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와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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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 원종
1987년 11월 69호
우리는 지금 모든 분야에서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나가는 중차대한 시대에 살고 있다. 해방 이후 처음으로 이루어진 여·야 합의 개헌안이 이미 국회에서 의결되었다. 남은 것은 의결된 개헌안을 확정하고 대통령을 우리의 손으로 직접 뽑는 일뿐이다. 일정한 시간을 두고 반복되었던 위기설 때문에 불의의 사태가 발생할지도 모른다는 불안한 예감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민주화라는 커다란 흐름은 대통령 선거, 새 정부 출범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따라서 어느 누구도 이미 확정된 정치 일정을 물리적인 힘으로 쉽게 바꿀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시정에서의 화제거리는 정치 이야기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며칠 전 동아일보사가 고려대 방송학과 팀에 의뢰하여 서울 시민을 대상으로 실시한 전화 여론 조사 결과에 따르면 요즈음 가까운 사람과 나누는 대화의 주제가 47.1%가 대통령 선거에 관한 이야기라고 대답하였으며, 그 중에서 남자의 경우 64.5%, 여자의 경우 31.8%가 대통령 선거에 대한 문제를 대화의 주제로 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로 국민들의 관심이 대통령 선거에 집중되어 있음을 실감하게 하는 조사보고이다.
한편 합의개현이 이루어지고 정치 일정이 정해지면서 누가 대권을 잡을 것인가에 국민들의 관심은 집중되어 있다. 그래서 성급한 사람들은 대통령 출마가 예상되는 후보들을 상대로 모의투표를 실시하고 그 결과를 발표하여 구속이 화기도 하고, 공개적으로 발표하지 못하여 구전으로 전해지기도 한다.
이와 같은 국민들의 정치적 관심은 결코 지나친 것이 아니라고 생각된다. 왜냐하면 해방 이후에 있었던 몇 번의 선거가 바람직한 선거가 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국민이 직접 뽑았던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대통령을 내 손으로 뽑는다는 것은 국민주권을 행사하는 것으로서 즐거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선거 열기는 일반인에게만 한한 것이 아니라 종교계, 그 중에서도 불교계 내부의 대단한 관심으로도 드러난다. 야당의 후보 단일화는 가능할 것인가, 2파전일 것인가, 3파전일 것인가, 아니면 그 이상일 것인가, 어느 정당이 집권하고, 어떤 후보들이 출마하여 누가 당선될 것인가하는 문제는 종교인들에게도 당연한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더구나 불교는 인도사회에 견고하게 뿌리박은 ‘카스트 제도’를 이념과 실천의 모든 차원에서 파괴하고 이루어진 종교이기 때문에 정치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제날드 섹터는 불타의 새얼굴에서 “불교적 전통에 있어서 종교와 국가는 일치되어 있고, 불교적 신왕(神王) 또는 전륜성왕은 불법의 원리에 입각하였으며 법륜을 굴린다는 통치자의 개념은 불타의 교리만큼 오래되었다…”라고 하였으며, 마하트마 간디는 “종교와 정치가 무관하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종교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사람이다”라고 하였다.
위와 같은 주장이 아닐지라도 종교와 정치, 불교와 정치는 무관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불교는 모든 중생들의 삶을 불교적인 삶으로 인도하여 정토사회를 이 땅 위에 건설해야 하기 때문에 어떤 형태로든 정치에 참여하져 않을 수 없다. 그러나 확실히 해야 할 것은 승려가 개인적으로 정치 집회나 단체에 참여하여 특정 후보나 특정 정당을 지지할 수는 있어도 사찰의 이름으로, 종단의 이름으로 세속정치에 참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불교는 세속적인 정치정당이 아니라 불교가 지향하는 목적으로 모든 중생들을 귀의시키고 진리를 구현하는 승가공동체이기 때문에 정치정당이 진리 구현의 민주화 길로 나아갈 수 있는 구체적인 방향을 끝없이 제시하여야만 한다. 즉 이 민족이 안고 있는 기본적인 모순인 통일 문제부터 시작해서 외세 문제, 군부 독재. 종식의 문제, 군작전권 반환 문제, 비핵지대화 문제, 미군철수에 대한 찬반 문제, 노동자·농민·빈민들의 생활보장 문제, 공정선거 보장을 위한 거국 중립내각 구성 문제 등 민중들의 고통을 해결할 수 있는 구체적인 행동지침돌을 제시하여야 한다.
