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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으로 가는 포장마차 - 꼬마요정 아사달의 세상구경(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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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동화 - 곽재구 1993년 04월 134호
레이다를 지켜보던 북한쪽 병사들은 지신의 눈을 부볐습니다. 거기에는 분명, ‘쏘지 마세요. 우린 고향으로 가는 포장마차예요’ 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고향으로 가는 포장마차라고? 저게 무슨 말이지?“
“글쎄... 우편마차라는 말을 들어 본 것 같은데, 포장마차라는 말은 처음이야.“
“얼른 국어 사전을 찾아보자구. 그래야 계속 공격올 할지 말지 결정할게 아니야.“
“그래, 그래”
병사들은 국어 사전을 뒤졌으나 거기는 포장마차라는 단어는 실려 있지 않았습니다. 남쪽과 북쪽이 헤어져 산지 사십오 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서로 사용하는 언어들이 이미 많이 달라져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자신들이 지닌 국어 사전에 포장마차라는 단어가 실려 있지 않다는 것을 안 북한 병사들은 조금씩 짜증스러워졌습니다.
“제기럴, 같이 쓰는 말조차 이리 달라졌으니...원, 쯧쯔.“
“누구 남쪽 국어 사전 가진 동무 없나?“


급기야 이들 중 가장 대장인 듯한 병사가 이렇게 말을 했으나 남쪽 국어 사전을 지닌 병사가 없다는 것은 그 자신이 이미 잘 아는 일이었습니다. 남쪽 국어 사전을 지녔다는 그 자체만으로 이미 큰 죄에 해당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러다가 앞으로 남한과 북한 인민이 서로 만날 때 통역을 두어야 하는 일이 생기지나 않을지 모르겠어.“
“삼국 시대엔 고구려와 신라 사람이 만날 때 백제 사람이 통역을 했다는 기록이 있으니까, 뭐 그럴 날이 전혀 안 오리라고만 생각할 수 있겠어요?“
“동무! 우리가 지금 그런 농담을 할 순간이요?“
북한 병사들이 한창 갑론 을박을 하고 있을 때 였습니다. 창밖을 보던 한 병사가 크게 외쳤습니다.
“남쪽 국어사전을 찾을 필요가 없게 되었지요. 저기 밤 하늘을 좀 봐요“
병사들은 일제히 창밖을 바라보았습니다. 거기에는 과연 그 병사가 말한 대로 포장마차에 대한 뜻 풀이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포장마차/손수레에 포장을 씌워 바람이나 비 따위를 막고 그 안에서 가락국수나 소주
등을 팜. 안주로 곰장어나 순대, 낙지, 우렁쉥이, 은행 알 따위를 구워 팔기도 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참새나 개구리를 굽거나 튀겨 내는수도 있음. 주로 도시 서민들이나 근로자들
이 애용하며 최근에는 일부 기업형으로 변모된 포장마차도 있음.

