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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장(西藏)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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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 - 진열 1987년 11월 69호
이 글은 우리에게 제대로 알려지거나 인식되어 있지 않은 그래서 사뭇 신비로운 서장 불교-티벳 불교-의 그 불교적 전개와 특수성에 대해 폭넓게 살펴보는 귀한 기회를 제공한다.
1지리-문화적 조건, 2민족과 생활양식, 3고유신앙체계-BON교, 4불교 유입사 및 그 전개, 5서장 대장경의 가치, 6서장 불교의 특징의 모두 여섯 장으로 꾸며진 이 논문은 비단 서장 불교의 특수함뿐 아니라 아직도 외부 사람들의 발길을 덜 탄 티벳의 고유한 풍물에 대해서도 충분한 정보를 제공해 준다. 티벳은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는 까닭에, 아직도 그 옛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는 풍습과 문화 형태를 많이 간직하고 있기에 퍽 흥미롭다.


티벳Tibet(서장) 하면 우리에겐 아주 먼 나라의 신비로운 영역으로 여기는 선입견이 있는 것 갈다. 사실 지리적으로 교통이 우리와는 막혀 있을 뿐 아니라 종교적으로도 ‘밀교의 본거지’ 정도로 인식됨으로써, 우리가 아는 서장 불교(西藏佛敎)의 역사나 그 실상에 관한 정보는 매우 빈약하다. 따라서 과거 한때 찬란했던 티벳(서장) 문화의 핵심인 티벳불교의 역사적 교류사를 고찰함으로써 불교의 동점과 동서문화의 교역 관계를 음미하려고 한다. 그것은 인도 불교의 중국에의 토착화에 따른 소위 서역인들의 활약은 대단했다는 것은 주지의 일이거니와, 그것을 그토록 가능케했던 티벳, 서역의 지리-문화적 배경을 조금이나마 알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완전히 정리된 정보는 아니더라도 앞으로의 밀도있는 연구를 위한 시론적 개진에서 티벳 불교의 윤곽과 그 문제점을 지적하려고 한다.

1. 지리-문화적 조건
우리가 흔히 서역 문화 또는 서장불교라고 일컫는 그 역사적 배경에는 먼저 중국 쪽의 자료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천하의 중심지이며 문화민족이라고 자부하던 한족(漢族)의 처지에서 중국인들은 이곳을 서쪽의 오랑캐들이 사는 곳이란 뜻에서 서강(西羌) 또는 서역(西城)이라 했다. 일찌기 흉노족 같은 북방의 유목민들이 대거 남하하여 살면서 또 이란Iran계의 제민족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거주하면서 서역은 그 지리-문화적인 조건 아래 특이한 생활양식을 이루어나가고 있었다.
위치 먼저 지리적 배경부터 설명하면, 북위 27도와 45도 사이에 세계적으로 거대한 서역 3대 산맥이 있으니, 히말라야Himalya산맥, 곤륜산맥 그리고 천산산맥이 그것이다. 이 산맥들을 구분선으로 하여 곧 천산산맥과 곤륜산맥 사이에 있는 타크라마칸Takuramakan사막을 중심으로 주위의 오아시스Oasis도시 국가들이 성립되었던 좁은 의미의 서역 제국(諸國)이 있고, 또 곤륜산맥과 히말라야산맥 사이를 보통 서장Tibet이라 하는데, 넓은 뜻으로는 이 전체를 서역이라고도 일컫는다. 그러므로 서역 불교라 하면 서장과 좁은 의미의 서역에서의 모든 불교적 사상(事象)을 의미하는 것이겠으나, 여기서는 서장 불교만을 주로 다루어 서역 문화 및 불교의 교섭의 양상을 소개하고자 한다.
지도에서 보듯이 타크라마칸사막을 낀 오아시스의 여러 도시국가들은 원래 동서를 잇는 대상인(隊商人)들의 길목에 해당한다. 이 길은 중국 돈황(燉煌)에서 천산산맥 남쪽을 도는 소위 ‘서역북로’와, 곤륜산맥 북쪽을 지나는 ‘서역남로’가 되는 셈인데, 이것을 보통 비단길 곧 실크로드SilkRoad라 일컫는다. 이 길은 무역로로서 이 길을 통해 중국의 차(茶)나 종이, 향료 등과 지중해 연안의 황금이 교역되었다. 이 통로가 귀중하게 사용되었던 것은 그 주변의 지역이 파미르고원이나 열사의 사막들과 험준한 산맥들로서 넘나들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곧, 죽음을 각오한 여로의 문화적 완충지라는 데에서 그 가치가 컸다. 보기를 들어 기독교의 한 파1)와 불교, 또 이란의 마니교Manchaeism2) 등이 이 길을 통하여 중국에 전파되었다.
