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내가 해 온 불교 돌이켜 보면 어떻게 하면 깨달을까 보다는 경전에 무엇이 쓰여
있는지 알고 싶은 쪽에 관심이 더 쏠려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그저 관심만이었지 구체화된 것은 광릉 옆에 있는 봉선사를 찾고 나서부터였다.
1979년 무렵 이 절에는 스님 pt 분이 월운스님을 모시고 「능엄경」 계환소 戒環疏 제3권째를 보고 계셨는데, 배려해 주신 덕분에 뒷자리에 앉게 되었다. 신기하기도 하고 재미도 있고 해서 흉내를 내다보니 그만 인연이 되어 경학의 언저리를 맴돌게 되었다. 모르는 경문이 나오면 여쭐 수 있는 은혜를 입기도 하였은데, 인연이라는 게 야속하여 계속되는 객지 생활 때문에 혼자서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래서 이 책 저 책 펴 가며 맞추어 보고 궁리도 하였다.
이런 습관은 선서를 읽는 데도 그대로 옮겨져 , 같은 시대에 만든 여러 문헌들을 비교해서 고대 古代 한어漢語를 현재 우리의 언어 체계로 환원해 가면서 읽었다. 선 사상이 무엇이고, 그것을 중국 사상사 속에서 어떻게 자리매김할 수 있을지에 대한 내 주장이나 기존의 학설은 잠시 보류하고 , 일상 언어로 바꾸어 쓰는 태도를 존중하였다.
그리고 나서 그 글로 환원된 말을 이용하여, 그것을 이정표로 삼아 생사 문제를 해결하는 지침으로 받아들여 수행하고, 중국인 또는 중국 선의 생각과 흐름을 알기 위한 토대로 삼게 한든, 자기 철학의 근거로 삼든, 나름대로 생각과 처지에 따라 알맞게 활용해야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독서는 스스로의 경험이 더 소중하기 때문에 먼저 선서를 직접 읽어 보기를 권하고 싶다. 물론 고대 한어로 쓰인 다른 나라 글을 읽는 게 쉬울리는 없다. 문장이나 그 이치가 어려우므로 이치에 막힐때는 이치를 아는 사람을 찾아가서 지도를 받아야 하겠지만, 문장에 막힐 때는 학문 과학의 성과를 빌어야 한다.
그러므로 이치에 밝고 문장에도 밝은 사람이 번역한 선서를 구해서 읽다가 미심쩍으면 원문을 대조해 보는 독서법이 본래의 뜻을 정확하게 이해하는데 매우 도움이 된다. 원문이 함께 실려 있는 번역서가 좋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요즈음 현대어로 번역된 선서가 많이 나와 있다. 하지만 어떤 책을 골라야 할지 망설여지고 좋은 번역과 바른 견해를 갖춘 책을 잘 골라 읽는 것은 생의 미로를 밝게 찾아가는 중요한 선택이 된다. 이 글에서 좋은 선서를 찾아 읽는 대강의 지도를 그려보고, 한국 선의 중심적 위치에 있는 선서를 차례로 소개하면 이 글의 실마리를 풀어 가고자 한다.
가. 우리말 번역
우리말로 번역한 경전 가운데에 첫째로 꼽을 수 있는 것은 간경도감(세조7년, 1461년 설치)의 언해본이다. 이 책은 여기에 참가한 인물이나 조직면에서 보더라도 수준은 대단히 높다. 언해본 가운데에 몇몇 선서가 있으나, 오백여 년 전의 한글로 쓰여 있어 요즘말로 번역하는 작업을 거쳐야만 그 완전한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
다음으로 시대는 많이 내려오지만 동국대학교 부설 기구인 동국역경원에서 간행하는 「한글대장경」에 들어있는 선서를 들 수 있다. 그 가운데 월운스님이 번역한「조당집祖堂集(2책)」과 「경덕전등록景德傳登錄(2책)」이 있다. 「조당집」은 서기 952년, 「전등록」은 1004년에 각각 성립된 승려들의 전기 모음집이다. 여러 사람들의 이력과 깨닫게 된 상황 따위가 실려 있어, 선서를 전체적으로 조감하는 데 편리한 책이다. 그리고 「선문염송집禪門拈頌集(5책)」도 같은 사람이 한 번역서가 있는데, 이 책은 고려 때 혜심慧諶(1178-1234)스님이 1226년에 중국 선사들의 어록을 발췌하여 1,125개 항목으로 나누어 편찬한 책이다.
위의 번역은 역자의 교학에 대한 안목과 방대한 독서량이 뒷받침되어, 선사들이 제기하는 논의의 배경을 파악한 뒤에 문장을 번역하였기 때문에, 선어를 추상적인 말장난으로 보는 편견을 싹 쓸어 버리고 있다. 특히 성종性宗의 행상行相과 고대 한어와 한글에 대한 식견은 독보적이다.
다음에는 백련불교문화재단의 백련 선서간행회에서 번역 출판한 「선림고경총서禪林古鏡叢書(전37책)이다.
