 안방 문이 빼꼼히 열리면서 판순이가 내다봤다. 가작 정지(추녀끝에 단부엌)에서 돌아다본 어머니가 불렀다.
“판순아, 할머니하고 종대 오빠하고 깨워라.”
“모두 깨어 있어요.”
판순이는 어련히 깨어 기다렸다는 듯이 얼른 대답했다.
“그럼, 방에 불을 켜야지.”
“예.”
판순이는 얼른 불을 켜놓고 할머니와 종대를 일어나게 했다. 어머니는 커다란 바가지에 밥과 나물을 담고 다른 그릇에 먹을 담아 판순이네 방에 들여넣었다.
“할머니, 변변치 않지만 잡수어 보셔요.”
“어쩌자고 이렇게나 많이 차린거요.”
할머니는 정성이 고마와 혀까지 끌끌 찼다. 판순이와 종대는 얼른 바가지 둘레에 다가가 침을 꿀꺽 삼켰다. 어머니는 문을 고이 닫으면서 한 번 더 말했다.
“판순아, 천천히 꼭꼭 씹어서 먹어라.”
건넌방에서도 점례와 점득이, 승기가 기다리고 있었다. 제사상에서 내린 밥그릇은 외숙부님이 잡수시고, 아이들 셋은 역시 바가지에 함께 담아주었다. 외숙모는 속이 메스껍다고 하면서 먹지 않았다.
“형님, 조금이라도 잡수셔요, 식기 전에.”
어머니는 걱정스레 권했지만 외숙모는 나물 국물 꼭 한숟갈을 떠 먹고는 그만 두었다.
상을 물리고 나니, 벌써 날이 새었다. 아이들은 배불리 먹고 났기 때문에 금방 드러누워 잠이 들었다. 승기도 여기서 바로 학교에 가려고 책보를 가져왔기 때문에 남고, 외숙모와 외숙부는 모과나무골로 돌아갔다. 승숙이 몫으로 어머니는 떡과 과일을 싸서 외숙부님 손에 건네드렸다.
“형님, 부디 몸조심하고 어서 건강을 찾으셔야 해요.”
“그래, 고모를 이런 데에 떨어져 살게 두고 가니 언짢구나.”
“아니에요, 장터 마을이 커서 품을 팔기도 훨씬 수월하니 걱정 마셔요.”
외숙모는 어깨를 움추린 채 외숙부를 따라 천천히 걸어갔다.
아침에 일어난 점득이는 승기한테 물었다.
“외숙모님 많이 편찮으시니?”
“그래, 한 달 전에 기침을 하다가 피를 토했어.”
“정말?”
점득이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목에서 피가 올라온다는 것은 아주 위험한 병을 앓는다는 생각이 났기 때문이다.
“승기는 그런 말 함부로 하는 게 아니야.”
어머니가 약간 꾸짖듯이 말했다. 승기는 입을 다물고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학교 가는 길에서 승기는 점득이한테 소근거리며 말했다.
“엄마는 승호 형 때문에 병이 났단다.”
“어째서 승호 형 때문에 병이 났니?”
“형이 빨갱이기 때문에 경찰이 잡으러 다니고, 전에 집에 불을 지르고 했잖니?”
“하지만, 승호 형은 나라를 위해서 간다고 했는걸.”
“그건, 아버지도 그렇게 말씀하시지만 아무도 믿지 않어.”
“……”
“엄마는 지금도 형이 돌아오기만 기다리는데 형은 오지않고 있어.”
“승호 형은 좋은 세상이 되어야 온다고 했어.”
“언제 그런 말 했니?”
“작년 겨울, 나한테 그랬어. 나라를 위해서 외숙부님 말씀도 듣지 않고 간다고 했는걸.”
“너한테 비밀로 말했단 말이지?”
“응.”
점득이는 어쩐지 승기는 제쳐두고 자기한테만 속에 든 말을 하고 간 승호가 자랑스러웠다.
그 때 잔뜩 찌푸린 하늘에서 마침 눈송이가 팔랑 팔랑 내리기 시작했다. 학교 가던 아이들이 한꺼번에 소리를 쳤다.
“야! 눈 온다!”
눈은 어느새 펑펑 쏟아져 내렸다.
점득이는 혼자서 학교 운동장 가에 서 있는 플라타나스나무 밑으로 갔다. 무언지 가슴이 꽉 미어지는 듯한 슬픔이 치밀었다. 지난 밤 제사 때는 별로 생각나지 않던 아버지가 불쑥 눈보라 속에 나타나는 듯했다.
‘승호 형이 떠나던 날도 이렇게 눈이 내렸었지.’
점득이 눈에 눈물이 그득이 괴어들더니 금방 뺨으로 흘러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