다소 장황하고 산문적인 뜻 풀이였으나 북한 병사들은 포장마차의 뜻을 분명하게 알 수 있었습니다. 조금 곤란한점이 있다면 밤하늘에 새겨진 형형색색의 글자들이 북한 병사들의 식욕을 한꺼번에 당겨 놓은 사실이었습니다. 특히 병사들의 이해를 직접 돕기 위해 곰장어 곁에는 연탄불 위에 자글자글 구워지는 양념 곰장어의 모습을 직접 그림으로 곁들이고 소주병 곁에는 몇 개의 소주잔 그림까지 새겨 놓았으니 소동이 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야, 저 가락국수 좀 봐. 김이 뭉게뭉게 나지 않남.”
“글쎄, 피양냉면하고 뭐가 더 맛있을까.“ ”그림 솜씨도 보통이 아닌데 김홍도가 살아온 것 같아“ ”크, 저 술잔 좀 봐.“
찰랑찰랑 넘치는 게 곧 마셔달라는 뜻
아니야?“
어떤 병사는 책상에 엎드려 훌적훌적 울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엄마가 끓여주는 수제비가 갑자기 너무 먹고 싶어졌기 때문이었습니다. 하긴 이 병사는 지난 어린이날 때에도 한 차례 소동을 일으킨 적이 있었지요. 갑자기 엄마 젖을 만지고 싶다고 대성통곡을 하는 바람에 별 수 있나요, 헬리콥터가 동원되고, 특별 휴가가 주어지고 하는 소동 끝에 겨우 진정이 되었지요. 이 날 북한 병사들의 소동도 곧 진정되었습니다. 남쪽 병사들에게와 마찬가지로 이 신비하고 매력있는 포장마차가 북쪽 병사들과 특별 회식의 시간을 나누었기 때문이었습니다.맛있는 술, 떡, 과자, 과일... 포장마차에서는 계속음식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휴전선 일대의 북한군 각 부대에서도 아사달과 할아버지를 초청하는 전문이 쏟아졌습니다. 병사들은 모두 배불리 음식을 나누어 먹고 또한 고향 이야기 와 애인 이야기 혹은 꿈과 이상에 관한 이야기에 흠뻑 젖어들었습니다. 물론 이야기 중에는 당연히 우리 민족 최대의 과제인 통일 이야기도 들어 있었습니다.
“우린 언제까지 이렇게 헤어져 살아야하지?“
“정말이야 통일만 되면 난제일 먼저 신촌과 압구정동에 가 볼거야.“
“왜?“
”넌 그 유명한 록까페도 들어 보지 않았어? 노래방도 한참 인기라구...“
“그으래. 난 그곳들이 온통 퇴폐 문화의 산실로 만 알았는데.“
“모르긴 해도 약간의 퇴폐성은 있을거야. 그래도 우리 민족이 무슨 민족이야. 초상집 가서도 노래 부르고 노는 게우리 민족이라구. 노래에 무슨 죄가 있어. 어쨌든 내가 신촌에 한번 다녀오면멋진 르뽀 기사를 피양신문에 연재할수있을텐데....“
이야기는 여기에 그치지 않았습니다.한 병사가 즉석 노래자랑대회를 열 것을 제안했습니다. 곧, 비무장지대를 무대 삼아 남북한 병사들이 설맞이 콩쿨대회를 열자는 것이었습니다.
이 신나는 제안은 그 지리에서 받아들여졌습니다. 심사위원장으로는 비무장지대를 지키는 남북한 병사들 중 총사령관 두 사람과 할아버지와 아사달 이렇게 네 명이 담당했습니다. 무대 장치 또한 의외로 완벽했습니다. 비무장지대 도처에 설치된 고성능 스피커들이 마이크 역할을 충분히 해냈습니다. 각 기지에 있는 레이다망들은 병사들의 노래자랑 실황을 생중계했지요.

양쪽의 총사령관들이 초청 가수격으로 이 날의 첫 무대를 열었습니다. 북한군총사령관이 먼저 노래를 불렀습니다. 제목은 ‘병신 난봉가’ . 황해도 민요의 하나였습니다. 보릿대춤을 곁들인 북한군 사령관의 노래는 병사들의 배꼽을 쥐게 만들었습니다.

에-에헤여 어거야 어야어야 디야네가 내 사랑아.
병신의 종자가 따로 있나. 한 다리 한 팔 못 쓰면 병신이지.
십오야 뜬 달아 말 물어 보자. 우리 할매 계신 목포 얼마나 먼지.
가는 곳마다 정든 산천 이별이 잦아서 우리는 못 살겠네.

남한군 총사령관은 자신의 아들이 유명한 운동권 출신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했습니다. 지금은 수배중인 아들에게 직책상 자수를 권하는 편지를 언론에 발표하기도 했지만 내심 아들이 하는 행동이 자랑스럽다는 말도 덧붙였지요. 그런 만큼 남쪽 사령관의 노래는 가장 열렬한 환영을 받았습니다. 물론 시상식 때는 인기상을 수상하기도 했는데 그가 부른 노래는 ‘광야’ 라는 노래였습니다.

해뜨는 동해에서 해 지는 서해까지
뜨거운 남도에서 광활한 만주벌판
우리 어찌 가난하리요, 우리 어찌 주저하리요.
다시 서는 저 들판에서 움켜쥔 겨레의 흙이여 .

남북한 교대로 부르는 병사들의 노래 솜씨는-직접 들어 보지 못한 여러분은 정말 실감이 되지 않겠지만-굉장했습니다. 특히 양쪽 병사들은 최신 유행곡으로 자신의 노래 솜씨를 겨루었는데 ‘휘파람’ ‘내사랑 내 곁에’ ‘그녀를 만나기 백미터 전‘ ’고래사냥‘ ’난 알아요‘ ’질투‘ ’이젠 우리도 접시를 깨자‘ ‘대전블루스’ ‘굳세어라 금순아’ ‘거울도 안보는 여자‘ ’학교종이 땡땡땡‘ 뭐 벼라별 노래가 다 동원되었습니다.

‘굳세어라 금순아’ ‘학교 종이 땡땡땡‘ 같은 노래를 최신 유행곡 범주에 넣을 수 있느냐구요? 물론입니다. 이들 노래야말로 정말 최신 유행곡 중의 유행곡이지요. 지금 이 순간에도 어느 국민학교 일학년 교실에서나 청진동 골목의 술꾼들에게 제일 많이 불려지는 노래가 이런 노래들이고 분명한 것은 앞으로 오 년 혹은 십 년이 지나더라도 이런 노래들은 계속 불리워질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할아버지가 이날 부른 노래가 ‘타향살이 몇 해던가‘로 시작되는 노래였다는 것은 굳이 설명을 덧붙일 필요가 없겠지요. 단지, 아사달이 부른 동요는 비무장지대에 모인 몇 만 명인지 모를 많은 병사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녹여 주는 데 충분한 것이었습니다.