그리고 서장의 지리적 배경은, 크게 보아 기후풍토적으로는 카일라스산맥 이북의 창빼이(藏北)고원과 이남의 창난곡지(藏南谷地)지역으로 나뉘고, 문화지리적으로는 동(남)부인 강(康 ; KHAM)주, 서(북)부인 아리ARI(NARI) 그리고 중앙의 위장(衛藏 ; U-TSAN→前藏), 장(藏 ; TSAN→後藏)주로 구분된다. 동부는 양자강, 금사강 등의 여러 하천의 상류가 되며, 따라서 강주를 비롯한 야로창YAROTSAN강 주변에는 일찍부터 인구가 밀집되고 농업도 발전하고 있었다. 서부는 소택지(沼澤地)가 많으며 인더스INDUS강의 상류이기도 해서, 서북 인도와 이란의 모든 문화 현상을 접하는 서 티벳 지역이다. 한편 티벳고원인 창빼이고원은 고도 4,000 미터 이상의 고한랭 내륙성 기후이므로 수초(水草)를 따라 옮겨사는 유목민은 매우 적다. 이에 비해 카일라스산맥 이남이며 정치, 문화의 중심지인 중앙의 장주는 인도양의 계절풍 영향으로 농업이 꽤 이루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대체로 서장은 고도 지역이며, 험악한 자연의 위협과 가파른 산맥들과 또 변화가 무쌍한 사막들과 같은 자연 조건들로 에워싸인 고립 지역이다.
풍토 서장 지역은 고도가 높기 때문에 기후의 일교차가 크다. 장북은 연 평균 기온이 영하 5도이고 연 강수량은 200밀리미터 정도이며 장남은 고도 3,000 미터 정도인데 기온이 영상 10도이고 연 강수량은 1,000 밀리미터에 불과하다. 따라서 자연히 한랭, 건조하기 마련인데, 이러한 기후 조건은 인간의 생존에 지대한 영향을 끼쳐서 서장인들을 자연에 대한 지나친 경외와 강박 관념에 사로잡혀 있도록 하였다. 한마디로 서장인들에게서 자연이란 매우 두려운 악신들의 현상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살기 힘든 사막이나 고원의 악조건들을 피해 변방의 오아시스나 강 언저리에 모여 살게 되었다. 특히 서쪽은 지중해 연안의 문화를 접할 수 있고 동쪽은 찬란한 중국 문물을 수용할 수 있었으므로, 이를 동경한 북방이나 인도, 이란이나 중국의 여러 민족들이 뒤섞여 사는 다민족(多民族)들의 동서 문화 수용지대였던 것이다. 곤륜산맥의 한지류인 탕구라산맥의 동쪽에 있는 오링호나 자링호는 중국 황하의 하원지이기도 한데, 역대로 이 지역 곧 청해주는 감숙성과 사천성과 더불어 중국에서 곧잘 신경쓰던 곳이다. 그것은 이곳이 그만큼 중국 문화와 이민족과의 만남에서 벌어진 정치적 요충지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항상 영고성쇠가 거듭되는 풍토라 하겠다.

