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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하면 앞뒤가 열리니 -지명 / 용인 화운사 선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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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행자시절 - 박원자 2002년 06월 244호
내 나이 여든둘. 열둘에 산문에 들어왔으니, 중노릇한 지 어언 칠십 년이다. 한평생 중노릇 한 것이 어찌 우연의 일이었겠는가. 깊디깊은 숙연으로 과거생에 인因을 지어 한평생 여법하게 중노릇할 과果를 받은 것일 터이니, 절집이 좋고 먹물 옷이 좋아 산중에 머물러 한평생을 지냈다.
다생에 선업을 익혔음인가. 선지식을 만나 가르침을 받고 세상 사는 이치를 이해하는 도리를 깨달았으니, 부처님의 은혜 간절하여 뼈에 사무칠 뿐이다. 부처님 법 아니고, 선지식의 가르침 아니었으면 어찌 생사를 영원히 끊을 도리를 만났겠으며, 인생의 미망으로부터 벗어나 고苦를 해결하는 이 길을 만났겠는가.
세상의 욕망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일체가 무상함을 깨닫기 위해 오직 일념으로 정진 또 정진해왔던 세월, 돌아보면 꿈인 듯 한 순간이었던 것 같다.
내가 출가를 하게 된 데는 두 분 어른이 결정적 동기가 되었다. 속가의 이모님이면서 수덕사에서 출가한 승윤 스님과 수덕사의 조실 스님이었던 만공滿空 스님이 그 분들이다. 공부하고 싶어 몸달았던 소녀시절, 열한 살 때 금강산 유점사에서 그 곳 조실로 계시던 만공 큰 스님을 처음 뵈었다. 그 당시 유점사 뒤에서 암자를 얻어 속인인 채로 《법화경》 공부를 하던 이모님이 큰스님께 ‘수원에서 예까지 왔다’고 나를 소개하자, 큰스님께서는 ‘어린 것이 멀고 험한 길을 오게 된 것은 전생에서부터 숙연이 있어 그러하다’ 하시며, ‘공부 잘하면 성불할 것이다’고 하면서 기특해 하셨다.
기골이 장대하고 훤칠하셨던 큰스님의 모습은 어린 나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 숙연이나 성불의 뜻을 알았겠는가. 그런데도 큰스님의 말씀에 괜히 감격하여 매일 아침마다 스님들을 따라 선방으로 올라가 좌선을 했다. 그 때 유점사 흥성암 승방僧房에는 50여분의 대중들이 모여 살았는데, 만공 선사께서 내리신 화두는 ‘만법귀일萬法歸一 일귀하처一歸何處’ 였다.
나는 오전엔 좌선하고 오후가 되면 선방에서 내려와 유점사 뒷산에 지천으로 익어가던 산딸기를 따서 도시락에 담아 큰스님께 갖다 드렸다. 신묘한 향기가 가득하던 스님의 방에서 스님과 함께 산딸기를 먹었었다.
그해 시월 보름, 수덕사 정혜사에서 만공 스님의 법문을 듣고 ‘나도 견성해봐야지’ 하고 작심했다. 두 시간을 넘겼던 법문이 조금도 지루하지 않고 오히려 ‘견성해야 한다’는 큰 스님의 말씀이 금강석보다 단단한 울림으로 마음에 박히었던 걸 보면, 큰스님의 말씀처럼 숙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출가를 결심하는 데 가장 걸림돌이 되었던 것은 ‘견성을 하려면 스님이 되어야 할 것인데, 머리를 깎으면 10년 동안 어머니를 볼 수 없다’는 어른 스님들의 말씀이었다. 어린 시절 절대적 존재였던 어머니를 포기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결단이 아닐 수 없었다. 금선대에 올라가 사흘 밤낮을 불공드리며 생각한 끝에 어머니와의 만남을 포기하고 ‘견성’ 쪽을 택했다. 훗날 환갑을 지내고 어머니도 출가를 했고, 하나 있던 여동생도 출가해 수행자
의 길을 걷고 있으니, 불가와의 인연이 지중한 듯 싶다.
열세 살이던 섣달 초하루에 지명智明이라는 법명을 받고 만공 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를 받았다. 그리고 스무 살 되던 1937년 정축년 5월, 만공 스님으로부터 월조月照라는 당호를 받았다. 그 때 스님께서 내게 내리신 계문은 이러했다.

