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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공(惠空)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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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의 등불을 이어온 이 땅의 스님들 - 편집실 1990년 03월 97호
혜공스님은 신라 선덕여왕 때 스님이다.
스님은 천진공(天眞空)의 집에서 품팔이하던 노파의 아들로 어릴 때의 이름은 우조(憂助)였다. 스님은 일찍부터 신통(神通)이 뛰어나서 천진공이 죽을 병에 결렸을 때에도 신통력으로 병을 고쳤으며 천전공의 생각을 미리 알고 일을 처리하는 등 매사에 신통이 자재하였다.
천진공은 처음 병을 고쳤을 때에는 어린아이가 우연히 한 일이거나 하며 별로 이상하게 여가지 않았으나 차츰 모든 일에 신통이 나타나므로 후에야 크게 놀래어 깨닫고,
“지극한 성인(聖人)이 내 집에 와 있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미친 말과 예외에 벗어난 짓으로 욕을 보였으니 어찌 그 죄를 씻을 수 있겠습니까? 부디 이제부터 도사(導師)가 되어 나를 인도해 주십시오”하였다.
우조는 신령스럽고 이상한 것들이 이미 나타났으므로 드디어 출가하여 스님이 되었다. 스님은 조그만 절에 살면서 늘 미친듯이 술에 취하여 삼태기를 지고 거리를 헤매며 크게 노래하고 춤추니 사람들은 그를 ‘삼태기스님’이라 불렀다. 또한 스님은 절의 우물 속으로 들어가면 몇 달씩 나오지 않으므로 스님의 이름을 따서 우물 이름도 지었다. 스님이 우물 속에서 나올 때는 반드시 먼저 푸른 옷을 입은 선동이 솟아나왔다.
만년에는 항사사(恒沙寺) 즉 오늘의 오어사(吾魚寺)에 머물렀는데 어느 날 혜공스님과 원효스님이 시내를 따라가면서 물고기와 새우를 잡아먹었는데 돌 위에 대변을 보니 혜공이 그것을 보고 희롱했다.
“그대가 눈 똥은 내가 잡은 물고기일 것이요”라고 했는데 이런 일이 있은 까닭에 이 절을 오어사라 했다. 지금도 경북 영일군 오천에는 오어사가 있다.
구담공이 어느 날 산으로 놀러갔다가 산길에서 죽어 쓰러져서 살아 부어터지고 구더기가생긴 혜공스님의 시체를 보고 오랫동안 슬피 탄식했다. 그러고는 말고삐를 돌려 성에 돌아오니 혜공은 몹시도 술에 취해서 시장 안에서 노래하고 춤추고 있는 것을 보았다. 이 밖에도 그의 신통은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또 신인종(神印宗)의 조사(祖師) 명랑(明朗)스님이 새로 금강사를 세우고 낙성회를 열었는데 고승들이 모두모였지만 오직 혜공스님만이 오지 않았다. 이에 명랑스님이 형을 피우고 정성껏 기도하니 잠시 후 스님이 왔다. 이때 많은 비가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옷은 젖지 않았으며 신발에도 진흙이 묻질 않았다.
죽을 때에는 공중에 떠서 세상을 마쳤는데 사라는 그 수를 셀 수 없이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