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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승詩僧과 명사名士의 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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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류동천 - 김홍영 2002년 06월 244호
지금은 그 자취가 없어졌지만 해인사의 산내 암자 가운데 내원암內院庵이 있었는데, 1480년(성종 11)을 전후로 하여 이 곳에 옥명玉明이라는 시승詩僧이 있었다.
옥명은 소라처럼 생긴 악기인 해라海螺를 잘 불어 김종직金宗直은 나 화상螺和尙이라고 불렀다. 또한 청수淸瘦한 외모에 산천 유람을 좋아하고 시를 잘 읊었는데, 김종직은 옥명의 시를 읽고 “이제 다시 맑은 시를 접하여 읽으매, 숲속의 그윽한 난초가 향기 절로 넉넉하네 (如今更接淸詩讀 林下幽蘭剩自芳)”라고 하였다.
김일손金馹孫(1464∼1498)이 지은 <조현당기釣賢堂記>를 보면 옥명이 기거하는 암자의 마루 안 왼쪽 벽에는 나월헌蘿月軒, 오른쪽 벽에는 조현당釣賢堂이라는 편액을 붙이고 절 밑의 연못을 파다가 칼을 발견한 까닭으로 그 못을 득검지得劍池라고 명명했다고 한다. 또 절 안의 벽에는 김종직을 비롯하여 서거정徐居正 김맹성金孟性 유호인兪好仁 표연말表沿沫 등 일대 명현의 시판詩板이 두루 걸려 있다고 하였다. 김맹성(1437∼1487)의 《지지당시집止止堂詩集》에


산인의 게으름 골수에 사무쳐(山人懶到骨)
한 번 누우면 해를 보내네(一臥便經年)
흰 해 난간 밖에 이르고(白日低軒外)
푸른 덩굴 베개 가에 이르렀네(靑蘿到枕邊)
이 마음 혼연하기 물과 같으니(此心渾似水)
만법은 이미 깨우치고 난 뒤일세(萬法已忘筌)
객이 옴에 오히려 말 없으나(客至猶無語)
서로 봄에 뜻이 절로 전해지네(相看意自傳)

라는 시가 보이는데, 이 시의 제목은 <나월헌에 적다(題蘿月軒)>이다. 아마 옥명 당일에 나 월헌 벽에 걸렸던 여러 시판 가운데 하나가 아니었을까.
홍류동천紅流洞天은 다만 가야산 산세의 수려함과 해인사 가람의 웅장함이 있을 뿐 아니라, 이렇듯 맑은 시를 읊조리며 연하烟霞 가운데 깃들어 지내는 시승과 당대 명사들 사이에 풍류가 넘치는 교유의 현장이기도 하였다. 오늘 옛날을 봄이 후일 오늘을 봄과 같을진대, 후일 누가 오늘의 시승과 명사의 교유를 말할 것인가.□
● 편집자 주:내원암은 가야산 상봉으로 가는 도중 중봉 석불 건너편 넓은 늪지대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조선 중엽에 폐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