넓고 넓은 밤하늘에 누가 누가 잠자나
남쪽병사 북쪽병사 서로 팔베고 잠들지

이 날 노래자랑대회에서 상을 받은 병사들에겐 모두 특별 휴가 명령이 내려졌습니다. 그런데 이 날 휴가 명령은 조금 특이한 단서 하나를 달고 있었답니다. 즉, 북쪽 병사들의 방문 지역은 남한으로 남쪽 병사들의 방문 지역은 북한으로 정해졌지요. 사십오 년 이상 헤어져 산 친척들을 만나 보게 하려는 양쪽 사령관들의 의기 투합이 원인이었습니다. 불행한 것은 자신들의 노래가 병사들에게 대단한 호흥을 얻어 각각 열창상과 인기상을 얻었음에도 직책상 사령관 본인들은 가고 싶은 땅을 갈 수 없다는 것이었지요.
하긴 그것도 별로 문제가 될 것은 없었습니다. 이미 고향을 그리고, 가족과 친척과 애인을 그리워 하는 모든 병사들의 영혼은 아름다운 등불이 되어 반짝반짝 밤 공기를 적시기 시작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영혼의 불들은 순수하고 맑고 또한 지극히 사랑스러웠습니다. 꿈을 꾸는 듯한 병사들의 영혼 속에서는 이미 38선이니 비무장지대니 괴뢰니 빨갱이니 앞잡이니 하는 말들이 다 사라졌습니다. 그들의 영혼은 여름날 서늘한 바람과 공기 속을 유영하는 반딧불 무리처럼 완전히 자유롭게 상대방의 진영을 넘나들었습니다. 남쪽의 반딧불이 북쪽의 반딧불에게 날아가 자신의 이름을 불러 주며 어깨동무를 했습니다. 북쪽의 반딧불이 남쪽의 반딧불에게 넘어와 수줍은 표정으로 작은 꽃 한 송이를 건네 주기도 했습니다. 삼삼오오 짝을 지어, 함께 손을 잡고 비무장지대를 훨훨 날아다니며 노래 부르는 반딧불들의 모습도 아름다웠습니다. 그 어떤 비천상의 모습도 이미 이들이 지닌 아름다움의 모습을 넘어서지 못했습니다. 어떤 반딧불들은 아예 자신들이 걸치고 있던 모든 옷가지들을 다 바꾸어 입었답니다. 상대방의 가장 깊은 체취와 추억의 모습까지도 샅샅이 알고 싶었고 그것이 너무 그리웠기 때문이었습니다. “넌 내 뼈야”하고 한 반딧불이 말하면 “넌 내 살이야”하고 다른 반딧불이 응답했습니다. “우리 엄마에게 말해서 정말 맛있는 수제비죽을 쑤어 줄게“ 하고 말하는 반딧불의 목소리도 들렸습니다. 필경 어린이날에 소동을 벌였다는 그 반딧불이 되겠지요. 이 날, 비무장지대를 중심으로 한반도 전역에 반짝반짝 영혼의 등불을 켜고 부유하는 수천, 수만, 아니 수십만 반딧불들의 축제가 있었습니다. 그들의 손에는 이때 총검이 들려 있지 않았습니다. 아니 그들이 지닌 추억의 어느 한 부분에도 쇠붙이의 냄새가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이날 밤, 전쟁 이후 비무장지대라는 부끄러운 이름으로 남아 있던 우리들의 가장 치욕스런 무장지대는 진실로 아름다운 비무장지대의 꿈을 이루어 낼 수 있었습니다.
아사달과 할아버지는 이제 좀 바빠지게 되었겠지요. 하룻밤 사이 남쪽과 북쪽병사들에게 일어났던 일을 생각하면 오늘밤 안에 할아버지가 고향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드는 것도 당연한 일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아사달이 하늘나라의 요정이라는 사실에 충분히 주의를 기울여야겠지요. 그는 개구쟁이이고 심술꾸러기이지만 착한일을 할 경우 그의 능력이 무한대로 늘어난다는 것도 기억해야 되겠지요. 그렇습니다. 이사달은 지금 이 지상에 존재하는 꿈과 사랑과 희망의 빛들을 하나씩 깨우쳐 가는 중이지요. 그것이 어쩌면 하늘나라의 옥황상제님이 아사달을 이 지상에 내려보낸 구체적인 이유인지도 모르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