성공부경적性空復境寂
심명조시방心明照十方
성품이 공하니 경계가 고요하고
마음이 비추는 달빛은
시방세계를 비추더라

‘공부는 다함이 없는 것이니 늘 끊임없이 정진하라’고 당부하셨던 스님께선 요중鬧中공부 (시끄러운 곳에서 하는 공부)를 잘해야 한다고 이르셨다. 앉으나 서나 지게를 지거나 빨래를 하거나 항시 화두가 끊기지 않게 하라고 이르셨으니, 나는 스님의 이 가르침을 평생 지키려고 노력했다.
길을 걸을 때는 길을 가는 이 놈이 누구인지, 짐을 지고 가는 자가 누구인지 그 한생각만 오롯이 하려고 애썼다. 스님 회상에 있으면서 스님께서 강조하셨던 요중 공부를 익히는 데 주력하였으니, 그 시절엔 마음에 화두가 가득하여 의정疑情이 간절하기만 했다. 그러한 공부는 그후 개심사를 불사하고 지금 내가 있는 화운사를 일구는 일을 수행 그 자체로 하는 데 많은 힘이 되었다.
‘지극히 하라, 지극히 하면 앞뒤가 다 열린다’ 하시던 스님의 말씀을 보물로 간직한 채 정진하며 한평생을 살았으니, 복된 수행자로 살아온 이 한 생, 여한이 없다.

요즘 세상살이를 보면 온갖 욕심으로 가득 차 있다. 내 주인공을 살펴보라. 돈이 좀 있으면 인생의 근본은 간 곳 없이 잊어 버리고, 더 많이 소유하고 싶은 욕망만 늘어간다. 그러다 보니 화내고 욕심부리는 마음이 생겨 앞뒤가 보이지 않아 비리를 저질러 감옥에 가게 된다.
욕심이란 놈이 과거생으로부터 업으로 누적되어 습을 끊기란 어려운 것, 어쩔 수 없이 업의 힘에 이끌려 일을 저지르게 되고 만다.
무상하고 허망한 이 세상, 과연 무엇을 믿을 것인가. 집은 불에 타면 그만이고, 땅도 물에 떠내려가면 그만인 것. 내일이 어떨지, 다음 일을 기약할 수 없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거늘,
우린 단지 꿈을 꾸고 있을 뿐이다. 인생이 한낱 꿈에 불과하다는 것을 아는 것은 오로지 정진, 정진밖에 없다. 정진도 보통으로 해선 안 된다. 한번 죽었다 살아나야 한다. 그리하여 ‘참나’를 발견해서 화내고 욕심부리고 어리석은 마음을 이겨내야 한다.
요즘 출가에 첫발을 내딛는 행자들이나 출가하여 공부하는 이들에게 이 노승이 전하고 싶은 말은 이렇다.
“모양 있는 모든 것은 무상하니 오직 할 일은 정진뿐이다. 공안公案의 화두뿐 아니라 우주 전체, 일상 전체가 그대로 화두다. 의심이 한결같지 못함은 망상과 습기習氣로 인하여 헛된 곳에 애를 쓰고 있으므로 의정이 잘 되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 오직 여지없이 무상을 느끼고 참으로 이 도리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설혹 하늘과 땅이 무너질지언정 거짓없이 참 정진을 결택해야 할 것이다.
정진을 잘하면, 첫째 마음이 푹 쉬어지며, 둘째 무상함을 느끼게 되어 허무한 중에도 화두에 의심이 간절하여지는 것이다. 선방에 가면 허리의 척추를 꼿꼿이 하며, 머리를 반듯이 세우고 눈은 코 앞 바로 벽을 보며, 눈을 감지 말고 숨은 배꼽 밑으로 내려 쉬며, 위의 기운은 다 내리도록 하고 육체의 기틀을 딱 세우도록 하고 가진 바 화두를 의심하되, 내가 알지 못하는 일에 의심을 간절히 가지도록 해야겠다.
공부는 요중에 익혀야만 힘이 강한 것이다. 무슨 일을 하든, 들에 가나 길을 가나 차를 타나 장터엘 가나 더욱 정진하라. 정진이 가득하면 그 정진은 우주에 가득 차며 우주 전체가 바로 정진일 뿐이다. 우리 중은 그쯤 되면 오나가나 떳떳하고 멋이 있는 중이 된다.”이 노승의 경험을 바탕으로 말해 보았을 뿐이다.
승려는 그저 정진이 무기武器다. 끊임없이 정진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