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남산의 북쪽 끝은 왕정골입니다.
거기 산업도로로 허리가 잘린 산줄기는 반월성 쪽으로 미적미적 내려오다가 아스팔트로 포장된 남천 길에 이르러서 잦아들고 맙니다. 그 어름에 절터가 하나 있습니다.
나그네는 남천 길을 걸어 그 곳을 찾았습니다.
절터는 큰길 바로 곁에 있지만 논둑을 타고 다가가야 합니다.
좁은 논둑으로 걸음 내딛기가 위태로운데, 인기척에 개구리들이 울음을 멈춥니다.
그러고 보니 모내기가 끝난 무논은 개구리밥으로 뒤덮여 있습니다.
거기 논둑에, 그리고 논 가운데 폐탑재들이 몇 개 나뒹굴고 있습니다.
태종 무열왕의 아들이자 문무왕의 바로 아래 동생 김인문을 위해서 지었다는 인용사仁容寺 터 쌍탑의 자취입니다.
김인문은 신라가 통일 전쟁을 치르는 동안 일곱 차례나 당나라를 오가며 외교에 진력했습니다.
신라가 당나라 군사를 한반도에서 몰아내려고 군사를 동원했을 때, 당 고종은 김인문을 옥에 가두었습니다.
신라 사람들은 그를 위해 인용사를 짓고 관음도량을 열었습니다.
그가 결국 고국에 돌아오지 못하고 죽었다는 소식에 사람들은 그 절을 미타도량으로 바꾸었습니다.
김인문 살아 생전에는 관음보살에 그의 안녕을 빌다가, 죽은 후에는 아미타불에 그의 왕생극락을 빌었던 것입니다.
그런 사연의 흔적이라고는 이제 폐탑재 몇 개뿐입니다.
나그네에게는 그래서, 논바닥에 박혀 있는 탑의 지붕돌이 새삼스럽습니다.
거기 모서리에 아직도 또렷한 반전反轉이 무정하고, 풍탁을 매달았던 듯한 구멍 자국이 또 무정합니다. 우두커니 그 모습에 젖어든 나그네를 문득 스쳐 지나는 바람이 있습니다.
그 바람 속에 절로 우는 풍탁소리가 있습니다. 그리고 천년 전 옛사람들의 염불소리도 있습니다.
관세음보살, 나무아미타불.□