2. 민족과 생활양식
민족 티벳민족이란 원래 여러 소수민족들이 강주, 청해주, 찬탄고원(TSANTAN ; 창빼이고원, 티벳고원) 등에서 삶을 꾸려오며 서로 비슷한 풍속, 언어, 생활양식을 갖게 되면서 역사적으로 붙여진 대명사이다.3) 따라서 티벳민족은 역사적인 활동 영향으로 보아 크게 둘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7~9세기에 동-중앙아시아에 큰 파문을 일으킨 토번족으로 중앙의 라사 LHASA가 그 중심지이마 다른 하나는 전진(351~384), 토속혼(吐谷渾), 후진(384~417),후양(386~403), 사천(304~347), 탕창강(宕昌羌), 등지(鄧至), 백란(白蘭), 당항(堂項), 강(羌), 백랑(白狼), 을불물적(乙弗勿敵), 다미(多彌), 아란(阿蘭), 소비(蘇毗), 여국(女國)과 같은 작은 나라를 세운 소민족들이다. 이 중에서 전진은 유일한 티벳인에 의한 화북 통일 왕조란 점에서 그 역사적 가치가 크며, 선비계의 하나인 토속혼도 역시 청해(淸海)지역에 있는 선주(先住)의 강족을 정복하고서 타림TARIM분지에서 차이담TSAIDAN분지를 거쳐 청해에 이르는 길 곧 청해로를 개척하고, 동 터어키스탄의 위그르왕국과 화북 및 양자강 하류 지역인 남조와도 연결하는 활발한 중계무역을 하였던 민족이다. 이 밖에도 소수의 한족(漢族), 회족(回族), 몽고족, 키르기즈KIRGHIZ족 등의 잡다한 민족도 섞여 있으면서, 그들끼리 서로 싸우는가 하면 어떤 때는 강력한 부족국가에 의해 통일되거나 복속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처럼 티벳민족은 잡다한 민족의 영고성쇠와 더불어 중앙아시아에 독특한 자취를 남겼다.
생활양식 유목민의 빠른 이동성이나 적응성을 지니면서 동시에 농사도 짓는 반농반목의 생활이 주가 된다.
이들의 생활에 대해 구당서(舊唐書)의 ‘토번’조, 혜초의 왕오천축국전, 후한서에서는 대략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땅을 파고 사는데 더러우며 침실은 없다. 머리를 감지 않고 목욕도 하지 않는다. 사람들의 피부는 각각 다른데, 털옷 속에는 이가 득실거리며 이를 잡아먹는다. 수초(水草)를 따라 이동하며 오곡이 없다. 아버지가 죽으면 장남이 어머니를 아내로 맞으며 형이 죽으면 형수를 아내로 삼는다. 종족은 대단히 많은데 강하면 호족이 되고 약하면 부하가 된다. 문자가 없으므로 나무를 깎거나 묶어 서로 약속한다. 남녀 모두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뜨려 두 가닥으로 땋아 머리에 감아 올린다고 한다.
해마다 7, 8월이면 풍작을 비는 최대의 연중행사인 ‘옹고르제(祭)’가 열린다. 이른바 황도길일(黃道吉日)을 택하여 열리는 이 날의 행사는 결실이 잘 된 밭 주위를 돈 다음 마술경기, 부락대항, 줄다리기 등의 행사가 벌어진다. 옛날에는 이런 축제를 빌미로 영주나 사원에서 공물을 강요하는 폐단이 많았다.
또한 남녀가 결혼할 때에는 남자가 많은 지참 패물을 내야 하며, 일처다부제이기 때문에 엄청난 수의 남자가 출가하거나 전사하게 되면 인구가 급격히 주는 일도 있었다.4)자연환경의 악조건 때문에 티벳민족의 선천적 기질은 다분히 그러한 자연적 재앙을 물리치고 생활에 복락을 가져다주는 위대한 분(上人)이나 신앙Shamanism이나 정치(敎政一致)를 원했다. 따라서 정신적 사유구조와 현실적 생활양식은 하나의 기술적으로 운용되는 정치에로 집약되고 말았다.

1) 네스토리우니파 Nestorians를 말한다. 예수를 ‘사람이 된 신(神)’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신이 된 사람’이라고 한 데오도레 Theodore ( 350 ~428)의 견해를 널리 보급한, 안디옥의 수도원장 네스토리우스는 431년 에베소에서의 종교회의에서 이단으로 몰려 파면되었다. 그리하여 예수의 인성(人性)과 신성 (神性)을 명확히 분리하고서 그 둘의 연합을 도덕적인 것으로 본 그의 교의는 페르시이에 흘러들어가고 다시 중앙아시아를 거쳐 당나라에까지 전파되었다. 이 기독교 종파는 중국 당나라에서 왕실의 보호 아래 교세를 떨쳤으며, 경교(景敎)라는 이름으로 한때 몽고제국의 홍륭에까지 크게 확장되었으나 원나라의 운명과 함께 쇠하였다. 2) 3세기 초에 페르시아 사람 마네스 Manes(2n ~274)가 배화교, 기독교, 불교 및 바빌로니아의 원시신앙을 혼성하여 만든 일종의 자연종교이다. 마네스는 위대한 종교적 금욕주의자로 인도와 중국에서 큰 명망을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