그뿐만인가. 불교 내에 산적해 있는 문제 즉, 불교의 자주적 발전의 길을 막고 권력의 시녀로 전락하게 만든 불교재산관리법의 완전 폐지 문제, 사찰의 자율적 운영을 막는 문화재보호법, 도시공원법, 도시계획법, 건축법, 산림법 등의 개정 문제, 불교의 자주적 성장을 철저하게 유린당한 10.27법란을 시작으로 하여 하필이면 불교 최대의 명절인 초파일에 교황을 초청한 것을 비롯하여 비구니 영화 제작, 교과서 왜곡, 언론의 편파 보도, 남북 이산가족 고향 방문단의 불교계 소외, 원각사 법당 최류탄 난사 사건 등, 정책적으로 탄압하고 소외시킨 부분에 대한 정치권력의 해명과 거기에 따른 대책 및 보상 문제 등을 전종도의 이름으로 요구해야 한다. 그리하여 후보들이 이와 같은 요구들에 대한 정치 소신을 분명히 밝히도록 하여 국민 스스로 누가 이 민족의 모순과 민중들의 고통을 해결하는 데에 합당한 인물인가 하는 것을 스스로 평가하여 선택하도록 해야 한다.
따라서 불교 전체가 나아갈 길은 어느 특정 정당의 입장에 설 것이 아니라 불교의 논리로 진리를 말하고, 정의를 부르짖고, 불의를 꾸짖는 것이 진정으로 이 민족과 민중들의 아픔을 위하는 길이라 생각되며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 땅에 구현하는 보살로서 가야 할 길이라 생각된다.
불교는 이미 작년 해인사 승려대회에서 총무원장스님이 격려사를 통해
“흔히 세상에서 말하기를 우리 불교는 호국불교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현 정권에 시녀 노릇이나 하고 아부하는 것이 호국불교인 것처럼 세상 사람들이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호국불교의 개념은 다릅니다. 호국이라고 하는 것은 어떤 특정 정당이나 특정 정권을 위한 것이 호국이 아닙니다. 불편부당하게 정의의 편에 서서, 소외받고 고통받는 중생들의 입장에 서는 것이 호국입니다.”라고 전 불교도의 이름으로 세상에 천명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교는 지금 역사 앞에, 민중 앞에 큰 오류를 범하려 하고 있다.
지난 번에는 4.13 호헌조치 지지성명으로 세인들의 지탄을 받더니만 이번에는 몇몇 승려들이 특정 후보나 특정 정당을 지지하기 위하여 순수한 불교의식에 출마가 예상되는 특정 후보 측근들을 초청하여 불교집회를 정치집회화하는 반불교적인 행위가 일어나고 있으니 심히 우려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들리는 소리에 의하면 어느 사찰 주지는 출마가 예상되는 모 후보를 적극적으로 지지하기 위해, 측근들을 중심으로 중진 스님들을 모아 놓고, 불교도의 이름으로 발표하기 위해 성명서까지 작성해 놓고 회의를 진행하다가 젊은 스님들에 의해 제지당하기도 했다 하며, 또 모 사찰 주지는 특정 후보 지지를 위해 사찰에 사무실까지 차려 놓으려다 측근들의 반발로 무산된 일도 있었다고 한다. 참으로 개탄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일들이 어떻게 모든 승려들의 합일된 주장이라고 할 수 있으며 한국 불교 전체의 생각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몇 명의 지각없는 행동이 마치 불교 전체의 의사인 양 정치적으로 이용되었을 때 그 책임은 누가 져야 할 것인가.
요즈음 정치 일각에서는 종교를 이용한 득표 작전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나보다. 그것은 정치인들의 유수 사찰 참배라든지 원로, 중진 스님들의 빈번한 친견 등으로 알 수 있다. 그런가 하면 며칠 전부터 전국사찰에 나돌고 있는 특정 후보를 지지하는 2종의 전단(상도동계 민족문제연구소 산하 ‘민주불교회’ 명의로되어 있음) 가운데는 대불련보(9월1일자, 제26호) 표제가 실린 일부 기사가 복제되어 전단과 함께 배포되어 나돌고 있다. 그것은 내용이 특정 후보를 지지하는 것이 아닐지라도 마치 대불련에서 특정 후보를 지지하는 것처럼 오해받을 소지가 있다. 그래서 많은 스님들과 회원들로부터 항의를 받았다고 한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불자들의 언행이란 실로 신중을 기하지 않으면 안 되리라 생각된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최소한 사찰의 이름이나 종단 차원의 이름으로는 정치적 중립을 서야 한다. 왜냐하면 설령 어떤 후보를 불교 집단의 공식적 이름으로 지지하여 그 후보가 당선되었다 할지라도 권좌에 오른 뒤에 정치구조에 의해 승가공동체가 나아가는 길을 역행했을 때, 그때는 어찌할 것인가. 그때 가서 또 다시 내려오라고 할 것인가.
정치인들은 자신들의 정치 신념에 종교를 이용하려는 일을 삼가해야 하며, 구도자들 또한 특정 후보나 특정 정당을 지지하는 일을 삼가하고 시대의 물줄기를 올바른 방향으로 전진시켜 나아가기 위하여 현실을 객관적으로 투시할 수 있는 균형잡힌 시각을 가져야 한다. 일방적인 자기 주장이나 집단 이기주의를 고집하기보다는 이 민족의 이익을 대변하는 실천적인 모습만이 요구되는 현실이다. 모든 국민들이 승복할 수 있는 정정당당한 선거가 치러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