「선림고경총서」는 제목이 말해 주듯이 선서만을 전문적으로 추려서 번역하였는데, 이는 한글이 만들어진 뒤 처음으로 시도한 일이다. 이 총서는 선서가 가지고 있는 내용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요즈음 우리가 쓰는 언어 체계로 옮기려는 노력이 곳곳에 스며 있다. 물론 번역상의 문제가 몇 가지 있지만 현재 우리의 단계를 공개적으로 드러낸 점에서 앞으로 선 연구의 출발점이 될 것이다.
보통 총서의 경우, 같은 총서에서도 번역 문체와 어휘 사용이 일정하지 못해 낱권을 유기적으로 이해하기가 어려운데, 이 총서는 이 문제를 조직적으로 극복하였다.
또한 이 총서는 간행사에서도 밝히고 있듯이 선문의 정로인 돈오돈수頓悟頓修에 대한 인식이 바탕이 되어 있어서 저본의 선정에서는 물론 우리말 표현에도 그 분위기를 살리려는 세심한 배려가 깃들어 있다. 그리고 원문을 영인하여 부록으로 실은 점은 이 책의 자료적인 가치를 더욱 높여 주고 있다.
그밖에도 불광출판부의 「선문총서」, 우리 문화사의 「일타총서」들도 약간의 선서를 낼 예정이나 아직 전체가 나오지 않은 상태여서 앞으로 기대해 보아야 할 일이다. 물론 단행본도 몇 가지가 있으나 이야기해 가면서 적절하게 소개하기로 한다.
나. 다른 나라말 번역
일본어로 번역된 선서로는 「禪の語錄(전20책)」(東京. 築摩書房)이 있는데, 이 책들은 민족사에서 영인본으로 나와 있다. 그리고 「대승불전大乘佛典-중국, 일본편-(전30책)」(東京, 中央公論社) 가운데에 「10돈황敦煌」, 「11돈황敦煌2」, 「12선어록禪語錄」, 「13조당집祖堂集」등이 있다. 한편, 경도의 하나노조(花園) 대학의 선문화연구소에서 간행한 「馬祖の語錄」「玄沙廣錄, 中」, 그리고 「선문화 연구 보고」에 실린 「絶觀論」등이 있다.
일본의 경우 제2차 세계대전 이후만 봐도 엄청난 양의 번역서가 있지만 지면 관계상 줄여서 일반적으로 선 문헌의 성립사에 대해서는 柳田聖山, 田中良昭, 石井修道, 鈴木哲雄 씨들의 책이 믿을 만하다. 선 문헌에 대한 일본의 연구 축적은 성본스님의 「중국선종의 성립사 연구」(서울, 민족사, 1991년)에 나타나 있다.
그리고 선 문헌 자체의 해석이나 사상에 대한 이해로는 단연 入矢義高 씨를 들 수 있다. 이와나미(岩波) 문고에서 宇井伯壽 씨 등이 번역한 선서들이 있으나, 오류가 많아 얼마 전에 入矢高씨 씨 등이 전반적으로 수정하고 있다.
그밖에 프랑스어로 된 선 관계 서적은 미쉘 모아Michel Mohr, 헝가리어 관계는 펄 미크로슈Pal Mklos 씨 등에 목록이 소개되어 있다. 이 번역물들 중에는 한어에서 직접 번역한 것도 있지만 상당 부분은 일본어를 재번역한 것들이다.
다. 원문과 그것을 읽기 위한 도구들
앞에서 번역서를 소개하였지만 번역이란 언제나 그 시대의 학문 수준과 관계되므로 완벽이란 없다. 의심 나는 부분은 자신이 직접 원문을 확인해야 한다. 원문을 확인하려면 다음의 책들을 이용할 수 있다.
이른바 대장경이 있는데 활자본 가운데에서 이용도가 높은 것은, 「대정신수대장경大正新修大藏經」의 권47∼52 권 85이다. 그리고 한 장본으로 된 「대일본속장경大日本續藏經」(京都, 藏經書院)을 영인 양장한 「신편만속장경 新編卍續藏經」(대만, 신문풍출판공사)의 110책∼127책이 있다.
그리고 목판본으로는 「선림고경총서」의 부록으로 실린 사진판, 「禪學叢團書-唐代資枓集成(전13책)」 (柳田聖山編, 京都, 中文出版社)이 있고, 단행본들이 있다. 이상의 원문을 읽으려면 많은 참고 서적들이 필요한데 , 여기에서는 우리말 사전만 간단히 소개한다.
선이나 불교에 관한 일반 항목은 「불교사전」(이훈허, 법보원, 1960년) 「불교학대사전」(전관응 감수, 도서출판 홍법원, 1988년)들을 이용할 수 있다. 불지사에서 수년 동안에 걸쳐 만드는 「선학사전」(1993년 5월 간행 예정)도 곧 선보일 것이다.
그리고 또 선서에는 당시의 구어 口語가 많이 나오기 때문에 그에 대한 지식이 필요하다. 이 방면이 초보적 연구는 있으나 단행본 사전은 아직 없다. 이 부분에 대한 외국의 연구 성과는 이 글을 진행해 가면서 적절하게 소개하기로 한다.
다음 호에는 「선림고경총서」를 대본으로 선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문장이나 어휘를 원문과 대조해 가면서 읽어 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